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65

2022.11.18

그럼에도 ‘Life Goes On’ [SynchroniCITY]

음악이 주는 위로의 힘을 믿어요

  • 안현모 동시통역사·김영대 음악평론가

    입력2022-11-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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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겨운 시기일수록 위로가 되는 것이 음악이다. [GettyImages]

    힘겨운 시기일수록 위로가 되는 것이 음악이다. [GettyImages]

    영대 벌써 일요일이네요. 주말에 라디오를 진행하니까 요일 감각이 없어졌어요.

    현모 네, 한 주가 지났어요. 애도의 한 주.

    영대 저도요. 그런데 강연 섭외가 들어와서 좀 바빴어요. 원래는 전쟁이나 제국 역사 같은 굵직한 내용을 다루는 프로그램인데, 음악 역사를 다루고 싶다고 요청이 왔더라고요.

    현모 잘됐네요.



    영대 그 시대 음악을 통해 사회 변천사를 알 수도 있어요. 어느 시기나 음악은 존재해왔는데, 우리는 늘 음악을 다른 지식에 비해 나중에 엑스트라로 다루잖아요.

    현모 저도 이번에 좀 느꼈어요. 국가적 재난이 터지고 위기가 닥치니까 음악이나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드러나더라고요. 예정됐던 공연이 전부 취소됐거든요.

    영대 회사에 손해가 크겠어요.

    현모 절대 손해를 논하고 싶진 않아요. 이 시기에 손해를 보지 않는 사람은 없고, 무엇보다 생명보다 큰 손해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11월 말 영국에서 열릴 계획이던 K팝 축제마저 갑자기 취소되는 걸 보니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 무기한 연기한다고 통보가 왔더라고요.

    영대 해외인데도요? 납득이 되진 않네요. 그것만 바라보고 기다린 팬들도 있을 텐데.

    현모 가뜩이나 외환보유고도 몇 달째 바닥나는 와중에 중요한 외화벌이 기회였는데 말이에요.

    영대 출연할 아티스트가 한두 팀이 아닐 텐데,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처럼 사고가 일어난 주말에 개최될 예정이던 행사가 취소되는 건 그렇다 쳐도, 한 달 뒤 행사까지 어그러져야 하는 상황이면 연말까지 분위기가 너무 우울할 거 같아요.

    현모 힘겨운 시기일수록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 바로 음악인데 말이죠. 음악의 진정한 가치와 치유력을 사회가 모르는 거 같아요. 음악이 누군가에겐 유일한 위로이자 의지처일 수도 있는데요. 그저 유흥이나 오락으로 바라보는 거죠. 대중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사회의 문화적 환경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의사 결정권자들이요.

    영대 공감해요. 먹고사는 것과 직결되지 않는 쓸데없는 것, 사치, 노는 걸로 치부하는 거죠. 문화강국을 자처하면서 어찌….

    현모 물건을 만들어내는 공장은 계속 돌아가야 하지만, 음악이나 문화의 생산과 향유는 멈춰야 한다는 논리인 거잖아요. ‘K-콘텐츠의 세계적인 인기’가 어쩌고 하더니만, 정작 국민이 그걸 필요로 할 때는 없어도 되는 것처럼 취급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영대 외국은 장례식장에서도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노래를 틀어놓거나 부르면서 고인을 추모하기도 해요. 폭탄 테러 같은 비극적인 사건 후에도 가수들이 공연하면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 지도자들은 음악의 역할을 그저 경제적 가치로만 계산하고 이해하고 있는 거죠. 방탄소년단이 창출한 경제적 효과가 얼마다 이런 식으로요.

    현모 그러니 민간에서 주최하는 행사라도 그들이 주도하고 조성해놓은 사회 분위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누군가가 시그널을 줄 때까지 숨죽여야 하는 상황이에요. 전체주의랑 다를 게 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죠.

    영대 코로나19 사태 때는 공중보건이 걸린 문제니 어쩔 수 없이 집합을 금지했다 쳐도, 사람의 감정이나 정서마저 통제하려는 것은 이해가 안 돼요. 애초에 애도 기간을 날짜로 정해놓은 것부터가 웃기지 않나요. 사람마다 애도 시기나 방식이 다 다르고, 그 기한이 끝난다고 애도를 멈추는 것도 아니잖아요.

    현모 더군다나 이태원 참사로 슬픔과 트라우마에 빠진 대상은 주로 젊은 층이에요.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건강한 회복을 도우려면 그들이 그나마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막아선 안 되죠. 그런 의미에서 가수 장재인 씨가 ‘공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다’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글이 충분히 공감되더라고요.

    영대 그래서 저는 오늘 라디오 진행하면서 일부러 어두운 곡 말고 밝고 희망적인 곡들로 선곡했어요. 그 대신 설명을 드렸죠. 모두 일주일 동안 여러모로 고생했을 텐데, 이 시간만큼은 여러분이 기운 내고 힘낼 수 있는 곡들을 선사하고 싶다고.

    현모 잘 하셨어요.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는 평소와 다름없는 주말을 시작하려는 분들이잖아요. 일요일이지만 일하러 가는 출근길일 수도 있고, 가족과 함께 등산 가는 길일 수도 있고요. 이들의 삶마저 무너지지 않고 계속될 수 있도록 최대한 에너지를 드리는 게 DJ로서 영대 님의 역할인 거죠.

    영대 진짜로 놀랍게도, 청취자의 문자메시지와 사연이 전부 그랬어요! “나들이 가는 길인데 경쾌한 노래 틀어줘서 힘이 솟는다” “한 주의 피로가 씻겨 내려가고 힐링된다”, 이런 피드백을 보내주더라고요.

    현모 저는 얼마 전 가까운 지인이 교통사고로 건강하던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서 너무나 슬픈 장례식장에 다녀오기도 했고, 2년 전 세상을 떠난 친구의 기일도 있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친한 친구의 생일도 있었고요. 이 모든 극과 극의 일들을 겪으면서 분명하게 느끼는 건, 매순간 생과 사가 교차한다는 사실이에요. 이 땅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목숨을 잃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해야 해요. 지금 이 순간 삶이 허락됐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거 같아요. 다시는 이태원 참사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을 찾아 개선하는 것과 더불어서요.

    영대 맞아요. 이번 참사로 한날 한곳에서 수많은 젊은 청년이 동시에 생을 마감했기에 충격과 슬픔이 오래 가지만, 이럴수록 산 자가 죽은 자의 몫까지 아깝지 않게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모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우린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방탄소년단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잖아요. ‘Life Goes On’.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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