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두환 연희동 자택, 팔릴까

‘제1종 전용주거지역’이라 주거 外 활용 쉽지 않아…전 前 대통령 측 “부당한 공매”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8-12-31 11: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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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9월 1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연희동 자택을 추징금으로 자진납부하겠다고 밝힌 이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자택에 취재진이 몰렸다. [동아DB]

    2013년 9월 1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연희동 자택을 추징금으로 자진납부하겠다고 밝힌 이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자택에 취재진이 몰렸다. [동아DB]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95-4번지’가 한국 현대사에 등장한 것은 1979년부터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자신의 연희동 95-4번지 자택에서 군부 쿠데타를 모의했고, 그가 대통령에 오른 이듬해부터 신군부 정권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퇴임한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온 1988년 2월 25일, 주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하고 있다. [동아DB]

    퇴임한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온 1988년 2월 25일, 주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하고 있다. [동아DB]

    동아일보 사진DB에는 주민의 환호를 받으며 청와대에서 자택으로 돌아오는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1988년 2월), 강원 백담사로 떠나고자 자택을 나서는 부부(1988년 12월), 대통령 당선 인사를 하러 온 김영삼 전 대통령(1992년 12월), 추징금 환수를 위한 전 전 대통령의 세간 경매(2003년 10월) 등 ‘연희동 사진’이 빼곡하다. 5·18 진상 규명 등 각종 시위 또한 지난 30여 년 동안 연희동에서 자주 열렸다. 

    2018년 12월 24일 연희동에서 만난 한 주민은 “동네 할아버지들이 5공 시절 여름에 숨어서 화투를 치고 있으면 전 전 대통령이 와서 ‘그러지 말고 냉면이나 사드시라’며 돈을 주고 갔다고 얘기하곤 한다. 답답할 때마다 몰래 청와대를 빠져나와 연희동에 오곤 했다는 거다”라고 전했다. 

    연희동 95-4번지가 새로운 주인을 찾는다. ‘전두환 추징금’을 환수 중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범죄수익환수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의뢰해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을 공매에 내놨다. 95-4번지를 포함해 4개 필지, 3개 주택이 공매 대상. 총 감정가는 102억3200만 원이다(표 참조).

    “고령 환자에게 물리력 행사 못 해”

    연희동에는 1970년대부터 고급 주택가가 형성됐다. 인근에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 대학이 많아 교수와 의사, 기업 임원이 주로 거주했다. 전 전 대통령이 연희동에 자리 잡은 후로는 군 장성이 연희동으로 많이 이사 온 것으로 알려진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택도 전 전 대통령 자택에서 500m 거리에 있다. 



    연희동에서 30년 넘게 부동산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해온 이을우 중앙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연희동은 풍수가 좋아 대통령이 한 명 더 나온다는 말도 돈다”며 “2015년 가을 즈음 김무성 의원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측근들도 연희동으로 몰려와 열심히 집을 알아보고 다녔다”고 전했다. 그는 “궁동산을 끼고 있는 전 전 대통령 자택이 위치한 연희1동이 노 전 대통령 자택이 있는 연희2동보다 풍수가 더 좋다고 해 정치인들은 전 전 대통령 자택 주변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고급주택이 밀집한 연희동(왼쪽). 최근 2~3년간 연남동 상권이 연희동으로 확장되면서 연희맛로 사러가쇼핑센터 인근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올랐다. [박해윤 기자]

    고급주택이 밀집한 연희동(왼쪽). 최근 2~3년간 연남동 상권이 연희동으로 확장되면서 연희맛로 사러가쇼핑센터 인근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올랐다. [박해윤 기자]

    연희동 사람들은 총 감정가 102억 원에 대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말한다. 3.3㎡당 2060만 원인 셈이라 주변 시세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 인근 연남동 상권이 연희동으로 확장되면서 연희맛로 사러가쇼핑센터 인근은 최근 2~3년 새 3.3㎡당 4000만~5000만 원으로 크게 올랐지만, 전 전 대통령 자택은 상권에서 떨어져 있어 3.3㎡당 시세가 2000만 원 수준이라는 것이다. 

    다만 실제로 매매가 이뤄질지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문자영 한진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102억 원이 있으면 차라리 수익형 빌딩을 사지, 거주용 주택으로는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고급빌라를 신축해 되팔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을우 대표도 “요즘 연희동 주택으로 이사 오려는 사람은 대기업 회장님 아니면 성공한 젊은 사업가인데, 60~70평 규모의 대지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 자택은 4개 필지를 합해 총 1652㎡(약 500평) 규모다. 전 전 대통령 자택은 제1종 전용주거지역으로 지정돼 최대 2층까지 높이 8m 이하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만 신축할 수 있다(건폐율 50%, 용적률 100%). 상가와 주택이 결합된 근린생활시설을 지을 수도 있지만, 용도는 휴게음식점, 카페, 소매점으로 제한된다. 회사 사무실로 활용할 수는 없다. 

    법원경매업체 지지옥션의 장근석 팀장은 “공매는 경매와 달리 명도(明渡)가 까다롭다. 게다가 연희동 자택은 현재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 알려진 전 전 대통령이 거주 중이라 명도가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법원이 낙찰자의 신청이 있고 열흘 안에 인도명령 결정을 내려주는 경매와 달리, 공매는 낙찰자가 별도로 명도 소송을 내야 한다. 이는 민사소송이라 시간과 비용이 꽤 소요된다. 장 팀장은 “낙찰자가 명도 소송에서 승소하겠지만, 승소하더라도 해당 주택에 거주하는 고령의 환자를 명도 집행으로 내보내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공매 대상인 4개 필지 가운데 95-4번지는 이순자 여사가 1969년 사들여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1997년 대법원 확정 판결로 추징금 2205억 원이 선고된 이래, 이 지번의 토지와 주택은 추징 대상에서 제외돼왔다. 추징 당사자 본인 명의로 돼 있는 재산이나 타인에게 불법증여한 사실이 명확한 재산에 대해서만 추징금 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진납부 의사 철회?!

    2013년 9월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는 추징금 자진납부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아DB]

    2013년 9월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는 추징금 자진납부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아DB]

    그럼에도 이번 공매에 53억 원 상당의 95-4번지 토지와 주택이 공매 대상에 포함된 것은 2013년 9월 전 전 대통령 일가가 “추징금을 자진납부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때 일명 ‘전두환 추징법’(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이 제정되고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 씨를 구속하는 등 전방위로 압박했다. 그러자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모님이 현재 살고 있는 연희동 사저도 추징금으로 납부하겠다”며 “다만 부모님이 반평생 거주한 사저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검찰은 기자회견 엿새 후인 2013년 9월 16일 연희동 95-4번지 토지와 건물, 전 전 대통령 셋째 며느리가 소유한 별채(95-5번지)의 토지 및 건물을 압류했다. 

    이번 공매와 관련해 전 전 대통령 측은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2013년 검찰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못 이겨 자진납부하기로 한 것인데, 이후 검찰의 약속과 달리 차남 재용 씨가 처남 이창석 씨가 구속, 수감됐다”며 “이번 공매는 부당한 처사인 만큼 변호사 등과 상의해 대책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순자 여사는 2017년 펴낸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가족과 친척이 무더기로 구속될 것을 염려해 ‘항복 그 너머에 있는 생존과 미래’를 위해 검찰이 요구하는 바에 응하기로 하고 검찰과 언론이 지목한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기로 했지만, 2016년 7월 차남 재용과 남동생 이창석이 탈세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됐다고 썼다(700~701쪽). 이 여사는 2017년 3월 동아일보·채널A와 인터뷰에서도 “이 집은 제 이름으로 된 제 집이에요. 그런데 이걸 왜 압류를 하냐 이거죠”라며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대통령이 되기 10년 전 아내가 구매한 재산을 추징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형사법을 주로 다루는 한 변호사는 “전두환 추징법에 따라서는 환수할 수 없지만, 자진납부를 약속한 재산이라면 전 전 대통령 측이자진납부 의사를 철회해 법적 이의절차를 밟더라도 법원이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대신 사줄 사람 있을까

    연희동 자택이 공매에 나오자 “결국 전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이 구매해 전 전 대통령 내외가 계속 거주할 수 있게 돕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반면 “검찰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추징금 환수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에 괜한 오해를 우려해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이에 대해 민정기 전 비서관은 “2003년 별채 공매 때도 구매할 사람이 없어 처남 이창석 씨가 샀다”며 “(자택을 사줄 만큼) 돈 있는 측근은 없다”고 말했다. 

    연희동 자택 공매에 대한 입찰은 2019년 2월 11~13일 온비드에서 열린다. 유찰될 경우 1주일 단위로 최저가가 10%씩 낮아지는 방식으로 공매가 재진행된다. 장근석 팀장은 “경매는 유찰될 경우 한 달 후 재경매에서 최저가가 20~30%씩 하락하고 공매는 10%씩 떨어지지만, 일주일 단위로 재공매가 진행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공매 최저가 감소폭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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