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신세계백화점 본점 식품관. 평일 오후인데도 일반 고객과 인근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최근 3~4년간 통계를 보면 백화점 식품관의 성장세는 전체 매장보다 훨씬 두드러진다. 2012~2014년 롯데백화점 전체 품목 매출 신장률은 매해 2.1%, 3.9%, 1.5%였던 데 비해 식품 매출은 18.7%, 13.5%, 10.2%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신세계백화점의 전체 품목 매출 신장률은 7.4%, 2.0%, 0.1%에 그쳤지만 식품은 11.3%, 12.4%, 5.4% 상승했다. 현대백화점의 여성패션 매출 신장률은 2.8%, 3.7%, 2.9%였으나 식품 매출은 12.5%, 14.1%, 15.2% 상승했고 올해는 10월까지 14.9% 올랐다. 백화점에서 쇼핑하지 않는 소비자도 식품관에서는 지갑을 연다는 의미다.
이런 추세 때문에 백화점마다 인기 식품업체를 유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2~3년 전부터 백화점 식품관 경쟁이 ‘혈투’라 할 만큼 치열해졌다”며 “예전에는 백화점이 ‘갑’이고 입점업체가 ‘을’이었지만 이제는 바뀌었다. 요즘은 백화점이 100% 업체를 모셔간다”고 말했다.
30분 이상 줄 서야 ‘동네 맛집’
백화점 식품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식품관 맛집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지역에서 유명한 ‘동네 맛집’ 또는 해외 유학파 소비자가 알 만한 외국 유명 식품 브랜드다. 업체 후보는 까다로운 검증으로 선정된다. 서울시내 모 유명 백화점은 식품업체 선정을 위해 세 가지 기준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에서 총 노출 건수가 3000건 이상이고 △소비자에게 인지도가 높아야 하며 △고객이 많을 땐 30분 이상 줄을 서는 곳이다.
이 요건이 충족되면 바이어들이 업체 설득에 나선다. 그중 1순위는 발로 뛰는 것. 같은 매장을 수십 번 방문하거나 정기 회식장소로 삼아 접촉 횟수를 늘리는 식이다. 접촉 시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롯데백화점 일산점에 입점한 ‘세컨스쿱젤라또’의 유한석(35) 대표는 “한 바이어가 부산에서 미팅을 진행한 다음 날 새벽 첫차를 타고 충남 천안에 있는 과자 가게로 가더라”며 “업체 사장이 바쁘다며 만나주지 않으니 매장이 영업을 준비하는 이른 아침에 명함이라도 건네려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갤러리아 F·B(식음료사업부) 임직원들도 서울 한남동 피자 맛집 ‘핏제리아 디 부자’를 본점에 유치하기 위해 비오는 날 특별 제작한 과일바구니를 들고 매장으로 찾아가 미팅을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브랜드 입점 경쟁도 치열하다. 백화점 바이어인 윤모(29·여) 씨는 “일본 디저트업체와 수개월 전부터 접촉한 후 현지에 갔더니 다른 백화점들도 입점 경쟁을 하고 있었다”며 “경합하는 국내 벤더(매장 관리) 회사만 17곳이었다. 어렵게 찾아간 현지 업체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백화점이 업체를 설득하는 강력한 수단은 특혜다. 첫째, 매출 수수료를 할인해준다. 식품관 입점업체는 매달 매출액의 20~40%에 달하는 수수료를 백화점 측에 지불하는데, 두 군데 이상 백화점에서 유치 경쟁이 붙으면 서로 상대 백화점보다 수수료를 낮춰주겠다고 제안한다.
둘째, 영업에 유리한 위치를 우선적으로 제공한다. 핏제리아 디 부자는 한화갤러리아 본점 입점 시 “장작 화덕이 없으면 입점이 힘들다”고 요구해 백화점 측이 화덕 설치 공간을 마련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매장 위치의 유동고객도 중요하다. 신세계백화점 본점·강남점에 롤케이크 브랜드 ‘몽슈슈’를 입점한 몬쉘코리아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경쟁력 있는 업체는 유동인구가 많은 위치를 선점하게 된다. 식품관 입구 앞이나 에스컬레이터 앞, 마트 계산대 근처가 고객이 많이 다니는 요지다. 창고나 냉장고 위치도 중요하다. 고객 응대 속도와 직원들의 근무 효율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백화점이 서로 유치하려는 업체는 이 같은 조건에서 특혜를 받을 수 있다.”
업체의 입점 비용을 백화점이 일부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백화점 입점 비용은 매장 업종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업체와 백화점이 각각 부담하는 부분이 다르다. 업체는 3.3㎡당 350만~500만 원의 인테리어비와 설비비, 3.3㎡당 50만~100만 원의 설계비를 낸다. 백화점은 전기·배수공사, 천장 및 바닥 공사로 3.3㎡당 100만~200만 원 비용을 댄다. 높은 초기 비용은 백화점과 업체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그래도 백화점이 꼭 들여오고자 하는 업체는 인테리어비 일부를 대신 내주거나 식품 쇼케이스 등 설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업체 사이에서는 ‘어느 백화점이 무슨 특혜를 줬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돈다”며 “협상에서 우위에 선 업체들은 이런 정보를 입수하고 백화점과 계약할 때 더 높은 수준의 특혜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이 2012년 선보인 식품관 ‘고메이494’. 한 장소에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식문화를 만나는 콘셉트다.
지역의 유명 맛집 가운데는 백화점 입점에 관심이 없는 곳이 적잖다. 3월 롯데백화점 본점에 입점한 중국집 ‘송탄 영빈루’의 왕석보 대표는 “2년 전부터 백화점 직원들이 입점을 설득했는데 처음엔 내키지 않아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말했다. 왕 대표는 “백화점 영업이 절차상 까다로운 측면이 많고 밤에는 운영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아직은 운영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숨은 맛집 사장들은 백화점보다 지역 내 알짜배기 상권이나 가맹점 증설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백화점 바이어들은 애가 탄다”고 말했다.
식품관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윤 바이어는 “백화점 식품관의 변화는 오너들의 관심사”라며 “식품 바이어 인력도 식품학 전공자뿐 아니라 패션 전문가, 파워블로거, 셰프 등으로 확장 중이다. 해외 브랜드를 최초로 유치하거나 기존에 없던 식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혈투는 이미 시작됐고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