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6

2013.12.09

멋진 인생? 바로 지금이잖아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3-12-09 12: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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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인생? 바로 지금이잖아
    시간여행을 꿈꿔본 적 있는지. 타임머신 탑승 티켓이 손에 들어온다면 과거로 가고 싶은지, 미래로 가고 싶은지.

    영어로 ‘타임 슬립(time slip)’ 혹은 ‘타임 트래블(time travel)’이라고 하는 ‘시간여행’은 할리우드에서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인기 소재다. 수많은 영화의 성패를 가른 것 중 하나는 시간여행의 제한 조건을 어떻게 설정하고 설계하느냐는 것. 영화의 재미와 개연성, 설득력이 여기에 달렸다. 11월 28일 개봉한 한국 영화 ‘열한시’는 시간여행을 연구하는 한 기업 연구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이 영화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말을 빌려 미래로만 갈 수 있다고 전제한다. ‘열한시’와 한 주 차로 개봉하는 영국 영화 ‘어바웃 타임’은 과거로만 시간여행이 가능한 상황을 다룬다.

    연애에는 젬병인 청년 팀(돔널 글리슨 분)은 21세가 되던 날 아버지(빌 나이 분)로부터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 남자들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 듣는다. 언제 어디서든 정신을 집중하면 원하는 과거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히틀러를 죽이거나 트로이전쟁 시대로 가서 여신 헬레네와 연애하는 따위의 일은 불가능하다. 돌아갈 수 있는 과거는 오로지 자신의 인생 중 어느 한 순간일 뿐이며, 기억할 수 있는 시공간만 선택 가능하다는 것이 아버지가 일러준 시간여행 법칙이다.

    변호사로 새 출발하려고 부모 집을 떠나 런던으로 간 팀은 사랑스러운 여인 메리(레이철 매커덤스 분)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여자 앞에만 서면 숙맥이 되는 팀. 그에게 연애의 ‘비기’는 바로 시간여행이다. 말도, 키스도, 구애도 처음은 연습, 두 번째는 실전이다. 말 한마디 던지면 얼굴색이 변하는 상대. ‘아차’ 싶으면 ‘리와인드’다. 몇 분 전으로 돌아가 한결 여유 있게 근사한 ‘작업 멘트’를 들려준다. 과거로의 이동이 자유자재인 팀에게 인생은 제대로 될 때까지 몇 번이고 촬영하는 영화 같다.

    팀은 인생을 ‘리와인드’할 수 있는 능력 덕에 결혼에 골인하고 자식을 낳으며 행복을 만끽하지만 여동생의 불행, 아버지의 죽음과 맞닥뜨리며 자신의 시간여행에서 돌이킬 수 없는 또 한 가지 비밀을 알게 된다. 영화는 이를 통해 인생에서 되돌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바꿔야 하는 것과 그래선 안 되는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팀은 굳이 되돌아가 바꿀 필요가 없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찾는다.



    ‘어바웃 타임’은 예쁜 여자친구를 얻고 싶었던 한 숙맥 청년의 연애담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가슴 뭉클한 가족드라마를 거쳐, 세상과 인생에 대한 책임을 깨달아가는 남자의 성장담으로 끝을 맺는다. 크리스마스영화의 대명사 ‘러브 액츄얼리’를 연출한 리처드 커티스 감독과 영국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로 꼽히는 제작사 워킹타이틀의 이름이 신뢰를 주는 작품이다.

    ‘백 투 더 퓨처’에서 타임머신을 발명한 박사는 “미래는 백지야. 자네가 직접 만드는 것이라네, 멋진 인생을!”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영화에서 퇴장했다. 불행한 삶을 사는 중년 여성 주인공이 모든 인생을 결정해버린 열아홉 살 ‘그 순간’으로 돌아가 겪는 일을 그린 프랑스 영화 ‘까밀 리와인드’에서 시계수리공은 이렇게 이른다.

    “자네에게 주고 싶은 게 있네.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정,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아는 현명함을 말일세.”

    그리고 영국 시인 T.S. 엘리엇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 ‘네 개의 사중주’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모든 것은 영원한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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