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9

2020.05.15

“일자리 감소 직시하면 기본소득 찬성자 늘어날 것”

〈인터뷰〉 용혜인 21대 총선 당선인·전 기본소득당 대표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0-05-11 15:07:5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사람 목숨이 돈보다 앞설 수 있게 하는 제도 만들려 정치 입문”


    21대 국회는 신인의 장이다. 전체 의원 중 초선의원이 50.3%로 절반을 넘는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새로 국회에 진입했다. 저마다 전문성과 비전을 품고 국회에 입성한 정치 신인들은 앞으로 한국 정치를 어떻게 바꿔나가려 하는 것일까. 주목해야 할 21대 국회 예비 입성자들을 만나봤다. 

    첫 주자는 용혜인 당선인이다.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5번으로 국회의원에 당선했으나, 원 소속 정당은 기본소득당이다.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을 위해 만든 한국 최초 원 이슈 정당이다. 

    기본소득은 재산, 근로 여부와 관계없이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일정하게 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고자 정부가 지급하기로 한 긴급재난지원금이 한시적 기본소득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당은 이를 한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지급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사회가 만드는 잉여가치는 늘지만 일자리는 줄어드는 4차 산업혁명 사회를 준비하려면 새로운 방식의 분배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그는 더불어시민당에 입당해 당선했지만 5월 15일 기본소득당으로 복당할 예정이다. 용 당선인을 5월 6일 기본소득당 사무실에서 만났다.



    세월호 계기로 시작한 정치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뭔가. 

    “세월호 참사를 마주하면서 진상규명과 빠른 수습, 그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한계를 많이 느꼈다.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사람 목숨이 희생되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고치다 목숨을 잃은 김용균 씨가 그랬다. 결국 사람 목숨이 돈보다 앞설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들지 않으면 돈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는 근로자나 안전을 소홀히 하는 기업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법과 제도를 바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치 활동에 나서게 됐다.” 

    -정치 입문 계기와 기본소득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돈과 목숨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봤다.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돈이 있다면 돈과 목숨을 올려놓고 저울질하는 상황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기본소득은 단순히 호혜적 정책과는 다르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상황이 줄면 각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기본소득 정책은 좌우를 막론하고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기본소득이 막 논의되기 시작하던 2009년쯤에는 좌우파 양쪽에서 반발이 컸다. 보수 진영에서는 공산주의 정책이라는 비판. 좌파 진영에서는 자본주의를 유지하려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회구성원 간 대화와 연대를 통해 사회 불평등을 해결해야지, 국민에게 돈 몇 푼 쥐어주는 식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기본소득 관련 논의는 이런 수준을 넘어섰다고 본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고, 미래통합당 몇몇 의원도 기본소득에 관심을 보인다. 게다가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프로바둑기사의 대국 이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사회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방향이라고 보는 시선도 늘었다. 일자리는 사라지는데 사회가 생산하는 부가가치는 계속 늘어난다. 이를 어떤 식으로 나눠야 하는지 논의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것을 꽤 많은 사람이 이성적으로,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본다.”

    사회 변화에 따른 피할 수 없는 선택

    -기본소득을 현실화하는 데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정치권에서 먼저 진지하게 기본소득 정책에 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기본소득이 잘 알려진 정책이라 생각하지만 의외로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 물론 일부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실험은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지자체는 조세를 걷을 수 있는 권한이 없어 재원 마련이 어렵다. 결국 장기적, 혹은 국소적인 실험만 할 수 있다. 기본소득에 대해 얘기하려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 지급 계획이라도 세워야 한다. 국가적 차원의 논의가 아니면 지방에서 중앙으로 확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기본소득을 구현할 구체적인 청사진이 있나. 

    “큰 규모의 재원이 들어가는 일이고, 전례도 없는 일이다 보니 몇 년 동안 국가 차원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과 관련해서는 맨 처음 하위 70%로 시작해 점점 늘려가는 방식이나, 마스크 5부제처럼 기본소득 5부제를 시행하는 방안도 있다. 그 후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해 결정하는 것이다. 다만 기본소득을 얼마로 할 것인가 하는 금액 문제는 열어두고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기본소득당이 제시한 기본소득 금액이 있지 않나. 

    “기본소득당은 월 60만 원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바뀔 수 있다. 정치 영역에서 정책이 현실화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최저임금을 정할 때도 명확한 근거는 없었다고 본다. 다만 시간당 8000원이든, 1만 원이든 금액이 정해지면 여기에 대한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하는 것이다. 명징하고 정밀한 근거 있어 해당 금액이 산출된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도 이런 맥락에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금액을 설정한 뒤 논의를 거쳐 정할 수 있다.” 

    -기본소득에 대해 논의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뭔가. 

    “기본소득의 난점 가운데 하나는 주요 의제가 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기본소득 정책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다. 장애인, 여성, 근로자, 청년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관련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기본소득은 뒷전이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기본소득은 먼 이야기로 보이기 십상이다.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할 때도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주장하는 편이 쉽지, 재발을 막기 위해 기본소득을 실시하자고 주장하는 일은 생소하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실제적인 논의가 더딘 편이다.”

    민주화 이후 사회 문제 고민할 때

    -노동당의 대표직을 맡았다 탈당하고 기본소득당을 창당했다. 노동당에서도 기본소득을 주장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새로운 정당을 창당한 이유는 뭔가. 

    “노동당에서 활동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사회를 바꾸려면 새로운 전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대한민국 시민사회의 가장 큰 과제는 ‘민주화’였다. 그 과제는 2016년 촛불집회와 그 후 대선으로 완결됐다. 하지만 민주화 다음의 전망을 제시하는 정당이 없었다. 진보 진영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본소득이 새로운 전망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노동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면서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6개월간 전국을 순회하며 당원들을 만나고 설득했다. 성과는 있었다. 당대회에서 60% 이상 지지율을 얻었다. 하지만 7표 차이로 3분의 2를 달성하지 못해 부결됐다. 결국 노동당은 기존 노동운동 중심의 노선으로 가게 됐다. 전통적 의미의 노동운동은 경험도 많지 않고 기존에 해오던 분들이 더 잘할 것이라는 생각에 탈당하게 됐다. 당시 기본소득에 대해 함께 고민하던 동료들과 지난해 9월 8일 기본소득당을 창당했다.” 

    -노동당에서 기본소득 안이 부결된 이유가 뭐라고 보나. 

    “노동조합, 그것도 대기업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분 중에는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뿐,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문제에는 관심이 적었다. 당시 우리가 주장한 것은 매달 30만 원의 기본소득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젊은 세대에게 30만 원은 큰돈이다. 하지만 대기업 근로자들에게는 토요일 특근 한 번만 하면 나오는 돈이다. 그러니 그들은 30만 원이라는 적은 돈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컸다. 물론 아예 설득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언제까지 일자리를 지키기만 하는 수세적 싸움을 할 것인가. 기본소득 등으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는 분들이 있었고, 노동자의 영원한 파업 기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당원도 있었다.” 

    -민주화 이후 새 전망이 필요하다는 시각은 좌우를 막론하고 젊은 정치인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얘기를 나눠보면 현실 인식 측면에서는 진보정당 청년 당원과 민생당, 미래통합당 청년 당원들의 생각이 비슷한 편이다. 그 인식에 대한 대안과 결론이 각자 다를 뿐이다.” 

    -청년세대에게는 기본소득 정책을 좀 더 쉽게 설명할 수 있겠다. 

    “새로운 정치세대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세대는 단순히 같은 연령대라고 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공통의 정치 경험이 필요하다. 일례로 86세대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이라는 특수한 경험이 있었다. 기본소득당이 하려는 일 가운데 하나가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로 새로운 정치세대를 구성하는 것이다. 현재 기본소득당 당원이 2만 명가량 된다. 당원의 85%가 10~30대다. 이들 중 70%는 난생처음 정당에 가입한 사람이다. 그만큼 젊은 세대에게 기본소득은 소구력이 있다고 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