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대책문건을 작성한 중앙일보 문일현기자의 노트북컴퓨터 하드디스크 파일이 한때 완전 복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 주변에서는 “컴퓨터시대에 비밀은 없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다.
물론 문기자의 컴퓨터 파일을 완전복구하지는 못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이 없는 세상’이란 말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에서는 삭제해버린 컴퓨터 파일의 복구문제가 화제가 됐을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이 중국 베이징에서 문기자가 사용했던 핸드폰의 전화통화명세를 입수해 폭로하는 등 ‘흥밋거리’가 많았다.
파일 일부만 덧씌웠으면 복원 가능
컴퓨터 파일복구나 휴대폰 통화명세 등은 모두 컴퓨터시대의 부산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산물들은 이제 범죄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추적의 단서로 자리잡고 있다. 컴퓨터 하드디스크 파일을 복구하는 일은 흔치는 않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범죄증거를 확보하는데 종종 있어왔던 일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문기자가 컴퓨터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언론문건파일에 다른 파일을 덧씌우는 방법으로 파일을 지워버려 하드디스크 파일의 복구가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이번의 경우와 같이 고의적인 파일훼손이 없었다면 삭제한 파일을 복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드디스크 복구전문업체인 ㈜하우리측은 “파일을 삭제한다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파일에 담긴 데이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파일이 존재하고 있다는 정보를 없애는 것일 뿐”이라며 “삭제한 파일이라 도 다른 변수가 없다면 파일복구프로그램을 이용해 2, 3시간 안에 완전히 복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처럼 파일을 지운 다음에 그 파일 위에 다른 데이터를 입력하면 원래의 데이터가 다른 데이터로 대체되기 때문에 최초의 파일은 기술적으로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다른 파일을 덧씌우더라도 일부 데이터만 삭제됐을 때에는 남아 있는 ‘기계어’ 코드를 일일이 조합해 복원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같은 작업은 상당히 시간이 오래 걸려 하드디스크 복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노가다 뛴다”는 표현으로 통한다.
컴퓨터 파일의 복구뿐 아니라 90년대 초-중반부터 예금계좌 추적이나 전화통화명세 조회, 신용카드 사용명세 추적 역시 범죄혐의자의 행적을 밝혀내는데 기초적인 수사기법이 돼있다. 은행이나 아파트주차장, 백화점, 호텔 등 웬만한 곳에는 다 설치돼 있는 CC-TV의 녹화테이프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비밀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96년 경전투헬기사업과 관련해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됐던 이양호전국방장관의 사례는 이를 실감케 해준다. 당시 사건에서는 T호텔 일식당에 전산입력된 계산서가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당시 이전장관은 1억 5000만원이 건네진 T호텔에 간 사실이 없다고 버텼고 돈을 건넨 무기중개상 권병호씨는 외국에 체류하고 있어 수사는 벽에 부닥쳐 있었다. 검찰은 이미 1년여가 지난 T호텔 일식당의 계산서를 뒤진 끝에 이전장관이 권씨를 만나 함께 마신 음료수 두 잔 값이 지불된, 그날의 시 분 초까지 기록돼 있는 계산서를 찾아냈다. 이를 들이밀자 먼저 운전병 김모씨가 “이장관을 T호텔에 모시고 간 사실이 있다”고 실토했고 이어 이전장관도 뇌물수수 사실을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