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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실적 정유업계에 ‘횡재세’ 부과? 속사정 들여다보니

미국·영국은 시추 겸하는 정유사에 부과…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역대급 실적 정유업계에 ‘횡재세’ 부과? 속사정 들여다보니

SK이노베이션 울산 공장 전경. [사진 제공 ·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울산 공장 전경. [사진 제공 · SK이노베이션]

급등한 국제유가에 힘입어 정유업계가 때아닌 호황을 누리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횡재세’(Windfall Tax·초과이윤세) 도입 논의가 일고 있다. 정유사들의 초과이익에 세금을 물려 이를 환수한 뒤 지원 정책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구상이다. 올해 1분기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S-Oil),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업계 4사의 영업이익은 4조7668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 1조6491억 원, 에쓰오일 1조3320억 원, GS칼텍스 1조812억 원, 현대오일뱅크 7045억 원이다.

6월 21일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원회 의장은 “고통 분담 차원에서 정유사의 초과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 등을 통해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인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같은 달 23일 “정부는 세수 부족 우려에도 유류세 인하 폭을 최대한 늘렸다. 정유사들도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법인세를 추과 과세하는 방식의 법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제마진 급등했지만 누적 적자 메워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7월 13일 기준 국내 휘발유 평균 가격은 L당 2070원대, 경유는 2120원대다. 7월 1일부터 유류세 인하폭이 30%에서 37%로 확대됐으나, 추가 인하 직전인 6월 마지막 주와 비교해 L당 가격은 휘발유 63원, 경유 38원 내리는 데 그쳤다. 기름값 하락에 대한 소비자들의 체감 효과도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정유사들은 최근 국제 석유 제품 가격 하락을 반영해 일선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을 대폭 낮추는 분위기다. 일례로 SK이노베이션의 정유 자회사 SK에너지는 7월 12일부터 L당 100원 넘게 가격을 인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공급가격이 실제 주유소 판매가에 반영되는 데는 재고 문제로 일주일가량 소요될 전망이다.

정유업계가 1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이유는 수익성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인 정제마진이 급상승한 덕분이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등 석유 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 각종 비용을 뺀 수치를 일컫는다. 국내 정유 4사는 두바이 등 중동 등지에서 원유를 수입한 뒤 자체 공장에서 정제 과정을 거쳐 액화석유가스(LPG), 휘발유, 경유 등으로 분리해 석유 제품을 생산한다. SK이노베이션은 경남 울산, GS칼텍스는 전남 여수, 현대오일뱅크는 충남 서산에 생산 공장이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유럽에서 에너지 수급난이 발생했고,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글로벌 석유 시장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면서 수요 대비 공급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 초대됐다. 이로 인해 정제마진이 급등하면서 정유사들의 수익이 크게 개선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정유사마다 제품 생산 비율이나 생산 원가에 차이가 있어 회사별 정제마진이 다를 수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 정제마진을 국제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손익분기점은 통상 배럴당 4~5달러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마포구 에쓰오일 본사. [사진 제공 · 에쓰오일]

서울 마포구 에쓰오일 본사. [사진 제공 · 에쓰오일]

석유 제품 수출이 주 수익원

정제마진은 4월 배럴당 20달러를 돌파하며 신기록 행진을 이어오다 6월 넷째 주 배럴당 29.5달러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후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20달러를 웃돌다 7월 첫째 주 배럴당 16.13달러로 집계되며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증권사 컨센서스(전망치)에 따르면 정유 4사의 2분기 영업이익도 유가 상승과 정제마진 강세의 영향으로 호실적을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유사는 보통 산유국과 3개월 전 원유 도입 계약을 체결하는데, 유가가 오를 때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원유 가치가 높아지면서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고유가 및 인플레이션에 따른 수요 위축,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유가가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어 3분기에는 재고 관련 손실이 반영될 것으로 예측된다.

전남 여수에 있는 GS칼텍스 공장. [사진 제공 · GS칼텍스]

전남 여수에 있는 GS칼텍스 공장. [사진 제공 · GS칼텍스]

그렇다면 정치권 주장대로 정유업계는 횡재 수준의 막대한 수익을 얻은 것일까. 업계 관계자는 “1분기 영업이익은 대부분 유가 급등에 따른 재고 관련 손익이었고, 이는 회계상 이익일 뿐 운전 자본과 순차입금 증가 등 현금 흐름은 양호하지 않았다”면서 “재고 관련 이익을 제외하면 1분기 영업이익률은 6%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또한 2020년 국내 정유 4사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저유가(마이너스 유가)와 정제마진 약세로 5조 원대 영업 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당시 SK이노베이션 2조4203억 원, 에쓰오일 1조991억 원, GS칼텍스 9192억 원, 현대오일뱅크 5933억 원 적자를 봤고, 지난해부터 이어진 수익으로 적자를 메운 상황이다.

국내 정유업계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에 이어 세계 5위에 달하는 뛰어난 정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석유 제품을 수출해 이익을 남기는 구조로, 수출 비중이 60~70%가 넘는다. 반면 국내 시장은 정유사 간 경쟁이 치열해 마진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석유협회(KPA)에 따르면 1분기 국내 정유사들의 석유 제품 수출량은 1억899만 배럴로, 지난해 1분기 대비 2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출 금액은 120억 300만 달러(약 15조7000억 원) 규모다. 관세청의 6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수출 1위는 반도체(63억5700만 달러·약 8조3000억 원), 2위는 석유 제품(35억5700만 달러·약 4조6000억 원)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는 수출 베이스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달러를 벌어들이는 사업 모델을 갖추고 있다”며 “횡재세의 근간인 초과이익 환수는 내수에서 이익을 내는 부분에 적용돼야 하는데, 마진이 별로 없기에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초과이윤세를 부과하면 정유사는 생산할수록 이익이 줄어 공급을 축소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오히려 세금 부과 전보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역효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유업계 연구개발에 집중하게 지원해야

일각에서는 황제세가 도입될 경우 탄소중립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 등 글로벌 에너지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정유사의 생존을 위한 사업 투자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유사는 배터리와 수소 등 저탄소·탈산소 산업으로 전환을 추진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황제세 부과 시 재원 확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 경제 전문 미디어 ‘블룸버그’에 따르면 영국 정부의 초과이윤세 부과 결정이 나온 뒤 영국 석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180억 파운드(약 28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재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영국과 미국 등에서는 황제세 도입을 구체화하고 있으나, 한국과 달리 원유를 직접 시추·생산해 판매하는 에너지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국내 정유사처럼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후 석유 제품으로 판매하는 업계에 대해서는 관련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내수시장에 안정적인 석유 제품 공급을 중요시한 정책으로 풀이된다.

영국은 5월 26일 정유업계의 초과이익에 대해 25%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에너지 수익세’를 도입해 그날 즉시 발효했다. 수익의 40%에 세금을 부과하는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25%를 과세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영국 생산 활동에 대한 수익에만 세금을 매기고, 수입 원유 정제 활동과 관련된 수익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또한 해당 법안은 투자세액 공제율을 현행 2배인 80%까지 높인다는 획기적인 투자 인센티브도 담고 있다. 미국은 원유 채굴과 생산, 유통을 모두 겸하는 대형 유전업체 등을 주 타깃으로 3개 법안을 발의했으나 구체적인 논의나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에 손실이 발생했다고 국가가 물어주지 않는 것처럼 횡재세 도입은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다”면서 “횡재세가 부과되면 기업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재고 관리를 멈추게 되고 그럼 오히려 석유 제품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횡재세 부과보다 유류세 추가 인하가 국민에게 더 도움이 되는 정책일 듯하다”고 덧붙였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기업이 흑자가 나거나 적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이득이 생겼다고 법인세를 내는 상황에서 세금을 더 걷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인 민간주도성장이 잘 이뤄지도록 정유사들이 연구개발(R&D)이나 해외 자원 투자에 집중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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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1348호 (p20~22)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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