축구에서 투지는 기본이다. 투지가 없으면 제아무리 호화군단이라도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 기술이 비슷한 팀끼리 맞붙을 경우 투지는 승부를 가르는 변수가 된다. 하지만 투지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 개인기가 월등하게 벌어지면 투지는 오히려 경기력을 떨어뜨리는 악재로 작용한다. 또한 투지는 지속성을 갖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투지만을 앞세운 경기운용은 반드시 후유증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아시안컵 8강전에서 한국은 이란을 꺾었다. 4년 전 2대 6이라는 치욕의 패배를 안겼던 이란을 물리친 것이다. 그러나 사흘 뒤 한국은 이란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됐던 사우디아라비아에 무너졌다. 사우디는 예선 첫 경기에서 일본에 1대 4로 패한 뒤 감독까지 갈아치운 팀이었다. 한국은 투지를 발판으로 이란에 극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투지의 위력은 사흘을 버티지 못하고 식어버렸다.
“무조건 이겨라” 생각하는 축구 실종
70∼80년대 서울에서는 대통령배국제축구대회가 열렸다. 해마다 단골로 참가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한국은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굳혀왔다. 하지만 한국은 유럽이나 남미의 프로팀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때마다 외국팀 감독들이 한국 축구를 비판한 말이 있다. 바로 ‘로봇축구론’이었다. 동구권의 한 감독은 “한두번 붙어보면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팀”이라고 혹평한 일도 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한국 선수들은 로봇처럼 움직였다. 측면 돌파에 의한 센터링과 롱킥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공격 전환. 중국과 인도네시아전에서는 이것이 그런 대로 적중했지만, 쿠웨이트와 사우디전에서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쿠웨이트와 사우디가 한국의 공격 루트를 차단하며 선수를 치자 한국은 패스미스를 남발하며 자멸하고 말았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선수들의 개인기는 일본보다 앞섰다. 오히려 일본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의 체력과 스피드를 겁냈다. 하지만 일본은 20년 앞을 내다보고 축구발전계획을 세웠다. 한국이 동남아시아 원정을 다니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일본은 한-일 정기전까지 중단하며 선진축구를 수입했다. 그 결과 일본 축구는 세계 무대로 도약했고, 한국은 아시아권에서도 삼류로 전락했다. 이젠 ‘공한증’에 걸린 중국마저 한국축구를 ‘기생충’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2000년대의 냉정한 현실이다.
강팀은 게임이 풀리지 않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다. 상대의 스타일에 따라 쉴새없이 전술을 바꾸는 것이 90년대 이후 현대 축구의 흐름이다. 98년 프랑스월드컵과 2000년 유럽컵은 바야흐로 ‘임기응변 축구의 시대’가 열렸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벤치의 작전에 철저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어려서부터 감독의 눈치를 보면서 플레이를 펼친 탓이다. 애당초 ‘생각하는 축구’를 익힐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 선수들이 필수 코스로 거쳐가는 서울 효창운동장. 이곳에 가면 한국 축구의 현주소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인조잔디 위에서 태클을 시도하다가 화상을 입는 선수들과 그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는 학부모들. 어쩌다 석연치 않은 판정이라도 나오면 난동을 피우는 취객들까지 있다.
라커룸으로 들어가면 더 잔인한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지도자들은 ‘즐기는 축구’가 아니라 ‘이기는 축구’를 위해 선수들을 호되게 몰아친다. 유럽이나 남미라면 한창 축구의 재미에 빠져들 청소년 선수들이 감독의 불호령을 들으며 가슴을 졸이고 있다. 전술이 좋아도 이기지 못하면 욕설이 쏟아진다. 그러니 플레이가 거칠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주공격수나 게임메이커의 몸은 상처 투성이다.
한국과 일본의 학생 축구 선수들을 비교해보자. 한국은 거의 매달 전국대회가 열린다. 1주일에 5게임씩 치르는 일도 흔하다. 그러다 보니 기술보다 체력이 우선이다. 반면 일본은 주말마다 리그를 치른다. 한국 선수들이 수업까지 포기하고 맨땅을 뛰는 동안 일본 선수들은 학교 공부 다 마치고 잔디밭에서 공을 만진다. 한국 선수들이 ‘악’을 키우는 시간에 일본 선수들은 자기 색깔의 축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윤정환은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패스가 정확한 선수다. 축구에서 패스는 전술의 핵심이다. 패스는 단순히 상대방에게 공을 주는 행위가 아니다. 유능한 게임메이커는 동료의 컨디션과 버릇까지 따져서 공을 밀어준다. 윤정환은 공을 왼발에 짧고 빠르게 줄 것인지, 아니면 오른발에 길고 느리게 줄 것인지까지 계산하며 움직이는 선수다.
그런 윤정환이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시간은 얼마 안 된다. 차범근 감독은 몸싸움이 약하다는 이유로 그를 월드컵대표팀에서 제외시켰다. 허정무 사단에서도 윤정환은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잦은 부상도 문제였지만, 수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항상 따라다녔다.
하지만 윤정환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례도 있다. 비쇼베츠 감독은 윤정환의 뒤에 두 명의 수비수를 받쳐줌으로써 윤정환의 공격력을 배가시켰다. 니폼니시 감독도 미드필드의 수비 공조 시스템을 통해 윤정환의 체력 부담을 덜어주었다. 지도자의 ‘눈’이 선수의 ‘가치’를 결정한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홍명보는 10년째 대표팀을 지키는 맏형이다. 그가 빠지면 한국은 언제나 수비가 불안해진다. 그래서 역대 대표팀 감독들은 항상 홍명보를 중심에 놓고 전술을 짰다. 11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 축구는 홍명보의 대타를 찾지 못했다. 시드니올림픽에서는 홍명보가 빠지는 바람에 수비라인이 붕괴됐다. 이대로 가면 2002년 월드컵에서도 홍명보의 컨디션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2년 뒤면 홍명보의 나이도 서른세살이다. 만약 홍명보가 은퇴라도 한다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
97년 7월. 축구협회는 ‘축구발전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엔 국내 축구 관계자가 대거 참석해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심층 진단했다. ‘유소년 축구 육성방안’ ‘프로축구 활성화 대책’ ‘잔디구장 확보 계획’ 등….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한 나라의 축구가 발전하려면 다섯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선수, 지도자, 심판의 자질 향상과 협회의 기능강화, 그리고 축구팬의 성원이다. 아시안컵 패배의 충격이 한국 축구의 5대 부실구조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아시안컵 8강전에서 한국은 이란을 꺾었다. 4년 전 2대 6이라는 치욕의 패배를 안겼던 이란을 물리친 것이다. 그러나 사흘 뒤 한국은 이란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됐던 사우디아라비아에 무너졌다. 사우디는 예선 첫 경기에서 일본에 1대 4로 패한 뒤 감독까지 갈아치운 팀이었다. 한국은 투지를 발판으로 이란에 극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투지의 위력은 사흘을 버티지 못하고 식어버렸다.
“무조건 이겨라” 생각하는 축구 실종
70∼80년대 서울에서는 대통령배국제축구대회가 열렸다. 해마다 단골로 참가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한국은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굳혀왔다. 하지만 한국은 유럽이나 남미의 프로팀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때마다 외국팀 감독들이 한국 축구를 비판한 말이 있다. 바로 ‘로봇축구론’이었다. 동구권의 한 감독은 “한두번 붙어보면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팀”이라고 혹평한 일도 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한국 선수들은 로봇처럼 움직였다. 측면 돌파에 의한 센터링과 롱킥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공격 전환. 중국과 인도네시아전에서는 이것이 그런 대로 적중했지만, 쿠웨이트와 사우디전에서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쿠웨이트와 사우디가 한국의 공격 루트를 차단하며 선수를 치자 한국은 패스미스를 남발하며 자멸하고 말았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선수들의 개인기는 일본보다 앞섰다. 오히려 일본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의 체력과 스피드를 겁냈다. 하지만 일본은 20년 앞을 내다보고 축구발전계획을 세웠다. 한국이 동남아시아 원정을 다니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일본은 한-일 정기전까지 중단하며 선진축구를 수입했다. 그 결과 일본 축구는 세계 무대로 도약했고, 한국은 아시아권에서도 삼류로 전락했다. 이젠 ‘공한증’에 걸린 중국마저 한국축구를 ‘기생충’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2000년대의 냉정한 현실이다.
강팀은 게임이 풀리지 않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다. 상대의 스타일에 따라 쉴새없이 전술을 바꾸는 것이 90년대 이후 현대 축구의 흐름이다. 98년 프랑스월드컵과 2000년 유럽컵은 바야흐로 ‘임기응변 축구의 시대’가 열렸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벤치의 작전에 철저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어려서부터 감독의 눈치를 보면서 플레이를 펼친 탓이다. 애당초 ‘생각하는 축구’를 익힐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 선수들이 필수 코스로 거쳐가는 서울 효창운동장. 이곳에 가면 한국 축구의 현주소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인조잔디 위에서 태클을 시도하다가 화상을 입는 선수들과 그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는 학부모들. 어쩌다 석연치 않은 판정이라도 나오면 난동을 피우는 취객들까지 있다.
라커룸으로 들어가면 더 잔인한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지도자들은 ‘즐기는 축구’가 아니라 ‘이기는 축구’를 위해 선수들을 호되게 몰아친다. 유럽이나 남미라면 한창 축구의 재미에 빠져들 청소년 선수들이 감독의 불호령을 들으며 가슴을 졸이고 있다. 전술이 좋아도 이기지 못하면 욕설이 쏟아진다. 그러니 플레이가 거칠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주공격수나 게임메이커의 몸은 상처 투성이다.
한국과 일본의 학생 축구 선수들을 비교해보자. 한국은 거의 매달 전국대회가 열린다. 1주일에 5게임씩 치르는 일도 흔하다. 그러다 보니 기술보다 체력이 우선이다. 반면 일본은 주말마다 리그를 치른다. 한국 선수들이 수업까지 포기하고 맨땅을 뛰는 동안 일본 선수들은 학교 공부 다 마치고 잔디밭에서 공을 만진다. 한국 선수들이 ‘악’을 키우는 시간에 일본 선수들은 자기 색깔의 축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윤정환은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패스가 정확한 선수다. 축구에서 패스는 전술의 핵심이다. 패스는 단순히 상대방에게 공을 주는 행위가 아니다. 유능한 게임메이커는 동료의 컨디션과 버릇까지 따져서 공을 밀어준다. 윤정환은 공을 왼발에 짧고 빠르게 줄 것인지, 아니면 오른발에 길고 느리게 줄 것인지까지 계산하며 움직이는 선수다.
그런 윤정환이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시간은 얼마 안 된다. 차범근 감독은 몸싸움이 약하다는 이유로 그를 월드컵대표팀에서 제외시켰다. 허정무 사단에서도 윤정환은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잦은 부상도 문제였지만, 수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항상 따라다녔다.
하지만 윤정환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례도 있다. 비쇼베츠 감독은 윤정환의 뒤에 두 명의 수비수를 받쳐줌으로써 윤정환의 공격력을 배가시켰다. 니폼니시 감독도 미드필드의 수비 공조 시스템을 통해 윤정환의 체력 부담을 덜어주었다. 지도자의 ‘눈’이 선수의 ‘가치’를 결정한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홍명보는 10년째 대표팀을 지키는 맏형이다. 그가 빠지면 한국은 언제나 수비가 불안해진다. 그래서 역대 대표팀 감독들은 항상 홍명보를 중심에 놓고 전술을 짰다. 11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 축구는 홍명보의 대타를 찾지 못했다. 시드니올림픽에서는 홍명보가 빠지는 바람에 수비라인이 붕괴됐다. 이대로 가면 2002년 월드컵에서도 홍명보의 컨디션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2년 뒤면 홍명보의 나이도 서른세살이다. 만약 홍명보가 은퇴라도 한다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
97년 7월. 축구협회는 ‘축구발전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엔 국내 축구 관계자가 대거 참석해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심층 진단했다. ‘유소년 축구 육성방안’ ‘프로축구 활성화 대책’ ‘잔디구장 확보 계획’ 등….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한 나라의 축구가 발전하려면 다섯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선수, 지도자, 심판의 자질 향상과 협회의 기능강화, 그리고 축구팬의 성원이다. 아시안컵 패배의 충격이 한국 축구의 5대 부실구조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