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0

2015.01.05

특별사면 안 되고 가석방은 된다?

정부가 바람 잡고 여당은 맞장구…대기업 총수들 남몰래 미소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5-01-05 09: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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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사면 안 되고 가석방은 된다?

    2014년 1월 28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의 첫 특별사면을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던 2013년 1월 31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설 특별사면(특사)을 전격 단행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특사 대상에 측근을 다수 포함시켰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그들. 당연히 임기 말 보은 특사 논란이 일었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잘못된 관행을 확실하게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 권한을 남용하고 국민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박 당선인의 비판을 무마하려는 의도였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특사 대상에 박 대통령의 측근인 서청원 의원을 슬쩍 포함시켰다. 만약 그때 이 대통령이 특사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아직까지 복권이 이뤄지지 않았을 테고 정치 활동 재개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황교안 끌고 최경환 밀고

    박근혜 대통령이 첫 특사를 단행한 것은 이 전 대통령의 보은 특사가 이뤄지고 1년이 지난 2014년 1월 29일 설 때였다. ‘나는 이명박과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는 특사였다. 경제 살리기와 민생 안정을 명분으로 한 생계형 사범을 위주로 특사를 단행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15년 설에도 박 대통령은 특사를 단행할까. 분위기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2014년 9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먼저 애드벌룬을 띄웠다. ‘경제 살리기에 공헌해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다면 기업인에게 가석방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사전 공감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곧바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화답했다. 최 부총리도 경제 살리기를 이유로 들었다. 기업인이라고 지나치게 엄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것은 경제 살리기의 관점에서 도움이 안 된다는 논리였다.

    특별사면 안 되고 가석방은 된다?

    2014년 4월 24일 항소심 첫 공판에 출두한 이재현 CJ그룹 회장.

    그런데 분위기는 자못 험악하게 돌아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황교안 장관과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고, 경제개혁연대는 박 대통령에게 기업인 사면 불가 방침을 분명히 천명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던 기업인 가석방 카드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였다. 2014년 12월 18일 일반인도 일정 형기가 지나면 가석방 등을 검토하는 것이 관행인데 기업인이라고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기업인 역차별론을 꺼내들었다. 9월 기업인 가석방 논란이 일었을 때 일부 언론이 집중적으로 제기했던 논리다.

    이번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적극 거들고 나섰다. “사면이든 가석방이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청와대에 직접 건의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까지 피력했다. 특사 효과를 이미 톡톡히 누린 서청원 최고위원 역시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기업인 가석방 외에도 생계형 민생사범을 비롯한 모범적인 수형자도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민 대통합 차원에서 사면을 건의해야 한다”고 더 강하게 치고 나왔다.

    차기 대권주자들의 속내

    특별사면 안 되고 가석방은 된다?

    2013년 1월 31일 구속 직전의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 정도면 다된 밥이나 다름없었다. 새누리당이 건의하고 박 대통령이 못 이기는 척 받기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으로 이른바 ‘갑질’ 논란이 불거져 대기업 오너와 그 후계자들에 대한 국민 시선이 곱지 않다. 더욱이 CJ그룹이 비선(秘線) 실세를 대상으로 이재현 회장 구명 로비를 벌였다는 설까지 불거진 상황. 결국 정치적 부담이 큰 특사보다 가석방에 무게를 둔 분위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교안 장관이 ‘가석방’을 강조하는데 눈치 없는 새누리당 지도부는 자꾸 ‘특사’를 풀무질 중이다. 교통정리가 필요했다고 판단한 대통령비서실이 결국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사면에 대해 들은 바 없다. 경제인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 고유의 권한이다.’

    정부 여당 핵심 인물들은 왜 이렇게 기업인 가석방에 목을 매는 걸까. 정부 여당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기업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까닭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최 부총리와 김무성 대표는 모두 유력 차기 대권주자. 포스트 박근혜 체제하에서 보수 세력의 지지를 놓고 경쟁 중이다. 보수 세력 안에서도 이들이 확보해야 할 지지 기반의 핵심은 역시 대기업이다. 이들의 지원과 후원을 끌어모을 수 있어야 당내 경선에서 유리할 뿐 아니라 본선 승리 가능성도 높아진다. 친기업 정책에 두 사람이 경쟁적으로 앞장서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대한민국 제1기업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원포인트 특사를 단행하기까지 했다. 대기업 총수들은 이런 ‘아름다운’ 관행이 계속 이어지길 원할 것이다. 당장 총수가 감옥에 있는 그룹에게 이보다 더 시급한 현안은 없다. 당연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총수 구명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그룹 내부의 인적 자원도 동원하지만 그룹 외부의 인적 자원도 활용한다. 이미 그룹 내부 인력으로 고용한 관피아(관료+마피아)와 정피아(정치+마피아)에 더해 그룹 외부 법무법인들이 고용한 관피아, 정피아도 무수하다. 이들이 공식 라인은 물론 비선 라인을 넘나들면서 구명 로비를 벌이고 있는 것.

    이들의 촉수는 당연히 정관계 실세에 집중된다. 더욱이 그 실세들이 대권 욕망을 불태우고 있다면 오히려 이런 로비를 반길 수 있다. 손바닥이 딱 마주치기 때문이다. 기업인 가석방이라는 한정판 특선요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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