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 발등의 불이다.
보신각 주변에 모여 ‘10, 9, 8, 7…’ 하고 소리치며 새로운 밀레니엄의 도래를 흔쾌히 기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집안에서 이불 쓰고 앉아 TV를 보며 재난에 대비해야 할까?(물론 컴퓨터는 꺼둬야 한다. 귀중한 파일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컴퓨터 2000년 표기 문제’ ‘밀레니엄 버그’ ‘컴퓨터 모라토리엄’ 등으로도 불려온 Y2K 문제는 2000년이 코앞에 다다른 지금까지도 인류의 희망 한 쪽을 어둡게 가린 그늘이다. 아직까지도, 또 그 누구도, 이것이 한바탕 소극(笑劇)에 불과할지, 아니면 할리우드의 재난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악몽의 현현(顯現)일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루프트한자항공 안셋오스트레일리아 등 적지 않은 항공사들이 ‘Y2K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면서도 연도가 바뀌는 시간대를 피해 항공기를 띄우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영국 일본 대만 프랑스 독일 등 수많은 나라들이 이 즈음을 금융기관 휴무일로 정했는가 하면, 미국 국무부는 미국 시민이 살거나 자주 여행하는 전세계 194개국의 Y2K 위험도를 평가하는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중국 우크라이나 등을 연말 요주의 여행국으로 분류했다.
우리나라의 Y2K 대비도 미국 못지 않다. 대홍수나 지진이 났을 때의 대비 양상을 연상시킬 정도다. 정부는 12월9일부터 사흘 동안 원전-통신 등 주요 분야에 대한 종합 모의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1000여명 규모의 ‘Y2K 긴급 기술지원단’을 구성해 연말연시 기간 중 비상 대기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남궁석 정보통신부장관은 12월1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Y2K 관계장관회의’에서 이같이 밝히고 “현재 21명인 Y2K상황실 인력을 56명으로 늘리고 분야별 민관합동대책반도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연도가 바뀔 무렵 컴퓨터바이러스와 해킹 피해가 클 것으로 보고 ‘전산망 해킹탐지 프로그램’을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적극 배포키로 했다(부속기사 참조).
이와 함께 Y2K문제가 터지더라도 응급 의료서비스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전국 255개 종합병원의 근무인원을 늘리고, Y2K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의료기기는 10일부터 사용을 금지키로 하는 등 분야별 세부 대책도 마련했다.
이만하면 안심하고 새 천년맞이 축제를 즐겨도 되지 않을까? 더욱이 원전-환경 등 국가 주요 분야에 대한 Y2K 문제가 거의 해결된 마당이다. 적어도 정부 발표에 따른다면 원전, 환경, 해운항만, 전력 및 에너지, 운송, 수자원, 통신, 국방분야는 100%, 금융 의료 등은 99% 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 가정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Y2K 국민행동 요령’(표 참조)만 잘 따른다면 불행한 사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내장된 칩’(Embedded chips)이다. 컴퓨터뿐 아니라 엘리베이터, 공정제어 설비, 팩스, 전화기, 자동지급기, 석유 펌프, 통신위성 등 다양한 기계에 사용되는 이 칩들은 PC의 날짜 조정하듯 손쉽게 교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예 칩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한 전문가의 추정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작동되는 컴퓨터 칩은 적어도 250억개에 이른다. 이 중 0.1%의 칩에 Y2K 문제가 생겨도 2500만대의 기계가 고장난다는 계산이다. 이를 해결하자면 고장난 2500만개에 내장된 칩을 즉시 교체해야 한다. Y2K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의 전문 조사기관인 가트너그룹의 전망은 한층 더 어둡다. 가트너그룹은 전체 기업의 4분의 1 정도가 Y2K 위기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수주일, 혹은 수개월 동안 현금흐름이 막혀도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Y2K 문제를 연구하는 경제학자 에드 야드니도 묵시록에 가까운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Y2K 문제로 인해 경기침체가 될 확률이 70%에 이르며, 그로부터 회복되는 데는 수개월~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그렇게 될까? 대답은 여전히 ‘알 수 없다’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일어날 수도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점이고, 세계 각국이 수백조(兆)원에 이르는 비용을 쏟아붓는 것도 이를 근거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는 Y2K 예방책보다 그 이후를 더 생각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미국이 Y2K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2000년 전에는 1770억달러를 예상한 데 비해 2000년 후에는 재난 복구 및 소송 관련 비용으로 그보다 2배 이상 더 많은 4970억달러(약 597조원)를 예상하고 있는 것이나, 전세계가 지금까지 쏟은 Y2K문제 해결 비용보다 사고로 인한 배상요구와 법정 소송에 2배 이상 더 많은 1조2000억달러가 소요될 것이라는 유엔의 전망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미국은 6월15일 Y2K 관련 소송이 폭주할 것을 우려해 손해배상금을 25만달러로 제한한 ‘Y2K 책임 제한법’을 통과시켰다. 그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제조한 컴퓨터가 Y2K문제를 일으켜도 이들 기업이 물어야 할 손해배상금은 25만달러를 넘을 수 없다. Y2K 문제가 발생할 경우 최다 피소국(被訴國)이 될 게 뻔한 미국의 발빠른 대응이다. 다른 나라들과의 갈등 소지가 많은 입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개인, 혹은 일반 가정은 어떨까? 흔히 Y2K문제는 기업이나 정부 기간산업 등과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반 가정에 국한된 Y2K문제란 실상 해프닝에 더 가깝다. 하지만 컴퓨터 시대의 또다른 특징은 어떤 개인이나 가정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쓰는 수돗물과 전기, 가스 등은 우리의 의지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관련 기관의 Y2K 문제에 의해 공급 중단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 개인이나 가정의 노력만으로는 Y2K문제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사실. 시민들이 갖는 불안감의 한 뿌리다. 게다가 Y2K문제에 대한 온갖 가상 시나리오가 일반의 경계감과 불안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Y2K문제를 빙자한 컴퓨터 바이러스의 증가도 적잖은 부작용을 낳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전기 수도 가스 등이 끊겼을 때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연도가 바뀌는 시기가 한겨울인 데다, 일반의 불안감에 편승한 유언비어 유포, 어수선한 연말연시를 틈탄 파괴와 약탈이 자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세기말이라는 독특한 사회적 정서와 Y2K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겹침으로써 벌어질 수 있는 일반의 패닉(Panic·공포) 현상이다. 정부가 100% 해결했다고 발표한 부문에서 Y2K 문제가 불거질 경우 그러한 위험성은 더욱 크다.
결국 일반 사람들의 침착하고 충실한 ‘국민 행동요령’도 중요하지만, 만약의 사태에 신속하고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정부의 ‘Y2K 비상체제’도 그에 못지 않게 긴요하다는 얘기다. 지금도 Y2K를 향한 카운터는 계속 그 숫자를 줄여가고 있다.
보신각 주변에 모여 ‘10, 9, 8, 7…’ 하고 소리치며 새로운 밀레니엄의 도래를 흔쾌히 기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집안에서 이불 쓰고 앉아 TV를 보며 재난에 대비해야 할까?(물론 컴퓨터는 꺼둬야 한다. 귀중한 파일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컴퓨터 2000년 표기 문제’ ‘밀레니엄 버그’ ‘컴퓨터 모라토리엄’ 등으로도 불려온 Y2K 문제는 2000년이 코앞에 다다른 지금까지도 인류의 희망 한 쪽을 어둡게 가린 그늘이다. 아직까지도, 또 그 누구도, 이것이 한바탕 소극(笑劇)에 불과할지, 아니면 할리우드의 재난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악몽의 현현(顯現)일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루프트한자항공 안셋오스트레일리아 등 적지 않은 항공사들이 ‘Y2K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면서도 연도가 바뀌는 시간대를 피해 항공기를 띄우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영국 일본 대만 프랑스 독일 등 수많은 나라들이 이 즈음을 금융기관 휴무일로 정했는가 하면, 미국 국무부는 미국 시민이 살거나 자주 여행하는 전세계 194개국의 Y2K 위험도를 평가하는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중국 우크라이나 등을 연말 요주의 여행국으로 분류했다.
우리나라의 Y2K 대비도 미국 못지 않다. 대홍수나 지진이 났을 때의 대비 양상을 연상시킬 정도다. 정부는 12월9일부터 사흘 동안 원전-통신 등 주요 분야에 대한 종합 모의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1000여명 규모의 ‘Y2K 긴급 기술지원단’을 구성해 연말연시 기간 중 비상 대기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남궁석 정보통신부장관은 12월1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Y2K 관계장관회의’에서 이같이 밝히고 “현재 21명인 Y2K상황실 인력을 56명으로 늘리고 분야별 민관합동대책반도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연도가 바뀔 무렵 컴퓨터바이러스와 해킹 피해가 클 것으로 보고 ‘전산망 해킹탐지 프로그램’을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적극 배포키로 했다(부속기사 참조).
이와 함께 Y2K문제가 터지더라도 응급 의료서비스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전국 255개 종합병원의 근무인원을 늘리고, Y2K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의료기기는 10일부터 사용을 금지키로 하는 등 분야별 세부 대책도 마련했다.
이만하면 안심하고 새 천년맞이 축제를 즐겨도 되지 않을까? 더욱이 원전-환경 등 국가 주요 분야에 대한 Y2K 문제가 거의 해결된 마당이다. 적어도 정부 발표에 따른다면 원전, 환경, 해운항만, 전력 및 에너지, 운송, 수자원, 통신, 국방분야는 100%, 금융 의료 등은 99% 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 가정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Y2K 국민행동 요령’(표 참조)만 잘 따른다면 불행한 사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내장된 칩’(Embedded chips)이다. 컴퓨터뿐 아니라 엘리베이터, 공정제어 설비, 팩스, 전화기, 자동지급기, 석유 펌프, 통신위성 등 다양한 기계에 사용되는 이 칩들은 PC의 날짜 조정하듯 손쉽게 교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예 칩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한 전문가의 추정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작동되는 컴퓨터 칩은 적어도 250억개에 이른다. 이 중 0.1%의 칩에 Y2K 문제가 생겨도 2500만대의 기계가 고장난다는 계산이다. 이를 해결하자면 고장난 2500만개에 내장된 칩을 즉시 교체해야 한다. Y2K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의 전문 조사기관인 가트너그룹의 전망은 한층 더 어둡다. 가트너그룹은 전체 기업의 4분의 1 정도가 Y2K 위기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수주일, 혹은 수개월 동안 현금흐름이 막혀도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Y2K 문제를 연구하는 경제학자 에드 야드니도 묵시록에 가까운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Y2K 문제로 인해 경기침체가 될 확률이 70%에 이르며, 그로부터 회복되는 데는 수개월~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그렇게 될까? 대답은 여전히 ‘알 수 없다’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일어날 수도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점이고, 세계 각국이 수백조(兆)원에 이르는 비용을 쏟아붓는 것도 이를 근거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는 Y2K 예방책보다 그 이후를 더 생각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미국이 Y2K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2000년 전에는 1770억달러를 예상한 데 비해 2000년 후에는 재난 복구 및 소송 관련 비용으로 그보다 2배 이상 더 많은 4970억달러(약 597조원)를 예상하고 있는 것이나, 전세계가 지금까지 쏟은 Y2K문제 해결 비용보다 사고로 인한 배상요구와 법정 소송에 2배 이상 더 많은 1조2000억달러가 소요될 것이라는 유엔의 전망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미국은 6월15일 Y2K 관련 소송이 폭주할 것을 우려해 손해배상금을 25만달러로 제한한 ‘Y2K 책임 제한법’을 통과시켰다. 그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제조한 컴퓨터가 Y2K문제를 일으켜도 이들 기업이 물어야 할 손해배상금은 25만달러를 넘을 수 없다. Y2K 문제가 발생할 경우 최다 피소국(被訴國)이 될 게 뻔한 미국의 발빠른 대응이다. 다른 나라들과의 갈등 소지가 많은 입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개인, 혹은 일반 가정은 어떨까? 흔히 Y2K문제는 기업이나 정부 기간산업 등과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반 가정에 국한된 Y2K문제란 실상 해프닝에 더 가깝다. 하지만 컴퓨터 시대의 또다른 특징은 어떤 개인이나 가정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쓰는 수돗물과 전기, 가스 등은 우리의 의지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관련 기관의 Y2K 문제에 의해 공급 중단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 개인이나 가정의 노력만으로는 Y2K문제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사실. 시민들이 갖는 불안감의 한 뿌리다. 게다가 Y2K문제에 대한 온갖 가상 시나리오가 일반의 경계감과 불안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Y2K문제를 빙자한 컴퓨터 바이러스의 증가도 적잖은 부작용을 낳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전기 수도 가스 등이 끊겼을 때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연도가 바뀌는 시기가 한겨울인 데다, 일반의 불안감에 편승한 유언비어 유포, 어수선한 연말연시를 틈탄 파괴와 약탈이 자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세기말이라는 독특한 사회적 정서와 Y2K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겹침으로써 벌어질 수 있는 일반의 패닉(Panic·공포) 현상이다. 정부가 100% 해결했다고 발표한 부문에서 Y2K 문제가 불거질 경우 그러한 위험성은 더욱 크다.
결국 일반 사람들의 침착하고 충실한 ‘국민 행동요령’도 중요하지만, 만약의 사태에 신속하고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정부의 ‘Y2K 비상체제’도 그에 못지 않게 긴요하다는 얘기다. 지금도 Y2K를 향한 카운터는 계속 그 숫자를 줄여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