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높은 만세 소리는 없었어도 이번 3·1절에도 어김없이 태극기가 전국 방방곳곳에서 휘날렸다. 대한민국국기법 제4조는 태극기를 대한민국 국기로 정하고 있다. 태극기는 1882년 조선을 대표하는 국기로 제작된 후 1883년 조선 국기로 인정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국기법 제정법률안(법률 제8272호)은 2007년 1월 26일에야 비로소 입법됐다.
국화(國花)나 국가(國歌)에 대한 법률은 없다. 무궁화가 우리 국화가 된 것은 근대까지 집집마다 울타리 밑에서 볼 수 있을 만큼 흔했고 많은 병충해 속에서도 끈질기게 꽃을 피우는 성정이 우리 민족의 본성을 닮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도시는 물론이고 농촌에서도 무궁화를 보기 어렵다. 애국가의 경우도 작곡가 안익태의 친일 행적과 ‘코리아판타지’를 둘러싼 표절 여부가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반면 태극기가 대한민국 국기라는 사실에는 논란이 없다. 국화법과 국가법은 따로 없지만 대한민국국기법이 2007년 제정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다만, 태극기의 의미를 해석할 때 일부 잘못된 견해가 버젓이 통용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동양철학은 태초 태극에서 출발해 음양이 생겨나고 만물이 생성됐으며, 이것이 5행의 형식으로 변화하면서 역사가 형성된다고 해석한다.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태어날 때 ‘목화토금수’ 5행 가운데 하나의 기운을 갖고 태어난다고 생각했고, 옥새를 만들 때 임금의 부족한 기운을 보충하는 문양을 새겨 넣었다. 4대문을 지을 때 동쪽에는 흥인지문을, 남쪽에는 숭례문을, 서쪽에는 돈의문을 세웠고, 묘를 쓸 때도 북쪽을 등진 사자(死者)를 중심으로 왼쪽(동쪽)에 청룡, 오른쪽(서쪽)에 백호, 남쪽에 주작(朱雀), 북쪽에 현무(玄武)를 뒀다. 조선은 궁중에서 사용하는 음악에도 5행을 엄격히 반영했다.
태극기에 사용된 4괘는 기본적으로 ‘주역(周易)’ 8괘를 참조했다고 한다. 영어로 ‘The Book of Change’로 번역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주역’은 세상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해가면서 완성되는 과정을 다룬 책이다. 태극 문양과 4괘에는 조선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영원히 발전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하지만 4괘는 8괘 가운데 상하 대칭인 괘를 뽑아 보기 좋게 가져다 놓았을 따름이다. 건은 하늘, 곤은 땅, 감은 물, 이는 불을 상징하는데 5행과는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4괘는 동서남북 네 방향이나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사람의 성정(性情)을 나타내는 인의예지와는 관련이 없다. 괘가 자리 잡은 각각의 위치 또한 8괘 순서와도 맞지 않고, 중앙에 있는 태극 문양은 그 순환 방향이 왼쪽으로 돼 있어 주역의 원리와 다르다. 태극 문양은 주역과 관계없이 우리 조상들이 가장 먼저 만들어 쓴 문양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현 태극기는 우리나라가 ‘동해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닳도록’ 발전하기를 바라는 선조의 마음이 담긴 각각의 상징물들을 탁월한 디자인 감각으로 배열해놓은 것일 따름이다. 수백 년, 수천 년 세월 동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다듬어졌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새삼스레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국기를 갖고 있음을 되새겨본다. 뒤늦게 제정된 감은 있지만 당신은 대한민국국기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그 법을 지키려 노력하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