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아담과 이브’(1530년 경). 선악과를 사과로 형상화 했다.
여러 사과가 그 후보에 오르지만 첫 번째를 장식하는 사과는 똑같다. 히브리 성경(구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브의 사과’다. 창조주가 먹지 말라 금했건만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하와)가 먹고 이어 아담에게도 권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됐다는 그 금단의 과일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순간 갑자기 창조주가 나타나 사과가 목에 걸리는 바람에 생겼다고 해 남성의 울대뼈를 ‘아담의 사과(Adam’s apple)’라 부르는 전통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지만 성경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사과는 등장하지 않는다. 선악과라는 표현도 없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라고만 등장한다. 구약성경의 주무대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선 가장 흔한 과일인 무화과를 선악과로 받아들였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천지창조’에서도 선악과가 열리는 나무는 무화과나무다.
그런데 왜 선악과가 사과로 고착된 걸까. 히브리 성경은 그리스어 번역을 거쳐 5세기 초 히에로니무스(영어명 제롬)의 주도 아래 라틴어 번역이 집대성됐다. 로마가톨릭에서 정경(正經)으로 삼았던 불가타성경이다. 불가타성경에서 문제의 나무는 ‘리늄 시엔티에 보니 에 말리(lignum scientiae boni et mali)’로 번역됐다. 히브리어와 마찬가지로 선과 악을 구별하는 지혜의 나무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 나무의 열매를 뜻하는 단어에 있었다. 히브리 성경에선 모든 종류의 열매와 그 즙까지 의미하는 페리(peri)라는 단어를 썼다. 사과를 비롯해 무화과, 석류, 포도, 쌀, 밀 등 모든 열매를 포괄하는 단어다. 히에로니무스는 이를 라틴어 말룸(ma–lum)으로 번역했다. 이 단어는 사과라는 뜻과 함께 배나 복숭아처럼 실한 과육 속에 씨를 품은 과일을 통칭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라틴어에서 이 단어의 장모음 a를 단모음으로 발음하는 malum은 ‘악(惡)’을 의미한다. 그 형용사형인 malus는 나쁘다는 뜻이고 a를 장모음으로 발음하는 ma–lus는 사과나무다.
결론적으로 ‘악’이란 단어와 ‘사과(나무)’라는 단어의 표기 및 발음이 유사한 것에서 영감을 얻어 일종의 ‘펀’(pun·다의어와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을 구사한 것이다. 이런 말장난이 인류 원죄를 강조하는 중세 기독교시대를 거치면서 ‘악한 과일=사과’라는 의미로 고착됐을 개연성이 크다.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 나무에 열린 열매를 먹은 사건이야말로 인류 원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존 밀턴이 1667년 간행한 ‘실낙원(Lost Paradise)’에서 문제의 과일을 2번이나 사과(apple)로 명명한 점도 ‘선악과=사과’ 확산에 기여했다.
기독교 전파 과정의 산물이란 해석도 있다. 사과는 북유럽신화와 켈트신화에서 신들에게 영원한 청춘을 안겨주는 열매로 신성시됐다. 이런 이교도적 신앙을 약화하고자 일부러 사과를 금단의 열매로 격하했다는 것이다. 이유가 뭐가 됐든 선악과는 인류 역사를 바꾼 사과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