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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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줄이고 몸 낮춘 실무형 인수위

박근혜 당선인 국정철학 밑그림 그리기

  • 손영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3-01-11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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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줄이고 몸 낮춘 실무형 인수위

    1월 6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원들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현판식을 가졌다.

    “작지만 생산적인 인수위원회를 만들어달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월 6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전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인수위원들에게 당부한 첫 주문이다. 박 당선인은 인수위 기능이 새로운 정책 발굴이 아닌 만큼 대통령선거(대선) 공약을 구체화하면서 각 부처의 업무 인수에 집중해달라고 당부했다. 10년 만에 정권교체를 한 ‘이명박 인수위’가 점령군처럼 거칠게 정권 인수에 나서면서 물의를 빚었던 것을 반면교사 삼은 셈이다.

    # 실세 배제와 전문가 중심 인선

    박 당선인이 1월 4일 공개한 인수위 명단에는 언론 하마평에 오르지 않았던 생소한 인물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로 대학 교수가 유독 많았다. 김용준 인수위원장과 진영 부위원장,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과 윤창중 대변인을 제외한 각 분과위 소속 인수위원 22명 가운데 교수가 16명(교수 출신 의원 3명 포함)이나 됐다. 5년 전 이명박 인수위 때 교수 출신이 8명에 그친 것과 비교해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정부 부처에서 파견 나오는 공무원 역시 각 부처에서 실질적으로 업무를 주도하는 국장급으로 구성했다. 박 당선인이 역점을 두겠다고 강조한 대선 공약과 직접 연관된 부서에서 전문성 있는 공무원을 대거 발탁해 인수위원을 보좌하도록 했다. 실무 중심의 인수위를 강조한 박 당선인의 의지를 반영한 조치다.



    그 대신 최경환 의원, 권영세 전 의원 등 소위 실세라 부르는 정치인은 이번 인선에 포함되지 않았다. 숨은 실세로 불리는 최외출 전 기획조정특보와 대선 공약의 밑그림을 그린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도 빠졌다. 인수위 9개 분과 간사 가운데 현역의원은 류성걸(경제1분과), 이현재(경제2분과) 의원 2명뿐이다. 이들은 정통 관료 출신 초선의원으로 정무형 정치인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현역의원이 7개 분과 가운데 5개 분과 간사를 맡았던 이명박 인수위와는 다른 대목이다. 당시 실세 의원들이 인수위에 합류하면서 특정 인사 몇 명에게 힘이 과도하게 쏠렸고, 그 과정에서 일부 인사들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인수위는 말 그대로 정권 인수를 위한 실무적 구실에 국한될 것”이라며 “철저히 전문가 중심의 실무형 인사로 인수위를 꾸린 점이 5년 전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 철통 보안

    “죄송합니다. 말씀드릴 게 없네요.”

    인수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은 출근길, 점심시간 때마다 취재진과 인수위원 간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다. 인수위원이 드나들 때 취재진이 에워싸며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지만 인수위원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기 일쑤다. 박 당선인이 인수위의 업무 보안을 강조하고,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언론과 개별 접촉에 응하지 말 것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인수위와 대비되는 박근혜 인수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철통 보안이다. 인수위는 첫 회의를 통해 △대외 공보활동 창구 대변인으로 일원화 △직권 남용 및 비밀 누설에 대한 경각심 강조 △인수위 자문위원제 폐지 등을 결정했다. 이명박 인수위 때 설익은 정책 내용이 다양한 경로로 외부에 알려지면서 혼선을 가져왔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문위원제를 폐지한 것도 역대 인수위에서 비상근 자문위원들을 통해 인수위 논의 내용이 외부로 유출된 사례가 많았던 점을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인수위는 정권 인수업무에 집중하면서 초대 정부 조각과 총리 및 국무위원들에 대한 검증은 당선인 비서실에서 직접 챙기도록 이원화했다. 당선인 복심이라고 부르는 이정현 전 공보단장을 정무팀장에 임명하는 한편, 15년간 그림자처럼 보좌했던 이재만 전 보좌관과 정호성 전 비서관 등 핵심 측근을 비서실에 전진 배치했다. 이정현 정무팀장은 “비서는 귀만 열리고 입은 없다고 한다”는 말로 첫째도 보안, 둘째도 보안을 강조했다.

    # 안보와 중소기업 강조

    말 줄이고 몸 낮춘 실무형 인수위

    2007년 12월 29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인수위 첫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명박 인수위가 5년 전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첫 업무보고를 받았다면, 박근혜 인수위는 1월 11일 첫 업무보고를 받는 부서로 국방부와 중소기업청을 택했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목표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짰다”고 말해 ‘안보 중시’와 ‘중소기업 중심’이라는 새 정부의 국정 방향을 고려해 일정을 마련했음을 시사했다.

    인수위가 첫 업무보고 부처로 국방부를 택한 것은 최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제3차 핵실험 개연성이 높아지면서 국민의 우려가 커지자 안보를 튼튼히 하겠다는 박 당선인의 의지를 재차 강조한 차원으로 보인다. 실제 박 당선인은 “굳건한 안보야말로 가장 기초적인 복지”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 변화에 상관없이 국가안보실을 설치하려는 것도 안보 강화에 대한 박 당선인의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중소기업청을 택한 것 역시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는 박 당선인의 철학을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박 당선인은 1월 7일 인수위 전체회의를 주관한 자리에서 “중소기업을 살리는 일이 굉장히 중요한데 중소기협중앙회 분들을 만나면 계속하는 얘기가 ‘이런저런 정책보다 손톱 끝에 박힌 가시 하나 빼줬으면 좋겠다’이다”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가시에 비유하며 거창한 정책이 아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을 강조한 셈이다. 이현재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가는 제도적 부분을 점검해 실제 중소기업이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정중동 朴 vs 거침없는 MB

    5년 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정기적으로 인수위 회의를 주재하고 각 분과위 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활발하게 움직였다. 반면 박 당선인은 1월 7일 인수위 전체회의를 주재하긴 했지만 인수위 업무에선 한 발짝 물러나 있다. 박 당선인은 차기 정부 조각에 몰두하며 인수위의 전반적인 운영은 김용준 위원장에게 위임한 상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한 집무실에 머물며 국정 운영에 관한 구상을 가다듬는다.

    박 당선인이 정권 재창출을 해낸 탓에 정권교체를 한 이명박 인수위 때와 달리 현 정부와 인수위 간 갈등이 적은 편이다. 박 당선인 스스로 취임식 전까지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있는 데다 인수위 역시 현 정부를 자극하는 발언은 자제하고 있다. 5년 전 이명박 인수위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사건건 부딪히며 갈등을 빚었다. 노 전 대통령이 인수위 업무보고와 관련해 “(인수위원들이) 호통치고 반성문 같은 것을 요구해선 안 된다”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에 이명박 인수위는 “업무 보고는 정중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상황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 반박했고, 이를 받아 노 전 대통령이 다시 “계속 소금을 뿌리면 나도 해보자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맞불을 놓으며 감정 골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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