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제25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공무담임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피선거권을 규정한 이 헌법 조항에 따라 연령 등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총선과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물론, 대통령선거에도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출마의 자유가 주어졌다고 국민 모두가 공무담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계에 바쁜 일반 국민이 선거와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더욱이 지역에서 선출직에 도전해 당선하려면 자신을 유권자에게 알리기 위한 선거운동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에 비해 지역에서 오랫동안 정치활동을 해온 정치인이 자녀에게 지역구를 물려줄 경우 일반인에 비해 수월하게 정치에 입문할 수 있다.
선친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정치에 입문한 대표적 사례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다. 정 원내대표의 부친은 정석모 전 의원으로 충남 공주·논산에서 4선, 전국구 2선 등 모두 6선을 기록했고, 정 원내대표도 충남 공주·연기에서 16·17대에 당선하고 18대 비례대표를 거쳐 20대 총선 충남 공주·부여·청양에서 당선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또한 부친인 남평우 전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경우. 1998년 남평우 전 의원이 재임 중 사망하자 그해 보궐선거에 출마해 지역구를 물려받은 뒤 내리 5선을 했다.
20대 국회에도 부친의 지역구를 물려받거나, 부친에 이어 원내에 진출한 부자(父子) 의원이 적잖다. 최근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에 휩싸인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 역시 부친이 14대 의원을 지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천과정에 이 같은 배경이 유리하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이른바 ‘정치인 금수저’ 논란이 제기된 것.
재벌 총수 2세의 경우 주식과 계열사 등 유형의 자산을 상속받는 데 반해, 정치인 자제는 선친의 정치적 네트워크 등 ‘무형의 자산’이 공천 등 선거과정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치인 가문에서는 무형의 자산이 대물림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다만 기업 경영과 정치의 차이는 재벌 총수 자녀가 지분 확보만으로 곧바로 기업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데 비해, 정치인 자제는 출마를 통해 유권자의 심판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사회적으로 흙수저-금수저 논란이 거센 상황이다 보니, 선친의 대를 이어 정치하는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나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의원 등을 ‘정치 금수저’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본질은 조금 다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치 입문과정에서는 선친의 후광이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으나, 결국 국민이 당락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당선 이후 정치인 개인의 역량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녀(父女), 부자(父子) 의원 갈수록 늘어나
의사 집안에 의사 나고, 판사 집안에 판사 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대를 이어 정치를 업으로 삼는 가문이 적잖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에 이어 딸까지 대통령직에 올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부녀(父女) 대통령이란 진기록을 세웠다.
20대 총선을 통해 원내에 입성한 이 가운데도 박정희-박근혜 부녀처럼 대를 이어 국회에 입성한 가문들이 있다.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에 입성한 국민의당 장정숙 원내대변인의 부친이 4선(7·8·9·10대)을 기록한 고(故) 장영순 의원이고, 최근 홍보비 리베이트 논란에 휩싸인 김수민 의원 역시 부녀 의원으로 기록됐다. 김 의원의 부친 김현배 씨가 14대 민주자유당 의원을 잠시 지냈다.
18대 국회에서는 2명의 부녀 의원이 동시에 탄생했다. 18·19대 의원을 지낸 김을동 전 의원의 부친이 3·6대 의원을 지낸 김두한 전 의원이고, 18대 자유선진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지낸 이영애 전 의원은 10대 의원을 지낸 이경호 전 보건사회부 장관의 딸이다. 특히 이 전 의원의 남편은 15대 의원을 지낸 김찬진 전 의원으로 이 전 의원은 부녀 의원에 이어 부부 의원이란 진기록을 동시에 갖게 됐다.
20대 총선 서울 도봉갑에서 재선에 성공한 인재근 의원도 부부가 국회의원을 지낸 경우. 남편은 15대부터 17대까지 3선을 기록한 고 김근태 의원이다. 부부 의원의 효시로는 고 박정수-이범준 부부가 꼽힌다. 5선(10·11·13·14·15대)을 지낸 박정수 전 의원은 국민의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는데, 박 전 장관의 부인 고 이범준 씨가 남편보다 앞서 9대 의원을 지냈다.
17대부터 19대까지 3선을 기록한 최규성 전 의원도 부부 의원 사례. 최 전 의원의 부인 이경숙 전 의원이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특히 이 부부는 17대 국회에서 부부가 함께 의정활동을 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박철언-현경자 부부도 번갈아 14대 의원을 역임했다. 박 전 의원은 13대부터 15대까지 3선을 했는데, 14대 국회에서 의원직을 상실하자 보궐선거에 부인인 현경자 후보가 출마해 당선함으로써 같은 지역구에서 부부가 14대 의원을 번갈아 역임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단 경우는 여럿 있다. 새누리당에는 정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 전 대표, 이종구, 김세연, 홍문종, 정우택 의원 등이 있고 더불어민주당에는 노웅래, 김영호 의원 등이 있다. 무소속으로 당선한 유승민, 장제원 의원도 부자 의원 사례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부친인 고 정석모 의원은 10대부터 15대까지 내리 6선을 기록했으며, 정 원내대표는 16대부터 18대까지 3선을 기록한 데 이어 20대 국회에 재입성해 부자 총 10선을 기록했다. 만약 19대 총선에서 정 원내대표가 당선했다면 정석모-정진석 부자는 10대부터 20대까지 11대를 연속해 부자가 원내에 진출하는 진기록을 세울 뻔했다. 19대 총선에서 이를 저지한 이는 또 다른 정치명문가 출신인 정호준 전 의원이다. 19대 의원을 지낸 정 전 의원은 8선(2~9대)을 기록한 조부 정일형 전 의원과 5선(9·10·13·14·16대)을 기록한 부친 정대철 전 의원에 이어 19대 국회에 입성함으로써 3대가 국회의원을 지낸 진기록을 갖고 있다.
예결위원장 김현미, 조부는 제헌의회 의원
15대부터 20대까지 내리 6선을 기록하는 김무성 전 대표 역시 부자 의원 출신이다. 부친인 김용주 전 의원이 초대 참의원을 지냈다. 김 전 대표의 장인 최치환 전 의원은 5선(5·6·7·10·12대)을 기록했다. 장인과 사위가 국회의원을 지낸 사례는 또 있다. 4선(11·12·14·15대)을 기록한 새누리당 권익현 상임고문의 사위가 16대부터 18대까지 3선을 기록한 임태희 전 의원. 임 전 의원은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 무소속으로 경기 분당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8대 의원을 지낸 강용석 전 의원의 장인 윤재기 전 의원도 13대 의원을 지냈다.17·18대 의원을 지내고 20대 국회에 재입성해 3선에 성공한 이종구 의원도 부자 의원 사례다. 이 의원의 부친은 6선(6·7·8·9·12·15대)을 기록한 고 이중재 의원으로 이중재-이종구 부자는 합쳐서 총 9선이다. 부산 금정에서 3선(18·19·20대)에 성공한 김세연 의원은 부자 8선을 기록한 정치 명문가 출신. 김 의원의 부친이 5선(11·13·14·15·16대)을 기록한 고 김진재 의원이다. 경기 의정부에서 4선(15·16·19·20대)에 성공한 홍문종 의원의 부친 홍우준 전 의원은 11·12대 의원을 지냈다.
4선(15·16·19·20대)에 성공한 정우택 의원의 부친은 고 정운갑 의원으로 5선(4·7·8·9·10대)을 기록했다. 정운갑-정우택 부자는 의원뿐 아니라, 부자가 모두 고시에 합격하고 장관을 지냈다는 독특한 이력도 갖고 있다. 정운갑 전 의원은 일제강점기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한 뒤 이승만 대통령 재임 때 농림부 장관을 지냈고, 아들 정우택 의원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김대중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3선(17·19·20대)을 기록한 노웅래 의원이 부자 의원 사례다. 노 의원의 부친이 5선(8·9·10·12·13대)을 기록한 고 노승환 의원. 노승환-노웅래 부자는 총 8선을 합작했다.
20대 총선에서 세 번째 도전 만에 등원에 성공한 김영호 의원의 부친은 6선(6·7·8·14·15·16대)의 김상현 전 의원. 2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함으로써 4선(17~20대) 고지에 오른 유승민 의원 역시 부자 의원 사례다. 유 의원의 부친이 13·14대 의원을 지낸 고 유수호 의원. 부산 사상에서 무소속으로 당선해 18대에 이어 재선 고지에 오른 장제원 의원의 부친은 12대 국회부의장을 지낸 고 장성만 의원으로 11·12대 의원을 지냈다.
20대 국회 상임위원장 선임과정에 헌정사상 최초로 예산결산위원장에 오른 김현미 의원은 조손(祖孫) 의원 사례다. 그의 조부가 제헌의회 의원을 지낸 고 김종문 의원이다. 19대 의원을 지낸 고 성완종 의원의 동생 성일종 의원이 20대 국회 입성에 성공함으로써 형제 의원 반열에 올랐다. 경기 김포갑에서 당선해 20대 국회에 처음 등원한 김두관 의원은 ‘행정자치부 장관’과 ‘경남도지사’를 지내고 ‘국회의원’에 올라 트리플크라운을 완성했다. 지금까지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한 이는 노동부 장관과 경기도지사를 역임하고 6선(13·14·16·17·18·19대) 의원을 지낸 이인제 전 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 및 재선 경기도지사를 역임하고 4선(14·15·16·18대)을 역임한 손학규 전 의원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