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후 오랫동안 ‘엑소시스트’류의 오컬트영화는, 미안하지만 한국에서는 절대 안 되는 장르라고 여겼다. 애초부터 사고 기반, 즉 에피스테메(episteme)가 좀 다르다고 봤다. 한국적 언어로 풀어보자면 장엄구마예식보다 굿이라는 단어가 훨씬 즉물적으로 이해된다. 샤머니즘과 오컬트가 같은 밥, 같은 나물의 장르로 여겨진다. 이를 구별해줄 만한 걸출한 작품도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로 인해 나는 이 선입견을 버리게 됐다. 한국에서도 오컬트가 가능한 것이다.
오컬트는 말하자면 분위기다. 오컬트의 공포는 살인범이 질주하는 스릴러물처럼 현실감 있는 공포가 아니다.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고 절대 용서도 해주지 않는 검은자위의 귀신이 주는 공포와도 다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평범한 일상 속 어딘가에 목숨 건 사투를 벌이는 누군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이 악마는 모습을 숨긴 채 우리 욕망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 이는 말로 설득할 문제가 아니라 분위기로 압도할 문제다. 장재현 감독은 이 압도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영화는 영신(박소담 분)이라는 평범한 소녀가 뺑소니사고를 당하면서 시작된다. 평소 김 신부(김윤석 분)를 따르던 소녀에게서 이상한 증세가 발견된다. 영화는 이 발견부터 구마의식에 이르기까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징조와 증세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기존 오컬트영화와 다르게 이 작품이 주목하는 건 한국에 거의 없는 두 사람의 구마사제를 구하는 과정이다.

‘검은 사제들’의 감정선이나 흐름은 대중영화 속 뻔한 호흡과 다르다. 관객들은 간혹 들숨을 쉬려다 날숨을 쉬어 물을 들이마시게 되는 곤혹감을 맛본다. 그러나 마신 숨이 ‘싸할’ 뿐, 질식할 만큼 곤란한 건 아니다. 새로움, 말하자면 새로운 자극을 전달하는 것이다.
영화의 화룡점정이 되는 박소담, 아름다운 풍경 그 자체인 강동원, 그리고 세상의 어둠 한가운데 서서 선과 악 어느 쪽인지 구분조차 하기 힘든 김윤석은 각기 다른 어둠으로 서로에게 빛을 던져준다. 오랜만에 즐기는 장르물다운 장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