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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우라늄 비밀제조 시리아에서 증거 잡았다

IAEA 시리아 핵시설 보고서에 ‘금속우라늄’ 적시…북한 핵물질 국외 유출 첫 사례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북한 우라늄 비밀제조 시리아에서 증거 잡았다

북한 우라늄 비밀제조 시리아에서 증거 잡았다

2008년 4월 미국 행정부가 공개한 북한 영변 원자로 사진(왼쪽)과 2007년 9월 파괴된 시리아 원자로 공사현장 사진. 미 정부는 두 원자로가 외형상 유사한 데다 시리아 현장에서 북한인들이 활동하고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이 달라졌다. 7월 2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북한 외무성 김계관 제1부상과 미국 국무부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의 고위급 대화, 2기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낸 웬디 셔먼의 국무부 정무담당 차관 지명, 국무부 한국과장으로 일하면서 영변 핵시설 불능화 실무팀장을 맡아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성김의 주한미국 대사 임명까지, 2011년 여름 북한을 상대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행보는 숨 가쁘기 이를 데 없다. 워싱턴이 과감한 대북(對北) 접근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쏟아져 나오는 배경이다.

이른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기조 아래 이명박 정부의 대북 압박을 지원하며 평양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던 미국이 이 시점에서 먼저 정책 변경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엿볼 수 있는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UEP(우라늄 농축프로그램)’다. 7월 뉴욕 대화에서 미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사전 조치로 가장 먼저 내걸었던 요구사항이 ‘우라늄 농축시설의 가동 중지 및 프로그램 중단’이었고, 8월 말 북·러 정상회담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꺼내든 ‘대량살상무기(WMD) 실험의 잠정 중단’ 카드를 워싱턴이 반박한 이유도 ‘UEP 중단 없이 대화 없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우라늄이 다른 모든 문제에 앞서는 핵심 과제라는 것이다.

올여름 워싱턴의 숨 가쁜 행보

북한의 1·2차 핵실험이 영변 핵시설에서 재처리한 플루토늄으로 만들어진 핵폭탄 실험이었던 것에 비해, 우라늄으로 만든 폭탄은 아직 실체가 확인된 바 없다. 그러나 평양은 이미 2009년 6월 우라늄 농축 작업 개시를 선언해 그해 9월 성공했다는 발표까지 내놓았고, 특히 2010년 11월에는 미국의 핵과학자들을 초청해 이 작업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1000여 기를 공개한 바 있다.

공학적으로 보자면 우라늄은 플루토늄에 비해 핵폭탄을 만들기가 훨씬 쉬울뿐더러, 핵 물질을 얼마나 만들어냈는지 사후에 검증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이 이렇게 만들어진 핵폭탄용 고농축 우라늄이 북한을 벗어나 해외에 유출되는지도 감시하기가 쉽지 않고, 성분분석을 통해 출처를 알 수 있는 플루토늄과 달리 우라늄은 누가 공급했는지 역추적하기도 어렵다. 북한의 핵 기술이 중동국가나 테러조직에 넘어가는 확산(proliferation) 문제를 ‘최악의 시나리오’로 염려해온 미국의 눈으로 볼 때 우라늄이 플루토늄보다 훨씬 까다로운 골칫덩어리인 셈. 2009년부터 이어져온 평양의 UEP 관련 행보를 두고 전문가들이 “북핵 문제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진입했다”고 분석한 이유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북한 움직임이 빨라진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워싱턴이 다급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워싱턴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얼마 전 작성한 기밀 보고서를 그 배경으로 지목한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문제의 5월 24일자 보고서는‘시리아에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안전조치 실행’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시리아의 핵개발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는 과정에서 IAEA의 견해를 확인하기 위해 만든 이 보고서는 2008년 6월 IAEA 조사단이 시리아 현지를 직접 방문 조사한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당시의 조사와 관련해 그간 몇 차례의 비공식 언급이 흘러나온 바 있지만, 공식 보고서 형식으로 채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가 다루는 시리아 다이르알주르(Dair Alzour) 지역의 시설은 핵물질 생산기지로 의심받아 2007년 9월 이스라엘 폭격기의 공습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시리아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 중이었을 뿐이라고 반박했지만, IAEA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폭파된 건물 외형이 기체냉각 흑연감속로와 유사하고, 주요 인프라 역시 시리아가 주장하는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시리아 측 주장에 근거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간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시리아가 북한과의 협력을 통해 핵 능력을 확보해나가고 있으며, 다이르알주르 시설 역시 북한 기술을 도입해 건설된 것이라는 의심을 제기해왔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현장 건물의 제원을 감안할 때 영변의 25MW급 흑연감속로와 유사한 원자로를 건설 중이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을 사실상 공식화하고 있다.

더욱 주목해야 할 대목은 조사단이 파괴된 건물 잔해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꽤 많은 숫자(significant number)’의 금속우라늄과 흑연, 스테인리스스틸 샘플을 확인했다”는 부분. 이들은 모두 흑연감속로에 쓰이는 우라늄 연료봉의 구성물질로, 특히 이러한 금속우라늄은 흔히 옐로케이크(yellow cake)’로 불리는 정련 우라늄을 고도로 가공해야 얻을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 이미 현실화?

북한 우라늄 비밀제조 시리아에서 증거 잡았다

IAEA의 5월 24일자 기밀 보고서.

보고서가 “(해당 금속우라늄의) 출처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 시설이 북한과의 기술협력에 의해 건설 중이었다’는 의혹과 결합하면 이 한 문장은 엄청난 폭발력을 갖는다. 북한이 우라늄을 가공해 이를 해외로 유출한 첫 사례일 수 있기 때문. 이는 북한이 이미 수년 전부터 중동국가의 핵 물질 공급처 구실을 해왔다는 뜻이므로, 미국이 상정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이미 현실화한 지 오래임을 의미한다. KAIST 원자력정책센터 강정민 초빙교수는 “이렇게 되면 북핵 문제가 단순히 북한의 핵 능력을 떠나 전 세계적인 핵 확산 문제로 직결된다”고 평가했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이 금속우라늄이 북한에서 온 것이라면 과연 이 물질을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점이다. 북한은 1980년대 초반 영변에 우라늄 핵연료 제조시설을 건설한 바 있지만, 이 시설은 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사실상 가동이 중단, 방치된 상태로 남아 있다. 앞서 말한 대로 평양은 최근 수년 사이 영변에 새로 2000여 기의 원심분리기를 설치 및 운영해왔으나, 이는 IAEA가 시리아에서 금속우라늄을 확인한 이후의 일이다.

결국 남는 가능성은 북한이 20여 년 전에 만든 금속우라늄을 시리아에 제공했거나, 2010년 원심분리기 1000기를 공개하기 이전에 이미 다른 곳에서 은밀하게 핵물질 시설을 건설한 뒤 여기서 만든 금속우라늄을 시리아에 건넸을 경우뿐이다. 그러나 94년 이전에 생산된 핵물질은 IAEA가 모두 재고량을 파악해놓은 데다, 그나마 2003년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한 이후 남은 분량을 모두 투입했다는 것이 핵공학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결국 북한이 2000년대 초반 이미 비밀리에 우라늄 가공시설을 건설해 그 결과물을 얻어냈을 공산이 크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시설은 여전히 가동 중일 가능성이 높고, 여기서 나온 핵물질은 지금도 제3세계 국가로 확산되고 있을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으로서는 북핵 문제의 조속한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국 처지에서 보자면 이런 의혹이 사실일 경우 “핵폭탄 6~8기 분량의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그간의 북한 핵 능력 평가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북한이 비밀리에 핵물질 제조시설을 운영해왔다면 그 규모와 능력 수준을 가늠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 더욱이 앞서 말했듯, 우라늄 핵폭탄은 실험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만들기 쉽고, 조악한 기술 수준으로도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공학적 특성을 지닌다. 북한이 핵무기를 몇 기나 만들어 두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뜻이다.

北, 6자회담 재개와 핵 협상

북한 우라늄 비밀제조 시리아에서 증거 잡았다

2008년 4월 25일 이마드 무스타파 미국 주재 시리아대사가 미 행정부가 제시한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 의혹 정보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문제가 2002년 이른바 2차 북핵 위기의 도화선 구실을 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로부터 원심분리기용으로 의심되는 알루미늄 강관 수입을 시도했던 평양의 움직임이 서방 측에 확인된 후 미국 중앙정보국(CIA) 등 워싱턴 강경파들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수년 내에 완성될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낸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정부 관계자들은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이를 ‘네오콘의 음모’라고 반박했고, 워싱턴에서도 2기 부시 행정부 들어 대북정책이 급선회하면서 당시 CIA의 정보판단이 과장된 것이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3년 남짓의 시간이 흐른 뒤 작성된 IAEA의 보고서는 오히려 네오콘 진영의 극단적 비관론이 사실이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는 북핵 퍼즐의 복잡성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물론 앞에서 살펴본 내용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추론과 정황의 영역에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 우라늄 핵물질은 성분을 분석한다 해도 그 출처에 대한 물리적 증거를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이 보고서가 미국과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에게 북핵 문제에 관한 그간의 정책 및 평가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할지 모르는 단서를 던지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워싱턴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이 해당 보고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출과 오바마 행정부의 북핵 접근법 선회를 연결 짓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5월 북·중 정상회담, 7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남북 비핵화 회담과 뉴욕 북·미 대화, 8월 북·러 정상회담을 거치는 동안 평양은 6자회담 재개와 북핵 협상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김 위원장은 이미 1년 전 핵 문제를 담당하는 외무성 고위 관료들을 연쇄 승진시키면서 진용을 가다듬은 바 있다. 우라늄 카드는 2011년 여름 북한이 벌여온 협상게임의 최대 승부수고, 문제의 IAEA 보고서는 그 비장의 한 수를 엿볼 수 있는 ‘갈라진 틈’이다. ‘최악의 악몽’이 현실화하는 것을 막아내려는 워싱턴의 행보는 과연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바야흐로 명운을 건 싸움이 다시 한 번 한반도를 달구고 있다.



주간동아 803호 (p66~70)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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