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드시티는 골든트라이앵글의 ‘연락처’
영국 동남부 ‘골든트라이앵글’ 바이오의료 클러스터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케임브리지대 캠퍼스 전경. [GettyImages]
골든트라이앵글 클러스터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한국 속담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다. 세계 유수 대학과 연구기관, 제약사, 그리고 벤처캐피털을 연결하고 엮어주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촉진하는 기관까지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영국 동남부의 생명과학 분야 진입로(Your front door to the life sciences sector of England’s Greater south east)’를 표방하는 메드시티(MedCity)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런던시장이던 2014년 런던시와 영국고등교육기금위원회,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을 비롯한 런던 소재 4개 대학이 공동으로 설립한 비영리기관으로, 이 지역의 바이오의료 생태계를 지원, 육성하는 단체다. 메드시티는 이곳 대학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기반으로 산업계와 협업, 투자 유치, 스타트업 및 스핀오프(Spin-Off·사내 창업 후 분사) 지원 등에 주력한다. 스타트업에는 사무공간을, 중소기업에는 투자 유치 및 유수 대학과의 네트워킹을 지원한다.
메드시티가 설립된 배경과 목표에 대해 이 기관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명과학과 헬스케어는 골든트라이앵글을 가로지르는 경제 어젠다의 핵심이다. 세계 최고 대학과 전문 연구기관, 병원, 투자 인프라를 보유하고 역동적인 산업 기반도 갖춘 이 지역에서 스타트업부터 다국적 기업까지 모든 기업이 생명과학의 각 분야에서 번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각자 뛰어난 역량을 갖춘 ‘플레이어’가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오픈 이노베이션을 촉진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메드시티는 스스로를 “우리는 골든트라이앵글 클러스터의 연락처(little black book)”라고 소개하면서 외부에 대해서도 매우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메드시티가 주력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는 초기 자본 조달 프로그램인 ‘에인절스 인 메드시티(Angels in MedCity)’. 올해로 7년째를 맞는 이 프로그램은 의료 및 생명과학 분야의 스타트업이 초기 자본을 유치하는 유효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 43개 회사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1200만 파운드(약 182억 원) 넘는 투자금을 유치했다. 최근에는 케임브리지에 기반을 둔 바이오정보기술 스타트업 이글 제노믹스(Eagle Genomics)가 에인절스 인 메드시티를 통해 100만 파운드(약 15억 원)를 투자 받았다. 이 스타트업은 새로운 후보 의약품을 좀 더 빨리 찾아낼 수 있는 정보기술(IT)을 개발하는 회사로 유니레버, 글락소스미스클라인 같은 다국적 기업과 협업하며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다국적 제약사와 공동연구 활발
2019년 11월 15일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열린 ‘한영 제약바이오 네트워킹’ 행사에서 허경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토니 쿠자라이드 밀너 세러퓨틱스 컨소시엄 원장, 한남식 밀너 세러퓨틱스 컨소시엄 AI연구센터장(왼쪽부터)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아래). 2019년 11월 14일 영국 런던에서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메드시티 등 4개 기관이 공동주최한 ‘한영 바이오파마 콘퍼런스’에서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5년 설립된 이 컨소시엄에는 케임브리지 지역의 3개 학술센터(케임브리지대, 생어연구소, 바브라함연구소)와 다국적 제약사(글락소스미스클라인, 아스트라제네카, 아스텍스, 시오노기, 화이자, 얀센 등)가 참여하며, 현재 20개 공동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공동연구 프로젝트는 종양학, 전염병 관련 연구와 화합물, 데이터, 장비 관련 연구까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일례로 루시 코엘 케임브리지대 박사는 아스텍스와 함께 FBDD(Fragment-Based Drug Discovery)에 대한 인공지능 기술 적용을 공동연구하고 있다. FBDD란 약물 타깃과 상호작용하는 다양한 저분자화합물 절편을 엮어 새로운 후보 물질을 도출하는 신약 설계 방법을 뜻한다. 이외에도 밀너 세러퓨틱스 컨소시엄은 스핀아웃을 위한 액셀러레이터 역할 및 투자 연계 활동 등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원희목 회장을 비롯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임직원은 골든트라이앵글 클러스터를 방문해 이 컨소시엄 관계자들과 회의한 바 있다. 협회 관계자는 “필요에 따라서는 제약사 소속 과학자가 학술센터로 파견 나와 함께 실험하기도 한다”며 “모든 공동연구 프로젝트에서 강조되는 것은 전문지식의 상호 공유라고 한다”고 전했다. 공동연구를 추진할 때 논의 시작 단계부터 기밀누설방지협약(NDA)을 맺기까지 통상적으로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밀너 세러퓨틱스 컨소시엄은 이 시간을 일주일로 단축하고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대학 스스로 ‘오픈 이노베이션’ 추진
2019년 6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열린 밀너 세러퓨틱스 컨소시엄의 심포지엄. [사진 제공·밀너 세러퓨틱스 컨소시엄]
대학 스스로도 외부와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구한다는 점도 골든트라이앵글 클러스터의 자랑이다. 케임브리지대 산하 케임브리지 바이오메디컬 캠퍼스(Cambridge Biomedical Campus)는 스타트업부터 다국적 기업까지 다양한 외부 기관과 여러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창업시킨 스타트업만 105개에 달한다.
런던에 위치한 4개 대학(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런던 퀸메리대, 킹스 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 UCL)은 대학 내 여러 이노베이션 센터를 중심으로 대학에서 나온 연구 산물로 창업은 물론, 기업과 연결을 지원하는 플랫폼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제조에서 상업화까지 전문적 노하우와 장비, 다양한 글로벌 파트너십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런던 퀸메리대는 기술 이전에 주력하는 ‘퀸 메리 이노베이션(Queen Mary Innovations Ltd)’을 설립, 2008년 이후 매년 1개 이상 회사 창업을 지원해왔다. 1억1000만 파운드(약 1680억 원) 규모의 국제 협력을 위한 별도의 펀드를 마련해두고 있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은 중개연구센터인 아카데믹 헬스 사이언스 센터(Academic Health Science Center)를 통해 후보물질 발굴, 임상시험 모델 설계 등 연구개발 초기 단계에 집중하면서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와 긴밀하게 협력한다. 킹스 칼리지 런던은 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에 주력하면서 생산적인 국내외 파트너십 형성에 노력한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는 학계와 협업 및 기업 육성(인큐베이팅)을 지원하고, 다국적 기업과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UCL은 유럽에서 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 재생의약품 등 첨단의약품 임상시험 건수가 가장 많은 대학이다. 이 대학은 현재 한국의 15개 디지털헬스 중소기업에 공동연구를 위한 자금을 지원하는 GBIP(Global Business Innovation Programme)를 구상하고도 있다.
킹스 칼리지 런던이 세운 LAT(London Advanced Therapies)는 이들 4개 대학과 기업 간 네트워킹을 지원하면서 첨단의약품의 임상시험 활성화를 도모한다. 국립보건연구원(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Research)도 스타트업이 초기 단계 연구부터 후기 임상시험까지 지속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