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멜초(Don Melchor)는 칠레 프리미엄 와인의 원조다. 1987년 첫 돈 멜초의 출시는 칠레에서도 명품 와인이 나온다는 것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돈 멜초 이후 칠레에서는 알마비바(Almaviva), 세냐(Sen˜a) 등 ‘아이콘’ 와인이 줄이어 등장했다. 올해로 출시 30주년을 맞은 돈 멜초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돈 멜초는 콘차 이 토로(Concha y Toro)를 대표하는 와인이다. 콘차 이 토로는 1883년 멜초 콘차 이 토로가 설립했다. 콘차 이 토로는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서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 묘목을 들여와 안데스 산맥 기슭의 푸엔테 알토(Puente Alto) 지역에 심었다.
푸엔테 알토는 해발 650m에 이르는 고지대다. 햇살은 강렬하지만 안데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가 더위를 식혀주기 때문에 포도가 천천히 익고 열매 안에 맛과 향이 응축된다. 19세기 후반 푸엔테 알토의 우수성을 알아본 콘차 이 토로는 아마도 테루아르(terroir · 포도 재배 환경)에 대한 안목이 뛰어났던 것 같다.
와이너리 설립 후 101년이 지난 1984년 콘차 이 토로 와이너리는 스스로 명품 와인을 생산할 실력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현대 양조학의 아버지 에밀 페이노에게 자문을 구했다. 푸엔테 알토의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맛본 페이노는 “엄청난 잠재력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이런 품질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극찬했다.
이에 자신을 얻은 콘차 이 토로는 1987년 설립자 이름을 딴 야심작 돈 멜초를 내놓았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보디감과 경쾌한 산도를 바탕으로 농익은 과일향, 허브, 향신료 등의 조화가 프랑스나 미국의 세계적인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에 전혀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 멜초의 주재료는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그런데 돈 멜초를 만드는 카베르네 소비뇽 맛은 일률적이지 않다. 콘차 이 토로는 128만㎡ 밭을 돌 크기, 진흙과 모래 비율 등에 따라 140개 구획으로 나눠 관리한다. 토질이 다르면 같은 품종이라도 맛이 조금씩 다르다. 포도 재배뿐 아니라 와인 양조 시에도 구획의 특성을 고려해 발효, 숙성시킨다. 따라서 돈 멜초 한 병에는 140가지의 맛과 향이 섞여 있는 셈이다.
최근 방한한 돈 멜초 와인메이커 엔리케 티라도는 돈 멜초의 목표를 “토양, 기후, 사람 등 그 기원을 최대한 담은 와인”이라고 표현했다. 지난해 한국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인 양윤주 씨도 돈 멜초를 “가장 칠레다운 와인”이라고 평가했다.
부담 없이 마실 와인을 찾을 때 우리는 칠레산을 선택한다. 셀러에 보관하며 오래 숙성시킬 와인을 고를 때는 눈길이 자연스레 프랑스나 이탈리아산으로 향한다. 필자가 맛본 돈 멜초 1988년산과 1990년산의 품질은 놀라웠다.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지만 응축된 과일향, 힘 있는 질감, 우아함, 세련미 등을 생생하게 내뿜고 있었다. 세계 시장이 칠레 와인의 성과를 인정하듯, 우리도 칠레 와인에 대한 시야를 넓힐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