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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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시대 핵심 능력 ‘언어 감각’, 고전으로 키우자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미래, 전문 지식보다 학습 능력 중요… 고전과 현대의 통섭이 핵심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3-09-1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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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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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에는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이 데이터화된다. 아침에 눈떠서 스마트폰으로 무심코 클릭한 웹사이트부터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대중교통, 커피전문점에서 마신 커피 종류와 개수, 걸음 수와 체중, 혈당 변화까지 일상의 거의 모든 활동이 숫자로 변환돼 데이터로 저장되고 있다. 많은 기업이 빅데이터를 비즈니스에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21세기 가장 섹시한 직업’, 즉 가장 수요가 많을 직업으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뽑기도 했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류하고 규칙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코딩과 수학적 통계 모델만 배우면 될까. 수학을 잘하길 원한다면 학원에 다니면서 문제를 많이 푸는 것만이 능사일까. 논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 창의력을 키우는 데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무엇보다 ‘언어 감각’을 단련해야 한다. 생각의 수단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데이터 분석에 필요한 논리적 사고력과 추론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데이터도 결국 읽고 해석해야 하는 텍스트이고, 수학 역시 일종의 기호체계다. 모든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읽기와 쓰기 능력은 언어 감각을 세심하게 다듬음으로써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언어 감각, 모든 공부의 기초

    필자는 ‘언어사중주’라는 책에서 언어 감각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책 내용의 요지는 풍부하고 광범위한 독서와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이 언어 감각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앞으로 어떤 전공이 유망하냐”고 질문하지만 미래에는 전공이 무의미할 것이다. 대학에서 배워야 할 것은 특정 전공의 전문 지식이 아니라, 새 분야의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는 학습 능력이다. 이는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인 말과 글로 풀어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대학 전공도 사실 전문 내용을 그 분야의 기술적 언어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전공이 무엇이든 기본은 ‘말과 글’이다. 언어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돼야 한다. 언어 감각은 모든 공부의 기초가 된다.



    한국 도서관에는 안타깝게도 책다운 책이 적다. 토익과 주식 관련 책이 많고, 이용객도 이러한 책들에 관심이 쏠려 있다. 사람들은 왜 다양한 책을 읽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책을 읽기 때문이다. 그 밖의 독서는 딴짓이나 쓸데없는 짓으로 취급받는다.

    서점에도 실용 서적이 범람하는 추세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까, 돈을 잘 벌까, 건강해질까 같은 내용이 담긴 책들이다. 이런 책을 읽고 영어를 잘하게 돼 성공했다거나 건강해졌다는 사람은 사실 거의 없는데도 여전히 잘 팔린다. 실용적인 것만 강조하는 세태에 우리는 과감히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실용적인 것은 과연 실용적인가.” “실용적이지 않아 보이는 것은 정말 비실용적인가.”

    언어 감각을 키우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책을 읽는 것은 지식을 얻기 위한 행동인 동시에 그 책에 쓰인 표현과 사고의 흐름을 함께 경험하고 익히는 행위다. 지식은 교과서와 참고서,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지만 언어 감각은 광범위한 독서로만 키울 수 있다. 오로지 지식만을 위해 독서하는 것은 쇠고기와 닭고기의 맛 차이를 모른 채 오직 단백질만 섭취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경우 문제의식을 갖고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인간이 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적 감수성과 상상력이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모든 책이 평등하게 다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여러 번 읽어야 할 책이 있고, 단숨에 읽고 덮을 책이 있다. 모든 책에 똑같은 열성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낭비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냈던 요하네스 본프레러는 “생각하고 뛰어라. 생각하지 않으면 몸이 고달프다”고 말했다. 이는 책 읽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필자는 이를 ‘몰입하기와 거리두기의 병행’이라고 말하겠다. 그렇다면 여러 번 읽을 만한 책은 어떤 책일까.

    현대문학의 거장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을 “고대 전통 사회의 부적처럼 우주 전체를 드러내는 책에 붙이는 이름”이며 “그것을 둘러싼 비평 담론이라는 구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고전을 읽으면서 인류의 위대한 지적 사유 과정을 탐험하는 것만큼 언어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은 없다. 시간을 견디며 이어져온 고전의 어휘, 표현과 함께 그 사고방식과 논리 전개를 배워야 한다. 고전을 읽는 것만으로도 언어 감각은 저절로 키워진다. 역설적이게도 고전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현재에 도달한다. 고전과 현대의 시간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언어 감수성은 더욱 섬세하게 발달하고, 자신만의 언어와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통섭은 학문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전과 현대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고전 텍스트와 현대적 사유의 연결 및 변주는 독서를 통해 다양하게 시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장편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함께 연결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서사시 ‘신곡’의 지옥편과 이탈리아 화학자이자 작가 프리모 레비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생존자로서 경험한 내용을 쓴 ‘이것이 인간인가’를 연결해볼 수도 있다. 이러한 통섭 과정이야말로 언어 감각과 더불어 사유 영역까지 업그레이드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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