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이대호(소프트뱅크 호크스).
상위 10위권 1루수의 평균 연봉이 이렇게 높다는 것은 그만큼 메이저리그 전체 시장에서 희소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반대로 메이저리그의 젖줄이자 요람, 마이너리그에 가면 1루 자원이 차고 넘친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다른 포지션 선수들이 종종 1루를 노린다.
올해 kt에서 뛰었던 댄 블랙은 야구 명문 미국 퍼듀대 스타 포수 출신이다. 그러나 프로 입단 이후 1루로 포지션을 바꿨다. 수비 능력에 비해 타격의 자질을 극대화할 수 있는 포지션이 1루이기 때문이다. 왼손타자가 늘어나고 타구 속도가 빨라진 현대 야구에서 1루수의 수비 능력은 과거에 비해 훨씬 중요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1루수는 수비보다 타격이다.
현실 안주 대신 꿈 택해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 지금까지 아시아 출신 1루수는 사실상 단 한 명이다. 주인공은 최근 KIA에서 은퇴를 선언한 최희섭(36)이다. 일본 특급 내야수들이 연이어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렸지만 1루수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메이저리그는 기본적으로 한국 프로야구보다 일본 프로야구를 신뢰한다. 그러나 1루수만큼은 홈런 생산 능력과 장타력에서 메이저리그 눈높이를 충족한 일본 타자가 나오지 않았다. ‘국민타자’로 불리는 이승엽(삼성)조차 전성기 때 메이저리그 구단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했다. 한국과 일본 리그에서 최고 홈런 타자임을 입증했지만 메이저리그는 홈런 생산 능력에 계속 의문부호를 달았다. 제시한 조건은 일본은 물론, 한국에 비해서도 너무 박했다.
투수와 달리 아직 메이저리그 도전에서 척박한 땅인 1루수에 한국을 대표하는 두 명의 거포 이대호(33·소프트뱅크 호크스)와 박병호(29·넥센 히어로즈)가 나란히 도전장을 냈다.
이대호는 11월 3일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다. 만약 일본에 남는다면 내년 시즌 소프트뱅크와 옵션을 제외한 보장 연봉만 47억 원에 달하지만 현실 안주보다 오랜 꿈을 선택했다. 이대호는 “프로선수는 연봉으로 인정받지만, 가장 큰 가치는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서 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원하고 내가 뛸 수 있는 팀이 가장 우선이다. 새 팀이 원한다면 열심히 수비훈련을 하고 몸을 만들어 3루도 맡겠다”고 말했다. 많은 이의 예상을 깬 아름다운 도전의 시작이다.
한국 프로야구 4년 연속 홈런왕, 2년 연속 50홈런에 빛나는 박병호는 11월 2일 한국야구위원회(KBO)를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포스팅(공개경쟁입찰)을 요청했다. 넥센과 박병호는 9일까지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낸 메이저리그 구단에 협상 승낙 여부를 통보해야 한다.
“신인의 자세로 돌아가겠다”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박병호(넥센 히어로즈).
박병호의 강점은 빠른 배트 스피드와 힘이다. 시즌 20도루 이상을 해낼 수 있는 빠른 발도 갖고 있다. 만 30세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어 체력적, 기술적 전성기라는 것도 장점이다. 단 포스팅은 FA 신분인 이대호와 달리 팀을 직접 선택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이 강정호가 소속된 피츠버그처럼 가족적이지는 않다.
이대호의 메이저리그 도전에 대해 미국 매체들은 ‘일본에서 충분히 검증됐지만 나이가 많은 편’이라는 공통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대호는 도전에 성공할 경우 만 34세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안정된 고액연봉을 포기했고 본인 스스로 “신인의 자세로 돌아가겠다”고 말할 만큼 투지가 강하다.
이대호는 박병호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타자다. 부드러운 스윙이 강점이며, 일본에서는 장타력에 더 공을 들였지만 국내에서는 매우 정확도가 높은 타자였다. 일본 프로야구 2012~2013시즌 연속 24홈런을 쳤고 올해는 31개를 넘겼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2010년 44개를 제외하면 한 번도 30홈런 이상이 없었다. 그만큼 일본에서 안정된 장타력을 선보였다.
이대호는 2015년 선수계약 총액 순위 메이저리그 4위를 기록 중인 슈퍼 에이전트 댄 로사노와 손잡고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서 검증된 타자인 만큼 관심을 가질 구단이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단 30대 중반 나이에 빅리그에 데뷔하는 것이라 미국 구단들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첫해 제시하는 계약 조건은 기대보다 낮을 수 있다.
이대호와 박병호 모두 메이저리그에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과정이므로 초대형 계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희섭은 2000년대 초반 시카고 컵스 유망주 1위였고 마이너리그 전체가 주목하는 미래의 슈퍼스타 후보였지만 수비 도중 동료 선수와 충돌해 뇌진탕 부상을 당한 뒤 큰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 구단이었다면 오랜 시간 기다리며 공을 더 들였겠지만 유망주가 즐비한 메이저리그는 그를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했다. 그만큼 빨리 실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언제든 외면받을 수 있다. 이대호, 박병호는 유격수와 3루수가 모두 가능한 강정호가 아닌 데다, 타격이 폭발하지 않는 1루수를 오래 기다려줄 수 있는 팀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