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가 노무현 정부를 계승했음은 인적 구성이나 내거는 가치들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헌정사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김영삼 정부 이후 민주정부를 표방한 정부에서는 하나같이 ‘사법개혁’을 국정 우선과제로 추진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노무현 정부는 가히 사법개혁에 명운을 걸다시피 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정권이 갓 출범한 2003년 3월 9일 돌연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함께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를 가졌고, 이는 TV로 생중계됐다. 노 대통령은 참석한 검사들과 각을 세우며 기성 사법질서에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이것은 바로 그가 열정을 쏟아 추진하려 한 거대한 사법개혁의 신호탄이었다.
7월 27일 단행된 현 정부의 첫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서 검사장 승진을 하지 못한 몇몇 인사가 ‘전국 검사들과 대화’에 참석한 검사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당시 대화에서 노 대통령이 취임 전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장에게 청탁전화를 걸었다고 하면서 “왜 전화를 거셨느냐”고 힐난하는 질문을 던졌다.
노 대통령은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라는 유명한 멘트를 날리며 좌중을 얼어붙게 했다.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현 정부 역시 사법개혁을 국정 우선과제로 내걸었다. 정부 임기 내내 노무현 정부에 못잖은 열의로 사법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예측된다.
노무현 정부의 사법개혁은 국가적 자원을 동원하며 진행됐고, 성과도 적잖았다. 로스쿨 제도, 국민참여재판, 민주사회에 어울리는 형사소송절차 정비 등이 이때 이뤄진 것들이다. 다만 노무현 정부의 사법개혁 작업을 짚어보면 한 가지 부족했던 점이 있다. 이는 현 정부의 사법개혁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돼 충실한 성과를 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사법개혁은 무엇 때문에 하는가. 국민에게 물어보면 누구나 수사 또는 재판 과정에서 억울함을 겪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사법개혁의 가장 큰 목적이자 중요한 가치라고 답할 것이다. 지금 한국 땅에 사는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사법피해자’로 칭하며, 잘못된 재판이나 검찰 처분을 받아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사람들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우리 사법제도의 맹점을 드러내고 이를 고치는 것은 사법개혁을 위한 아주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 사법개혁을 추진한 주체였던 사법개혁위원회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수많은 공청회, 연구회, 토론회 등에서는 사법피해자들에게 단 한 번도 발언 기회를 주지 않았고, 많은 연구용역에도 그에 관한 내용이 단 한 개도 없었다.
게다가 사법개혁위원회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심의한 안건은 대부분 법원 또는 검찰이 올린 초안을 토대로 진행된 것들이다. 결국 진정한 국민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막은 진공 상태에서 이뤄진 톱다운(top-down) 식의 사법개혁이었다.
촛불혁명의 결과로 수립된 현 정부의 사법개혁은 아무쪼록 국민의 뜻을 받들고 따르는 것이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