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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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달력 ”천년을 기다렸다”

'200년 특수'겨냥 봇불… 옛 지도 . 판화 등 향수 자극 소재 많아

  • 입력2007-05-02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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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밀레니엄이 가까워지면서, ‘천년을 기다렸다’는 카피로 밀레니엄 특수를 누리려는 상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달력만큼 진정한 의미에서의 밀레니엄 상품이 또 있을까. 디자인회사에서 인쇄소까지, 달력을 만드는 사람들이 새 천년 맞이에 분주하다.

    96년 처음 이철수의 판화달력을 내놓았던 문학동네는 밀레니엄을 앞두고 판화달력 외에 사진작가 강운구, 작가 최성환의 그림달력 등 세 종류의 달력을 내놓았다. 문학동네의 정홍수부장은 “외국의 예를 볼 때 달력은 앞으로 가장 확실한 문화상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효형출판은 ‘옛 지도의 아름다움’ 이란 부제를 달아 ‘법고창신’력을 내놓았고 현암사는 2000년 달력 ‘그립습니다’, 실천문학사는 남궁 산의 판화달력 ‘생명소식 2000’을 제작했다. 이같은 밀레니엄 달력의 공통점은 미래적이고 세련된 이미지가 아니라 옛 것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를 발굴했다는 점.

    옛 서울과 평양 공주 원주 제주 등 전국 12개 고을의 옛 지도를 모아 달력을 기획한 효형출판의 송영만대표는 달력의 제목 ‘법고창신’은 연암 박지원이 쓴 말로 ‘온고이지신’보다 더 적극적인 뜻을 담고 있다고 했다.

    “모두가 첨단 테크놀로지에 매달려 있는 시대라 우리는 반대로 가보자고 했죠. 서울대 규장각에 묻혀 있던 옛 지도들이 시각적으로도 무척 아름다워 우리도 놀랐습니다.”



    10년 동안 ‘정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시리즈로 내놓은 현암사의 ‘그립습니다’는 “한 세기를 마감하면서 특히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되새겨보자는 취지”(형난옥주간)로 기획됐으며, 사계절을 담기 위해 제작에만 꼬박 1년이 걸린 달력이다. 달력에는 지푸라기로 만든 여치집처럼 중년층의 어린시절을 추억하는 놀잇감들이 가득한데, 설명을 붙여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달력 제작이 작가들 사이의 밀레니엄 프로젝트 자체인 경우도 있다. 디자인회사인 CDR가 2000부 한정 제작한 밀레니엄 달력은 서울과 도쿄, 뉴욕, 파리, 암스테르담 등 전세계 7개 도시의 그래픽디자이너들이 인터넷상에서 만나 함께 제작한 것이다.

    CDR의 김성천대표는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밀레니엄이 화두가 돼서 추진했다”고 말한다. 이 달력은 날짜를 보는 기능보다는 말 그대로 ‘엔드 오브 데이즈’에 관한 이미지들을 모았다고 할 수 있는데 ‘다양함’에서 단연 돋보인다.

    예를 들면 뉴욕에서 활동하는 잔 베르두라는 작가는 뉴욕의 거리 표지판 사진으로 날짜를 대신한 9월을 만든 것이다. 이 달력에 참여한 김성천씨 역시 복고적 이미지를 택해 우리 나라에서 밀레니엄의 정서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판매다. 달력 기획자들은 이제 달력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IMF로 기업체의 공짜 달력이 줄어든 것도 호재가 됐다. ‘달력도 인테리어 용품으로 내가 선택한다’는 생각이 많이 확산됐다는 것. 이미 ‘그립습니다’도 첫 인쇄한 1만부가 모두 팔려나갔다. 호암미술관이 밀레니엄을 노려 내놓은 55만원짜리 판화 원화 달력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 그래픽디자이너는 “올해는 2000년 특수, 내년에는 진짜 20세기의 끝을 맞는 특수가 있을 것” 이라며 1000년만의 대목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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