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1

2016.01.13

스페셜 리포트

문형표 이사장의 수상한 복귀 국민연금 보험료 대폭 인상?

메르스 책임론 경질 4개월 만…500조 연기금 운용 분리, 지각변동 정해진 수순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입력2016-01-08 17: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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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빨리 돌아왔다. 보건복지부(복지부)는 지난해 12월 31일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임명했다. 복지부는 문 이사장이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및 지속가능성 제고 등 시급한 제도 개선과 기금운용 선진화의 적임자”라며 “평생 동안 연금학자로서 쌓아온 전문성과 장관직 수행 시 조직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이사장으로서 필요한 역량과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사태의 초동대응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8월 복지부 장관에서 경질된 지 채 5개월이 안 됐다.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에서 ‘이사장’으로의 ‘컴백’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메르스 확산 사태에 대한 실무자 징계 처분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을 정도다. 그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시점이다. 국장급 인사를 포함한 10여 명이 중징계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책임을 지고 물러난 복지부 수장은 이미 해당 부처 산하기관의 이사장으로 취임까지 마친 상황. 코미디가 따로 없다.
    반발은 필연적이었다. “복지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메르스 사태에 대한 미흡한 대응으로 국민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경질된 지 4개월 만에 산하기관 기관장으로 ‘영전’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홍준선 국민연금공단 노동조합 사무부처장도 문형표 이사장의 임명 반대 첫 번째 이유로 이를 꼽았다. 야권과 시민단체의 비판적 논평 또한 이를 가장 먼저 지적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이런 비난을 예상치 못했을까. 그럼에도 문형표 이사장을 끝끝내 낙점한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그의 임명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공모에 문형표가 지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던 지난해 12월 초부터 예상된 것이었다. 심지어 복지부 내에서는 “사실상 내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도 나왔을 정도. 과거 그가 복지부 장관에 임명된 정황이나 이번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임명된 정황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 국민연금 개혁의 기수

    2013년 9월 진영 당시 복지부 장관이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에 연계하는 정부안에 반발해 사퇴하자 12월 문형표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후임으로 임명됐다. 결국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에 연계돼 2014년 7월부터 시행됐다. 지난해 10월에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분리를 놓고 최광 이사장과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이 갈등을 빚다 최 이사장과 홍 본부장 모두 물러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사실 기금운용본부의 분리는 문 이사장이 복지부 장관 재임 시절 추진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기금운용본부의 분리는 신임 문 이사장이 가장 먼저 추진할 사업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지난해 12월 31일 열린 취임식에서 문 이사장은 “기금운용본부의 조직 역량을 강화하고 기금운용의 전문성, 중립성 및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며 “조직체계 개편과 인적 자원의 전략적 배치, 성과 중심의 보상체계로 선진화된 투자와 운용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문 이사장이 복지부 장관 재임 당시 기금운용본부 독립을 추진하면서 내세웠던 바로 그 논리였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이 낸 국민연금 보험료를 적립하고 이를 투자(운용)해 수익을 낸다. 아직까지는 보험료를 내는 사람(근로자)이 연금을 받는 사람보다 많기 때문에 국민연금기금에는 현재 500조 원이 넘는 돈이 쌓여 있다(표 참조). 국내 주식시장 거래 주식이 총 1500조 원가량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액수임에 틀림없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이런 거액을 어디에 어떻게 굴릴지 결정하는 조직이다. 국내 주식에는 거의 100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하고 해외 주식에도 70조 원가량을 투자하고 있다. 이만한 큰손이다 보니 국민연금공단이라고 하면 내로라하는 해외 유명 투자은행의 임원들도 굽실거린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그러나 기금운용본부는 아직도 배고프다. ‘전문성’에 배고프다는 것이다. 현재 기금운용에 대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같은 사용자, 근로자 대표자와 농협, 수협 등의 지역가입자 대표 등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부터 복지부는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독립해 공사로 만들고 기금운용위원회를 ‘기금운용 전문가’로만 채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이사장을 맞이한 국민연금공단은 이제 기금운용본부장의 임명을 앞두고 있다. 현재 후보군은 강면욱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권재완 AJ인베스트먼트 부사장, 이동익 전 한국투자공사 투자운영본부장, 정재호 유진투자증권 사모펀드 대표 등 4명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누가 기금운용본부장으로 오든 큰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광 전 이사장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의 기싸움은 최 전 이사장이 기금운용본부 분리에 반대하는 소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던 일이다. 이제 문형표 이사장으로 바뀐 이상 누가 후임이 되더라도 정부 정책에 맞추는 인물이 될 것이다.”
    문 이사장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건실한 국민연금’ 문구 또한 의미심장하다. 문 이사장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유명한 어구를 인용하면서 “현세대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면 결국 그 짐은 후세대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22세기까지를 내다보면서 제도를 운영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핏 보면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근래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들과 이에 대한 문 이사장의 과거 복지부 장관 시절의 태도에 비춰보면 그 의미는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적잖다.





    “이젠 누가 와도 기금운용 분리는 필연적”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은 지난해 내내 정치권을 달군 이슈였다. 소득대체율이란 연금 가입자가 평균소득의 얼마만큼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40년 납부를 기준으로 하는데, 그동안 연평균소득이 4000만 원이고 소득대체율이 50%라면 연금으로 연 20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전국적으로 시행된 역사가 짧아 평균 가입 기간이 20년이 되지 않는다. 소득대체율은 40년 납부를 기준으로 하므로 가입 기간이 20년이라면 똑같은 4000만 원의 연평균소득이라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절반인 1000만 원이 된다. 야권에서는 2015년 현재 46.5%인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부와 여당은 여기에 반대했다. 여야는 공무원연금 개혁과 소득대체율 50% 인상에 합의했으나 정부 반대로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소득대체율 관련 논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당시 복지부 장관이던 문 이사장은 소득대체율 상향 요구에 대해 ‘세대 간 도적질’이란 표현으로 강력하게 반대해 물의를 빚었다. 급속한 노령화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는 곧 노인인구가 노동인구 수를 앞지를 전망이다. 지금이야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500조 원 넘는 기금을 운용할 수 있지만 2040년대가 되면 연금 수령자가 더 늘어나면서 기금이 빠르게 줄어든다. 복지부는 2060년이 되면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먼저 연금을 받는 세대에 비해 젊은 세대가 부담하는 보험료는 높아지고 나중에 받을 수 있는 연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 소득대체율도 국민연금이 처음 시행된 1988년 당시에는 70%였던 것이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 조정을 거쳐 46.5%까지 떨어진 것이다. 초반에 국민연금에 가입한 세대는 지금 세대보다 보험료는 적게 내면서 연금은 더 많이 받는다. 만일 소득대체율이 다시 50%로 상향되면 아무래도 후대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22세기까지를 내다보면서 제도를 운영해나가야 한다”는 문 이사장의 발언은 여야 합의 사항이던 소득대체율 인상을 사실상 거부한 정부의 생각과 과거 복지부 장관 시절부터 주장했던 보험료 인상안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당시 문 장관은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려면 보험료를 현행 9%의 2배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국민연금이 지금처럼 상당한 규모의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해당된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18%의 보험료는 국민연금기금의 17년 치 적립금, 국내총생산(GDP)의 140%에 달하는 금액을 위해 필요한 액수다.



    더 큰 국민연금, 더 정부 맘대로

    문 이사장이 강조하는 ‘건실한 국민연금’은 결국 GDP 대비 적립금 규모 세계 1위인 현 상황을 지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 ‘전문성’을 강조하면서 기금운용본부를 분리시키는 상황을 더하면 어떻게 될까. 홍준선 사무부처장의 지적이다.
    “기금운용본부를 분리하겠다는 것은 수익성과 독립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보면 이는 안정성이 떨어지게 되고, 가입자 대표는 (기금운용 관련 사항의 결정에서) 배제된 상태에서 그 운용으로 인한 피해는 국민의 노후자금이 입게 된다. 안정성을 포기하고 수익성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관점 자체에 문제가 있다.”
    이미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만 100조 원 가까운 금액을 투자하고 있어 웬만한 대기업의 주주 목록에서 국민연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룹 대주주 일가보다 더 큰 지분을 보유한 경우도 매우 많다. 삼성전자도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이고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분을 모두 합쳐도 국민연금보다 적다. 그러나 주주 자본주의의 핵심인 의결권은 제대로 행사하지 않아 ‘거수기’라는 비난을 면치 못해왔다. 심지어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때는 주가 하락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찬성표를 던져 삼성에 특혜를 베풀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복지부는 기금운용본부를 분리해 ‘중립성’을 더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한국투자공사의 사례를 살펴보면 중립성에 대한 우려는 더욱 짙어질 뿐이다(14쪽 상자기사 참조).
    이뿐이 아니다. 국민연금이 가장 많이 투자하는 자산은 사실 국내 채권이다.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 채권 투자액은 266조여 원으로 전체 투자액의 52.6%를 차지한다. 이 중 국채 투자액은 43.7%로 약 116조 원이다. 지난해 국가채권 발행액이 539조 원가량인데 국민연금이 21% 정도를 산 셈이다. 국민연금의 운용은 지금도 국가의 입김을 가장 크게 받는다. 정부가 방만하게 재정을 운영해도 국채를 발행하면 국민연금을 통해 얼마든지 구매하게 만들 수 있다. 올해 국가채무는 사상 처음으로 GDP의 40%를 넘을 전망이다.
    국민연금기금 운용 실태와 문형표 이사장이 추진할 일련의 조치들을 엮어보면 ‘더 큰 국민연금, 더 정부 마음대로’라는 그림이 그려진다. 국민의 노후자금이 대기업의 이해관계 방어에 투입되고 방만한 정부 재정 운용에 동원될 수 있다. 전문성과 중립성이라는 미명하에 기금운용 부문을 독립시켜놓으면 정부의 입김이 더욱 세져 이 모든 것이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다. 전례 없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가 과거 국민연금기금 운용 과정에서, 그리고 한국투자공사의 사례에서 목격한 것일 따름이다.  

    ▼“분리하면 중립적?” 이유 같지 않은 이유▼
    폐지론까지 나온 한국투자공사 부실한 운용 실적은 누구 책임?

    한국투자공사는 2005년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동북아 금융허브 조성을 명분으로 설립한 외환보유액 전문 운용기관이다. 설립 당시부터 우리나라보다 외환보유액이 훨씬 많은 중국, 일본 등의 이웃 나라에서도 외한보유액만 전문으로 운용하는 기관이 존재하는 사례가 없고 우리나라의 적정 외환보유액에 대한 검토도 없이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항구적인 조직을 만들었다는 이유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한국투자공사법에서는 운영위원회 및 공사 업무가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조항들이 있지만 실제 운영상에는 정부(기획재정부)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운영위원회 위원의 임면에 정부가 깊이 관여할 수 있기 때문. 한국투자공사가 2008년 메릴린치에 2조 원을 투자했다 9개월 뒤 1조 원대 손실을 본 것이 대표적 사례. 당시 회의록을 보면 운영위원회 위원 대부분이 초반에는 메릴린치가 이미 15조 원대 손실을 봤다는 사실을 들어 강력하게 반대했다, 줄곧 투자를 주장해온 조인강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심의관이 정회를 요청하고 나서자 갑자기 만장일치로 찬성이 결정됐다.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지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조인강 당시 금융정책심의관은 이후 금융위원회와 세계은행(World Bank)을 거쳐 지금은 신용보증기금 감사로 재직 중이다.
    그 밖에도 부실한 운용 실적과 부적절한 운용사 선정 방식 등으로 지난해 초 국회에서는 한국투자공사 폐지론이 대두됐으며, 안홍철 사장이 호화 출장 등을 비롯한 부적절한 처신으로 지난해 11월 초 사임한 이후 두 달 가까이 사장석이 공석이었다. 최근 신임 사장직에 내정됐다고 알려진 은성수 세계은행 상임이사는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전례 없이 빠른 고령화 사회 진입, 대한민국 연금의 어두운 미래▼
    소득대체율 상향 논쟁이 한창이던 2015년 5월 50%의 소득대체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18%의 보험료가 필요하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과 달리 야권에서는 보험료를 1%p만 올려 10% 정도의 보험료만 유지해도 소득대체율 50%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은 이러한 주장이 2060년쯤 기금이 완전히 고갈되는 상황을 상정하고 있으며, 이 경우 2060년 이후에는 신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급격히 증가한다고 반박한다.
    국민연금기금의 고갈을 우려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고갈되더라도 연금 지급 자체가 중단되는 일은 없지만 국가의 재정지원은 곧 국민 세 부담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국민연금 고갈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논의할 형편이 못 된다. 국민연금 역사가 짧아 연금 수령자가 적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전체 2112만 명인 데 반해 연금 수령자 수는 226만 명으로 단 10%밖에 되지 않는다.
    젊은 세대의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고 노년층 기대수명이 길지 않아 피라미드형 인구 구조를 대체로 유지하던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연금제도는 제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빠르게 노년층이 늘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21세기 들어서는 지금 같은 연금제도가 유효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연금기금의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해 사망까지의 공적연금 수령 기간이 15년 정도가 되도록 은퇴 연령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것만으로 우리나라의 급속한 노령화에 뒤따르는 (지금도 심각한 수준인) 노인 빈곤 문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19세기 후반 공적연금을 시작한 서구보다 역사가 훨씬 짧아 공적연금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부족하고, 그 어떤 서구 국가도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의 노령화를 맞이하고 있어 노령화에 대비해 참고할 만한 사례를 찾기도 어렵다. 대한민국의 공적연금제도를 어떻게 정비할지는 향후 수십 년간 지난한 국가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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