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78

2019.03.01

이슈

“인력 쥐어짜다 이럴 줄 알았다”

발전소 설비 관리 민영화, 과점, 최저가 입찰이 만든 비극 故 김용균 씨 소속 용역회사 등 4곳 박연차 씨 태광실업이 실질 소유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9-03-04 11: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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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근로자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오른쪽)고(故) 김용균 씨의 유품. 석탄가루가 묻은 수첩과 고장 난 손전등, 건전지, 컵라면 세 개, 과자 한 봉지 등이 나왔다.

    2월 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근로자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오른쪽)고(故) 김용균 씨의 유품. 석탄가루가 묻은 수첩과 고장 난 손전등, 건전지, 컵라면 세 개, 과자 한 봉지 등이 나왔다.

    난해 12월 11일 한국발전기술 소속 계약직원 김용균(당시 24) 씨가 태안화력발전소 석탄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일이 위험한 만큼 2인 1조로 작업해야 했지만, 모자란 인력 탓에 혼자 일하다 변을 당한 것.

    일각에서는 이 같은 사고의 원인이 과도한 민영화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한국전력공사(한전) 자회사가 발전소 설비 관리를 민간에 넘기면서 생긴 부작용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설비 관리를 민간업체에 넘긴 후 사고가 늘고, 근로자들의 상황은 나빠졌다. 여기에 최저가 입찰에 따른 인력 쥐어짜기로 인명 사고 위험성도 상존한다.

    안전 관리를 민영화

    당초 전국 발전소 설비 관리는 한전 자회사인 한전KPS가 전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전KPS가 관련 산업을 독점하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게다가 1994년 한전KPS의 파업으로 관리에 차질이 빚어지자 각 발전소에서도 한전KPS 이외의 관리업체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정부는 2009년 ‘발전정비시장 경쟁 도입 대책’을 수립했다. 이 대책은 2013년부터 일부 발전소 설비를 민간업체가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발전소 핵심 설비인 터빈이나 발전기에 대한 관리는 한전KPS가 맡고, 비핵심 설비부터 경쟁 입찰을 통해 민간에 넘기는 방식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지난해까지 발전소 정비 전 분야를 민간업체가 맡을 수 있게 했다. 지금은 현 정부의 핵심 공약인 ‘상시·지속·안전 관련 업무의 정규직화’의 일환으로 발전소 설비 관리 업무의 외주화가 멈춘 상태다. 

    발전소 안전 관리를 민간에 맡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설비 관리를 할 줄 아는 업체가 드물었다. 어쩔 수 없이 한전KPS가 나서 업체에 기술이전을 해줬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각 업체는 빠르게 발전소 설비 관리 및 정비 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여전히 한전KPS의 정비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은 지난해 10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받은 발전 설비 정비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2005~2017년 발전 설비 정비 실적을 모두 분석한 결과, 여전히 높은 정비 기술력을 요하는 업무는 한전KPS가 하고 있었다. 최고 정비 기술을 요하는 A급 O/H(오버홀) 정비 실적은 전체 486건 가운데 한전KPS가 318건(65%)을 담당했다. 민간업체가 기술력 부족으로 발전소 설비 고장을 제때 확인·해결하지 못하고 한전KPS에 기술 도움을 요청한 일도 최근 4년간(2013~2017) 128건에 달했다. 일부 함량 미달의 업체가 정비를 맡아 고장도 늘었다. 정비산업 민간 개방을 시작한 2013년 이전의 발전소 고장 건수는 연평균 53건. 개방 후에는 고장 건수가 연평균 68건으로 28% 늘었다. 

    발전소 운영업체가 자회사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발전소 관리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발전기술도 2011년 한국남동발전(남동발전)의 자회사로 출발했다.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2013년 남동발전은 한국발전기술과 약 862억 원의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남동발전은 2014년 한국발전기술을 태광실업에 매각했다. 

    결국 원청업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각 민간업체에 소속된 기술자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중당 김종훈 의원실이 조사한 ‘전력관련업계 민간정비업체 이직현황’에 따르면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에는 지난해 10월 기준 발전업계 출신 임직원이 8명 있었다. 이 중 5명은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원청업체인 한국서부발전(서부발전) 퇴직자였고, 2명은 한전KPS에서, 나머지 1명은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재취업했다. 

    정년퇴직을 앞둔 이들이 쉽게 하청업체로 이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격증 때문이었다. ‘발전 설비 정비 자격’이라는 자격증은 서부발전 등 5개 발전소 운영업체가 모여 만든 ‘한국발전교육원’에서 발전소 근무 경력 등을 기준으로 발급해왔다. 3~1급으로 분류되며 업계에서 3급은 기능사, 2급은 산업기사, 1급은 기사 대우를 받았다. 한국발전기술이 태안화력발전소의 시설 관리 업무 입찰에 성공한 것도 낮은 가격은 물론, 관련 경력의 직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업체 관계자는 “가격 외에 안전성 등 많은 기준이 있었고, 각 기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입찰에 성공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력자들은 위험한 업무에 투입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경력자는) 관리직으로 온 경우가 대부분이라 실제 현장에 투입되는 일은 드물다. 게다가 중요 관리 기술도 제대로 전수되지 않아 신입사원이 위험한 일을 주로 맡곤 한다”고 말했다.

    경쟁 붙이려 했지만 공룡이 생겼다

    현재 민간 발전소 정비업체 가운데 경쟁력이 있다고 거론되는 업체는 금화PSC, 일진파워, 수산인더스트리, 한국발전기술, 한국지역난방기술, 에이스기전, 한국플랜트서비스 등 7곳이다. 충분히 경쟁이 가능한 숫자처럼 보이지만 한국발전기술, 한국지역난방기술, 에이스기전, 한국플랜트서비스 등 4개 업체는 사실상 태광실업의 영향력 아래 있다. 

    한국발전기술은 2014년 태광실업이 인수, 같은 해 7월부터 사고 직전인 지난해 11월까지 4년여 동안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사위인 이승원 씨가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이씨는 태광실업 계열 사모투자펀드인 ‘칼리스타캐피탈’의 대표다. 칼리스타캐피탈은 한국지역난방기술, 한국플랜트서비스의 최대주주로 지난해 9월 에이스기전의 지분까지 매입했다. 이씨는 현재 에이스기전의 사내이사도 겸임하고 있다.

    발전소 설비 정비·관리업계의 절반이 한 회사의 영향력 아래 있으니, 사실상 과점시장이라 볼 수 있다.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공성이 높은 기업이 투기자본에 넘어가면 이익만 챙기고 재매각하는 ‘먹튀’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태광실업이 발전소 관리업체들을 사들이는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다. 발전소 관리 시장은 투자 대비 이익 창출이 쉽다는 것이다. 발전소 관리업체 관계자는 “최저가 입찰 경쟁이 심하다지만, 일단 입찰만 따낸다면 무조건 수익은 낼 수 있는 사업이다. 핵심 인력이 아닌 인력의 인건비는 충분히 조절이 가능하다. 인건비를 줄이면 매번 10%가량 이익을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저가 입찰이 만든 만성 위험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비정규직 근로자 김군이 숨진 ‘구의역 사고’ 2주기를 맞은 지난해 5월 28일 서울 광진구 사고 현장에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동아DB]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비정규직 근로자 김군이 숨진 ‘구의역 사고’ 2주기를 맞은 지난해 5월 28일 서울 광진구 사고 현장에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동아DB]

    016년 5월 28일에도 위험한 현장에서 혼자 일하던 김군(당시 19)이 변을 당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스크린도어 수리 외주업체 은성PSD 소속이던 김군은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고치고 있었다. 지하철이 계속 들어오는 역 승강장에서 일하다 보니 2인 1조로 작업하되 1명은 지하철이 오는지 등 작업자의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는 업무 매뉴얼이 있었다. 하지만 김군과 함께 투입될 인원이 없었다.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군은 들어오는 지하철을 피하지 못해 사망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를 당한 김용균 씨도 마찬가지였다. 안전 때문에라도 2인 1조 작업이 원칙이었지만 인력이 모자라 혼자 석탄이송 컨베이어 벨트를 확인하러 들어갔다. 

    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인건비 때문이다. 스크린도어나 발전소 설비 관리는 안전 및 관리와 관련된 업무다. 하지만 입찰 경쟁에 들어가면 여전히 최저가를 써낸 업체가 입찰을 따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구의역 사고 당시 하청업체였던 은성PSD는 사고 이후 한국철도공사의 스크린도어 입찰에 성공했다. 사고 6개월여 만에 서울지하철 스크린도어 관리 업무를 다시 맡게 된 것. 당시 한국철도공사 관계자는 “예산 낭비를 막고자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를 선정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하청업체들이 가격 경쟁에 돌입하면 결국 피해는 소속 근로자들이 입게 된다. 원청업체로부터 돈을 덜 받고도 이익을 내려면 인건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기 때문. 발전소 설비 관리 하청업체 관계자는 “최저가 입찰 자체가 문제다. 제조업은 자재비가 들어가 가격을 낮추는 데 한계가 있지만, 관리 업무는 인건비만 낮추면 된다. 인력을 줄이는 만큼 회사가 돈을 더 버는 구조이다 보니 2명이 필요한 업무에 1명만 넣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위험의 외주화’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또 나왔고, 해명과 수사도 2년 전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원청업체든, 하청업체든 일단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2016년 5월 말 구의역 사고 직후 원청업체인 서울메트로는 2인 1조로 작업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긴 피해자와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겼다. 결국 여론의 뭇매를 맞아 같은 해 6월 5일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 임원과 부사장 등 전 간부가 사표를 제출했다. 정수영 당시 서울메트로 사장 직무대행은 “재발 방지 대책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하면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비슷한 사고가 발생해 승객이 다치거나 사망했는데도 서울메트로를 떠난 임원은 없었다.

    또 시작된 책임 떠넘기기

    2월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청년비정규직 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영결식장에서 어머니 김미숙 씨가 유족 인사를 마치고 오열하고 있다. [뉴스1]

    2월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청년비정규직 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영결식장에서 어머니 김미숙 씨가 유족 인사를 마치고 오열하고 있다. [뉴스1]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서부발전은 사고 닷새 만인 지난해 12월 16일 ‘고인의 명복을 빌며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진정성 없는 서부발전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박했다. 같은 날 김용균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는 오전 논평을 통해 ‘대책위와 유가족은 철저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서부발전은 피해자 측과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고(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도 2월 29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용균이 잘못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다 최근에 협의하면서 사과를 받았다”고 말했다. 

    수사 상황도 비슷하다. 2016년 구의역 사고는 발생 6개월이 지난 11월에야 경찰 수사가 종결돼 검찰로 넘어갔다. 태안화력발전소 근로자 사망사고도 마찬가지. 사건을 수사 중인 충남태안경찰서는 1월 7일 발전소 안전 관리 및 발전 담당자를 참고인 조사한 후 별다른 중간 수사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두 사건의 유사성에 비춰보면 관리 및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비슷한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구의역 사고와 관련해 검찰은 원청업체 관리자 및 임원 8명, 하청업체 임원 2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최종심에서는 이들 모두 실형 선고를 피했다. 하청업체 은성PSD의 대표이사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200시간으로 가장 큰 처벌을 받았다. 원청업체인 서울메트로의 대표는 공소 기각, 설비 차장과 기술본부장에게는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나머지 6명의 원·하청업체의 임직원은 벌금형에 처해졌다. 이는 이들을 처벌할 법규가 없었기 때문. 산업안전보건법상 하청업체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사업주의 책임은 극히 제한돼 있었다. 원·하청업체 모두 최고형이 7년 이하 징역, 1억 원 이하 벌금형이었다.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고자 2016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그해 6월에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7개의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올랐다. 정의당과 바른미래당에서도 각각 ‘기업살인처벌법’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같은 관련 개정안을 쏟아냈다. 하지만 단 한 건도 상임위원회를 넘지 못했다. 국회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 강화는 기업에 큰 부담이 되거나 지나친 규제라는 반대 논리가 강해 통과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상임위원회도 넘지 못한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27일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유해·위험 작업의 하청은 금지된다. 처벌도 강화됐다. 형 확정 후 5년 내 같은 죄를 범하면 형의 50%가 가중된다. 사망사고 발생 시 원·하청업체에 부과하는 벌금도 1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대폭 늘었다. 하지만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는 법 개정 전에 일어났으므로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관계자는 “구의역 사고와 비교해 특별히 다른 점이 없다면 처벌 수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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