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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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아야 사는 정치의 역설 유승민을 보라

선거의 여왕 ‘레이저’ 맞은 뒤 차기주자로 급부상한 돌연변이 정치인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5-11-20 17: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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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움받아야 사는 정치의 역설 유승민을 보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7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은 요즘 가장 핫한 정치인이다. 새누리당 정치인 가운데 단연 독보적이다. 원내대표 시절에는 그 자리 때문에 언론의 관심이 높았다. 이제는 인물 자체에 관심이 높다. 본인도 놀라울 것이다. 자고 나니 스타가 된 격이니 말이다.

    유승민 찍어낸 두 가지 이유

    이 모든 게 박근혜 대통령 덕이다. 박 대통령은 인물을 키우는 데 미다스의 손을 가진 듯하다. 눈여겨 기용했다 내치면 유명해진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그랬고 유승민 의원이 그랬다. 모두 유력 차기 대권주자로 성장했다. 미움받을수록 세간의 관심이 더 높아진다는 점이 그의 과거와 판박이기도 하다. 역시 ‘박근혜 키즈’답다.

    젖을 떼야 할 순간이 오면 어머니는 냉정해져야 한다. 젖 달라고 우는 아이가 애처롭지만 눈 질끈 감고 아이를 멀리해야 한다. 성인이 된 후에는 마음에서조차 서서히 지워야 한다. 지우지 못하면 상처를 받는다. 내가 준 사랑만큼 되돌려 받지 못해 배신감조차 느껴진다. 결국 집에서 내보내야 한다. 집 나간 자녀는 오히려 더 잘 살아 배신감을 더 깊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의원의 관계가 이와 흡사하다. 물론 박 대통령이 어머니 심정으로 유 의원을 내쳤다는 뜻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왜 유 의원을 원내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렸을까.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2015년 6월 25일 박 대통령이 여야가 합의로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격정적으로 쏟아낸 발언은 이랬다.



    “여당 원내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입니다. (중략) 저도 결국 그렇게 당선 기회를 달라고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이 남았습니다. (중략)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이 말에 결국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를 그만둬야 했다. 90도 절과 사죄의 변도 분노한 박 대통령의 마음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배신감만이 전부였을까. 아니다. 위기감의 반영이기도 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6월 3주 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에 대한 직무수행 지지율은 29%로 집권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부정적 평가가 61%로 긍정적 평가를 2배 이상 앞설 정도였다. 8월 25일 임기 반환점이 임박한 시점이었기에 레임덕에 대한 우려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모질어진다. 없던 분노도 끌어 모아 재기의 불쏘시개로 삼으려 들기 마련이다. 이때 내 분노를 극대화해줄 누군가가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박 대통령에게는 유 의원이 그런 존재였다. ‘바로 그때’ ‘바로 그 자리’에 유승민이 있었던 것이다. 만약 바로 그때 박 대통령 지지율이 최저점을 찍지 않았더라면, 바로 그 자리, 원내대표 자리에 유승민 의원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이후 박 대통령 지지율은 반등세로 돌아섰고, 극적인 남북한 고위당국자 접촉 타결 소식 속에 임기 반환점을 돌며 9월 초 같은 조사에서 지지율이 54%까지 올랐다. 돌이켜보면 굳이 유 의원을 불쏘시개 삼지 않았어도 올랐을 지지율이지만, 유 의원을 찍어낼 ‘바로 그때’ 박 대통령은 심각했을 것이다.

    내친 김에 총선까지?

    지지율이 회복됐으니 안도할 만하지만 박 대통령의 성에 찰 리 만무하다. 내친 김에 임기 전반 부진을 만회하고 싶어진 듯하다. 아버지만큼은 아니더라도 버금가는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은 욕심도 없지 않아 보인다. 아울러 임기 말 레임덕도 막으면서 퇴임 이후 행복한 시간도 보장받고 싶을 것이다.

    임기 말 레임덕 방지와 관련해 가장 거슬리는 존재는 역시 김무성 대표다. 새누리당 내 비박(비박근혜)계의 지지까지 결집해 대표가 된 김무성이다. 유승민 의원을 떼어냄으로써 일단 기세를 꺾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자기 정치’에 대한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는 유력 대권주자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존재감을 키워온 박 대통령으로서는 더욱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김무성을 견제할 가장 좋은 방법은 2016년 총선에서 자기 사람을 심으려는 시도를 꺾는 것이다. 2016년 총선에서 친김(친김무성)계를 양산함으로써 2017년 당내 경선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는 것이 김 대표의 목적일 터이기 때문이다. 2016년 총선에서 친김계가 형성되면 새누리당발(發) 레임덕은 더 가속화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2016년 총선까지는 본인 중심으로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총선에서 친박(친박근혜)계를 더 확장하는 데 성공한다면 2017년 대통령선거(대선) 경선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최소한 새누리당발 임기 말 레임덕은 막을 수 있다. 아울러 차기 대통령 만들기까지 이뤄낸다면 퇴임 후에도 박 대통령은 야권의 예봉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야권 아니던가.

    이런 판단에 따라 6월 25일 ‘돌격 앞으로’를 외친 박 대통령은 이후에도 노동개혁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를 연쇄적으로 제기하며 2016년 총선의 전면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김무성 대표의 친김계 창출 프로젝트인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를 무산시키는 동시에, 청와대 참모진과 장관들의 총선 출마를 전제로 한 대규모 사퇴로 물갈이 공세까지 퍼붓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대척점에 유승민 의원이 있다.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노동개혁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은 재벌개혁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4월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 당시 유 의원은 재벌개혁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재벌 대기업은 지난달 정부의 특혜와 국민의 희생으로 오늘의 성장을 이뤘다. (중략) 천민자본주의 단계를 벗어나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의 아픔을 알고 2차, 3차 하도급업체의 아픔을 알고 이런 문제의 해결에 자발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중략)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재벌정책은 재벌도 보통 시민과 똑같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말로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기도 했던 유 의원은 최근 자신이 대표 발의한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중부담-중복지’를 주장하며 신보수를 외치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공약했지만 집권 이후 경제활성화만 역설하는 박 대통령과 차별화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미움받아야 사는 정치의 역설 유승민을 보라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왼쪽)이 11월 8일 유수호 전 의원의 빈소가 마련된 대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상주인 유승민 의원(오른쪽)을 위로하고 있다.

    박근혜의 반대말은 유승민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도 유 의원은 “국정교과서가 최선의 방법이었나. 이 점에 대해 나는 좀 고민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새정연 추미애 최고위원은 최근 이 때문에 유 의원을 몰아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헌법과 법률을 어기는, 원칙에 어긋나는 하위법인 정부 시행령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국회법에 합의했다는 이유로 유 의원이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결국 시행령만으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서도 유 의원은 박 대통령과 생각이 다르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 김무성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의 동력을 되살리려고 새정연 문재인 대표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전격 합의했을 때다. 당시 청와대는 5대 불가론까지 제시하며 반대를 분명히 했다. 이런 속에서 김 대표가 유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유 의원은 화답이라도 하듯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기존 여론조사 방식보다 낫다”고 언급했다.

    TK(대구·경북) 물갈이론에 대해서도 유 의원은 정색한다. 유수호 전 의원의 장례 기간 상가를 방문한 친박계 윤상현 의원은 “지난번 총선 때도 TK에서 60%가량 물갈이를 해서 전체 의석이 과반수를 넘을 수 있었다”며 물갈이론을 정면 제기했다.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지 않아 안 그래도 유 의원은 물갈이 대상이 확실하다는 소문이 돌던 터다.

    여기에 대해 유 의원은 상가를 방문한 한 친박계 인사에게 “유승민 키즈는 다 죽는다고 말하고 다니느냐”며 “그런 얘기하고 다니면 다리몽둥이를 뿌라뿐다(‘부러뜨린다’의 대구 방언)”는 농담 아닌 농담으로 대응했다. 유 의원은 종합편성채널 JTBC와 인터뷰에서 “공천 과정에서 정말 부당한 배제, 차별 이런 게 있는데도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그건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공천에서 배제하면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박 대통령이 최근 계속 추진을 선언한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에 대해서도 유 의원은 반대하고 있다. KFX 사업 예산편성과 관련해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ADD), 공군,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대통령을 속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결국 박 대통령이 속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난해 10월 유 의원이 원대대표 시절 국회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선보인 ‘청와대 얼라들’과 같은 맥락의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 이야기가 나왔으니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박 대통령이 배신과 심판까지 언급하고 나선 진짜 배경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정윤회 감찰 문건 유출 당시 김무성 대표의 수첩에 적힌 ‘KY’가 화제가 된 바 있다. 김 대표와 유 의원의 영문 이니셜이었다. 이후 새누리당 이준석 전 비상대책위원의 폭로가 이어졌다. 십상시 가운데 한 명인 청와대 음종환 전 행정관이 두 사람을 문건 유출 배후라고 언급해 이 사실을 김 대표에게 전달했다는 것.

    정윤회 감찰 문건 유출 사건으로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지지율이 40% 아래로 떨어졌다. 문건 유출 혐의로 조사받던 최모 경위가 자살한 2014년 12월 3주 차,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정례조사에서 박 대통령 지지율은 37%를 기록했다. 이후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연타를 맞은 끝에 올해 6월 29%까지 떨어졌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대통령 측근들이 정윤회 감찰 문건 유출 배후가 김무성 대표와 유 의원이라고 믿는다면 박 대통령 역시 그렇게 보고받고 그렇게 믿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면 무고(誣告)도 이런 무고가 없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런 가설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정윤회 씨가 여전히 비선(秘線) 활동을 하고 있다면? 박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이런 그가 자신에 대한 감찰 문건 유출 배후로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이라고 확신한다면? 김 대표와 유 의원이 진심으로 대통령을 잘 모시려는 마음에서 정윤회 감찰 문건을 유출한 것이 사실이라면?

    누가 박 대통령의 성공을 진심으로 원했는지는 역사로 입증될 일이지만, 지금 박 대통령 곁에는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가 김 대표나 유 의원보다 더 가까이 있고, 앞으로도 더 가까이 있을 것이며, 박 대통령도 그들을 내칠 생각이 없다. 결국 유 의원은 박근혜 정부 내내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웃을 사람은 누구?

    미움받아야 사는 정치의 역설 유승민을 보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10월 16일 대구 계산성당에서 ‘대구, 개혁의 중심이 되자’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2016년 총선에서 유승민 의원은 공천을 못 받을지 모른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울 필요는 없다. 결국 웃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찬란한 성과를 이룬다면 모르겠으나 그런 일은 이제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 경제지표가 그렇다. 성장률과 수출 하락세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공산이 크다. 박 대통령이 사활을 거는 경제활성화도, 창조경제도 추세를 반전하는 데는 역부족일 것이다.

    무기력한 야당 덕에 2016년 총선에서 승리하더라도 경제 상황을 급반전할 수는 없다. 2017년 대선에서는 경제가 더 큰 화두가 될 것이다. 이때 새누리당이 다시 경제활성화와 창조경제로 국민을 설득하기는 힘들다.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을 선점하고 있는 쪽이 유승민 의원이다. 야당마저도 탐내는 대안이다. 더욱이 유 의원은 경제 전문가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내년 총선 및 내후년 대선 시나리오가 그대로 달성될지도 미지수다. 박 대통령의 총선 진두지휘도, 전면 물갈이 공천도, 총선 180석 압승, 2017년 친박계 대통령 배출도 아직은 가능성일 뿐이다. 청와대 참모진과 새누리당 내 친박계의 크고 작은 실수가 더해지면 일순간 무산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임기 말 레임덕은 어떤 대통령도 피하기 어렵다. 지는 해를 붙들려 하는 것은 허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오히려 순응하고 마음을 비우는 편이 대통령 본인에게도, 국민에게도 좋다. 더욱이 뜨는 해는 막는 게 아니라 반겨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유승민 의원은 뜨는 해 가운데 한 명이다. 비록 원내대표 퇴임 초기만은 못하지만 인기도 여전하다. 인기를 뒷받침할 실력도 갖춘 보기 드문 정치인이기도 하다. 국가적으로도, 국민적으로도 그를 버려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유 의원이 대권주자로서 행보를 시작했다. 여전할 탄압 속에서도 다시 신드롬을 일으킬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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