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과 심리학이 알려주는 시간 컨트롤. 장 폴 조그비 지음/ 원광우 옮김/ 처음북스/ 320쪽/ 1만6000원
재미없는 시간은 천천히 가고, 재미있는 시간은 빨리 흐른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뒤 다시 회식자리나 친구 모임을 떠올려보자. 회식자리는 뭘 했는지 모르게 금방 시간이 간 것 같고, 친구 모임은 풍성한 화제가 기억나면서 긴 시간을 함께했다고 느껴진다. 즉 그 시간에 얼마나 많은 기억을 수집했느냐에 따라 시간의 길고 짧음이 달라지는 것이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경험으로 채워진 시간은 지나는 순간에는 짧게 느껴지지만 되돌아보면 길다. 반면 별 경험 없이 텅 빈 시간은 당시에는 길어도 돌아보면 짧다.
6월 18일 열린 러시아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F조 첫 경기에서 한국이 스웨덴에게 1-0으로 앞선 채 추가 시간이 5분 남았다고 해보자. 한국 국민은 시간이 너무 안 간다고 느낄 테고, 스웨덴 국민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여길 것이다. 이처럼 기분 좋은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 가고, 기분 나쁜 사건이 예상되는 두려움은 시간을 빨리 가게 만든다. 더 나아가 미래를 긍정적으로 볼 때는 시간이 천천히 가고, 부정적으로 볼 때는 빠르게 간다.
이 같은 ‘심리적 시간의 왜곡’은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느냐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여기는 것도 이러한 심리적 시간의 왜곡과 관련 깊다. 나이가 들면 내부 생체 시간이 천천히 간다는 것이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실제로 1시간이 걸린 일을 50분 정도 걸렸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즉 24시간이 20시간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신체적 변화는 일각에 불과하다. 성인은 반복되고 단조로운 일상에 빠져 재미있고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해 뇌에 저장된 기억이 적다. 새로운 것을 늘 받아들여 풍부한 기억으로 가득 찬 어린 시절에 비해 시간이 짧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역시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결론은 간단하다. 시간을 늦추려면 무슨 일을 하든 바로 이 순간에 전력으로 집중해 풍성한 기억이 남게 하면 된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미래의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하는 것은 과거 상세하고 즐거운 경험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생을 얼마나 길게 느끼는지는 즐거운 기억을 수집하는 능력에 달렸다.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일과 열정을 느끼는 일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려라.
손진호 지음/ 진선BOOKS/ 320쪽/ 1만2000원
‘갈매기살’은 돼지고기 중 어디 부위일까. ‘바람’은 피우는 것일까, 피는 것일까. ‘괴발개발’의 잘못된 표현인 ‘개발새발’은 정말 표준어가 아닐까. 왜 ‘젠장’은 안 되고, ‘빌어먹을’은 국어사전에 올라 있을까. 우리말에 대한 궁금증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30여 년 동안 ‘동아일보’ 어문기자로 일한 저자는 표준어는 아니지만 언중이 즐겨 쓰는 입말은 물론, 말맛이 좋아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각 지역 방언, 재미있는 신조어와 줄임말 등을 알기 쉽게 풀이해놓았다. 사투리로 묶여 있거나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했어도 감칠맛 나고 삶의 향기가 배어 있는 낱말들, 표준어 둥지 밖을 서성이다 사라지는 낱말들을 알리려 애쓴다. ‘짬뽕’을 ‘초마면’이라 불러야 하는 현실을 ‘웃기는 짬뽕’이라고 결론짓는 저자의 유쾌함에 웃음이 난다.
임동주 지음/ 마야/ 384쪽/ 1만8000원
수의학 박사이자 동물 사료 관련 기업 최고경영자(CEO), ‘우리나라 삼국지’ 등 다수의 인문학 책을 쓴 저자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동물과 인간, 수의학을 함께 다뤘다. 인류는 농업혁명 못지않게 큰 영향을 미친 가축혁명을 통해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개는 사냥에 도움을 줬고 소는 농업생산력을 키웠다. 말은 전쟁의 판도를 바꿨고 비둘기는 커뮤니케이션의 지평을 넓혔다. 이들 동물은 지금도 육류 소비를 위해 도축되고, 의약실험을 위해 희생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수의학은 인류 문명에 결정적 기여를 한 대목이 적잖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 및 역사를 알고 싶다면 읽어볼 만하다.
로버트 모스 지음/ 박성기 옮김/ 금토/ 1권 427쪽, 2권 411쪽/ 각 권 1만2000원
‘철의 장막에서 국민 구해낸 젊은 장군의 숨 가쁜 반란’이란 부제처럼 냉전시대 공포정치가 횡행하던 소련에서 군 참모총장 보좌관인 프레오브라젠스키 준장이 동지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당과 KGB를 무너뜨린 뒤 조국을 국민의 품에 돌려준다는 소설이다. 책이 발간된 1985년은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엄혹한 통치가 끝나고 안드로포프, 체르넨코가 연이어 서기장을 맡았다 모두 1년여 만에 급사하는 바람에 소련이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흥미진진한 구성과 영웅 같은 주인공의 활약에 책장이 빨리 넘어간다.
최성환 지음/ 앤길/ 294쪽/ 1만6000원
4차 산업혁명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과 기계가 인간이 할 일을 대신한다. 즉 인간의 노동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잉여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는 잉여인간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다. 이들 힘없는 다수는 힘 있는 소수가 만들어낸 사이버 공간에서 살아가며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날이 온다는 것. 즉 새로운 노예의 탄생이다. 노예제의 역사에서 시작해 사람이 빠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암울한 전망까지 종횡무진 다루는 독특한 책이다.
오상진 지음/ 달/ 304쪽/ 1만5300원
‘1년 차 새내기 남편 오상진의 일기’라는 부제가 이 책을 설명해준다. 지난해 4월 말 후배인 김소영 아나운서와 결혼한 오상진 아나운서가 결혼 1년 동안의 기록을 담았다. 여기에는 두 사람이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일상이 잔잔하게 담겨 있다. 극명하게 다른 양가의 분위기에 서로 적응하려는 노력, 각자 바쁜 일, 집에서 나누는 소소한 대화, 결혼 전 몰랐다 함께 살면서 빚게 되는 갈등 등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의 책에 있는 문구를 마지막에 넣었다. “즐겁게 살지 않는 건 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