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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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 정도에 따라 시간과 방법 달라

디캔팅에 관한 오해와 진실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5-11-02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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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성 정도에 따라 시간과 방법 달라

    다양한 모양의 디캔터. 오래된 와인의 침전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공기 접촉이 적은 좁고 긴 디캔터를, 브리딩을 위해서는 공기 접촉이 많은 넓은 디캔터를 쓰는 것이 좋다.

    만화 ‘신의 물방울’에는 천재 소믈리에가 와인병을 높이 치켜들고 와인을 실처럼 가늘고 길게 디캔터(decanter)에 붓는 대목이 나온다. 그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는지 디캔팅(decanting)이 와인을 맛있게 즐기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불필요한 디캔팅은 와인 맛을 망칠 수도 있으므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디캔팅을 하는 목적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오래된 와인 안에 생긴 침전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레드 와인 안에는 색소와 타닌이 고운 입자 상태로 고루 퍼져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입자들이 조금씩 뭉치는데, 더는 와인 안에 녹아 있을 수 없을 만큼 커지면 찌꺼기가 돼 병 안에 쌓이게 된다. 침전물이 몸에 나쁜 것은 아니지만, 미관상 좋지 않고 입안에 들어가면 거칠고 쓴맛을 내기 때문에 걸러내고 마시는 게 좋다.

    침전물을 제거하는 디캔팅을 할 때는 먼저 마시기 하루 전부터 와인병을 세워둬 찌꺼기가 와인병 바닥에 모이도록 한다. 와인을 열 때는 병 바닥의 찌꺼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찌꺼기가 없는 윗부분만 천천히 디캔터에 붓는다. 이때 작은 손전등이나 촛불을 병목 부분에 비추면 찌꺼기가 병목으로 다가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어 와인을 어디까지 따라내야 하는지 판단하기에 편하다.

    디캔팅을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와인의 맛과 향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생산된 지 얼마 안 된 어린 와인은 타닌이 강해 떫은맛이 나거나 가지고 있는 향을 다 발산하지 못한다. 마치 단단하게 뭉쳐 있는 꽃봉오리 같다. 이런 와인을 디캔팅하면 와인이 공기에 노출되면서 빨리 피어난다. 이 과정을 브리딩(breathing)이라 하는데, 와인이 숨을 쉬도록 만든다는 뜻이다.

    숙성 정도에 따라 시간과 방법 달라

    만화 ‘신의 물방울’ 1권에서 주인공 칸자키 시즈쿠가 명주실을 뽑는 듯한 환상의 디캔팅 실력을 과시하는 모습.

    와인을 브리딩할 때 공기와 최대한 접촉게 하고자 ‘신의 물방울’에 나온 것처럼 굳이 와인병을 높이 치켜들고 와인을 가늘게 디캔터에 부으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와인이 디캔터의 안쪽 벽면을 따라 천천히 들어갈 수 있도록 따른 뒤 디캔터를 들고 살살 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와인을 마시기 한두 시간 전 디캔팅을 해두면 공기와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져 더욱 풍부한 향을 즐길 수도 있다.



    와인 맛이 절정에 이르는 데 필요한 병 숙성 기간은 와인마다 다르다. 대체로 값이 싸거나 타닌이 적은 와인일수록 빨리 숙성되고, 비싸거나 타닌이 많은 와인일수록 오랜 숙성 기간을 필요로 한다. 같은 와인도 보관 상태에 따라 숙성 정도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무조건 디캔팅하기보다 와인을 열고 조금 맛을 본 다음 디캔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충분히 숙성된 와인을 디캔팅하면 오히려 와인이 빨리 시들어버리기 때문이다.

    활짝 핀 꽃도 예쁘지만 꽃은 피어나는 매 순간마다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와인도 피어나는 단계마다 맛과 향이 다르므로 디캔팅을 하지 않고 조금씩 잔에 따라 충분히 잔을 돌려가며 음미한다면 와인을 마시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오늘 다 피어나지 않았다면 남은 와인을 코르크 마개로 막아두고 다음 날 또 마셔보는 것도 좋다. 어떤 와인은 최고의 맛을 보여줄 때까지 며칠이 걸리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인을 마실 때면 왠지 아주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수줍은 애인을 만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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