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7

2015.10.05

한미동맹의 새 설계자 에이브러햄 덴마크

美 국방부 아시아 담당 부차관보의 데뷔 무대…한국을 가장 잘 아는, 가장 만만치 않은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5-10-02 16: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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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동맹의 새 설계자 에이브러햄 덴마크

    9월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제8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위)에서 미국 측 에이브러햄 덴마크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리처드 롤리스. 한미 두 나라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과 주한미군 기지 이전 등 다양한 이슈를 두고 삐걱거리던 2000년대 중반, 미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로 국내 언론에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내렸던 인물이다. 1970년대 미 CIA(중앙정보국) 소속으로 서울에서 일하는 동안 막대한 인맥을 구축했던 그는, 당대 최고 기밀이던 박정희 정부의 핵개발 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확인해 본국에 타전한 장본인으로 전해진다.

    부차관보로 일하는 동안에도 롤리스는 우리 측 협상자들을 당혹게 하는 능수능란한 협상전략으로 ‘악명’을 떨친 바 있다. 협상 테이블에서 양측 견해가 맞부딪칠 때 익명 인터뷰를 통해 한국 측을 압박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 여의도의 여야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거듭하며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기법도 반복적으로 활용하곤 했다. 이를테면 ‘한국을 잘 아는 인물이 미국 측 담당자인 상황’이 우리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장관이나 백악관 수석보좌관이 누구냐보다 한국을 담당하는 실무책임자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 계기였다.

    2007년 그가 건강상 이유로 공직을 떠난 후, 미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는 한국에서 사실상 잊힌 자리였다. 이명박 정부 이후 한미 양국의 군사 현안이 눈에 띄게 줄어든 탓도 있었지만, 후임자들이 대부분 한국보다 중국, 일본 관련 사안에 훨씬 더 많은 공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오히려 성 김 부차관보로 상징되는 국무부 라인이 한반도 현안과 관련해 훨씬 ‘존재감’이 컸던 시기였다.

    그리고 올해 7월, 미 국방부는 새로운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를 영입했다. 에이브러햄 덴마크 당시 아시아정책연구소(NBR) 연구원이 그 주인공. 9월 23일부터 이틀간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린 8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는 그의 데뷔 무대였다. 한국 국방부와 외교부,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의 정책 책임자들이 만난 이 자리는 향후 한미동맹의 미래 청사진을 설계하는 무대이자, 북한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한 공동대응책을 마련하는 자리였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세간의 관심은 높지 않았지만, 전문가 대다수가 이 회의를 눈여겨 지켜본 이유다.

    “예상보다 만만치 않았다. 사람 좋은 웃음 뒤에 딱 부러지는 고집이 숨어 있었다. 한 번도 언성을 높이거나 주장을 강요한 적은 없지만, 우리 측이 제시한 어젠다를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법도 없었다. 앞으로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회의에서 사실상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덴마크 부차관보에 대해 한국 측 당국자가 남긴 촌평이다. 다혈질에 협박성 발언도 마다하지 않던 롤리스 전 부차관보에 비하면 한결 ‘신사’지만, 강단이 느껴졌다는 것. 한국 국내 상황은 물론 동맹의 주요 이슈에 대해 누구보다 훤히 꿰뚫어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 ‘좋게 말하면 부드럽지만 나쁘게 말하면 능글능글한, 상대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고단수’라는 캐릭터야말로 우리로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2011년 문제의 보고서

    한미동맹의 새 설계자 에이브러햄 덴마크

    에이브러햄 덴마크 미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가 2011년 12월 이명박 정부의 ‘적극적 억제’ 전략을 비판한 보고서.

    미국 콜로라도 출신인 덴마크 부차관보는 노던콜로라도대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전공하고 덴버대에서 국제안보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외교학원과 베이징대에서 수학한 이후 워싱턴 주요 싱크탱크에서 동아시아 전문가로 경력을 쌓아왔다. 한국과 인연은 2000년대 말 신미국안보센터(CNAS)에서 일하던 시기에 집중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서울을 드나들며 한국 측 인사들과 접촉한 그에 대해 지인들은 대부분 원만한 성품과 둥글둥글한 성격을 첫 인상으로 꼽는다. 탁월한 인맥 관리 능력 덕에 학계에 몸담은 동안에도 프로젝트 지원금을 수월하게 따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는 것. 부인의 고향인 클리블랜드 팀에서 뛰었던 메이저리그 추신수 선수의 오랜 팬이다. “추가로 요구할 사항이 있느냐”는 한국 측 당국자의 물음에 “우리는 추가 클리블랜드에 남길 원한다”는 농담으로 받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정책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에이브러햄 덴마크라는 이름이 한국 측에 깊이 각인된 계기는 2010년 초 그가 국무부 용역을 받아 진행한 전작권 전환 관련 보고서였다. 2012년으로 예정돼 있던 전환 일정을 연기하는 방안과 관련해, 서울을 방문해 주요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을 만나 한국 내 견해를 검토하는 작업이었다. 전작권을 둘러싼 국내 갈등과 여론 동향을 꼼꼼히 짚어낸 것으로 알려진 이 보고서는 그해 여름 한미 양국이 전작권 전환을 2015년까지 미루기로 하는 배경으로 작동한다.

    더욱 민감한 부분은 2010년 연평도 포격 이후 워싱턴의 주된 관심사로 자리매김한 한국의 대북억제 문제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이른바 ‘적극적 억제(Proactive Deterrence)’ 전략을 공식화하고 킬체인(Kill Chain)과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 구축을 서두르기 시작한다. 북한의 도발이나 전면전 감행 징후가 임박한 것으로 판단되면 ‘선제적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 그 골자.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서 용어는 ‘능동적 억제’로 변경됐지만, 그 주요 개념이나 대응수단 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눈여겨볼 대목은 덴마크 부차관보가 2011년 12월 적극적 억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는 사실이다. ‘남북한의 제반 여건 차이로 인해 군사적 긴장의 상승 과정에서 남한이 상황의 주도권(dominance)을 행사할 가능성은 매우 낮고 반대로 북한에게는 많은 이점(advantages)이 있다’고 진단한 그는, 이러한 개념으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겠다는 한국 측의 시도가 ‘현실성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오히려 북측이 더욱 파괴적으로(devastating) 대응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언뜻 학문적 견해차 정도로 비칠지 모르는 당시의 보고서가 의미심장한 것은, 그의 견해가 단순한 개인의견이 아니라 백악관과 국방부, 싱크탱크를 가리지 않고 워싱턴 전역에 널리 퍼져 있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 이후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한 한국 측의 대응태세가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변했고, 그에 따라 위기가 심화할 가능성도 커졌다는 게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8월 초 북한의 지뢰도발 이후 20여 일간 진행된 남북 간 긴장 고조와 관련해 미국 측 당국자들이 “공식적으로는 (한국 측 대응을) 지지하지만, 속으로는 우려가 적잖았다”는 속내를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 상당수 전문가가 이 문제를 두고 최근 수년간 한미동맹의 가장 약한 고리로 지목하는 이유다. 워싱턴 기류에 정통한 한 전문 연구기관 관계자의 말이다.

    한미동맹의 새 설계자 에이브러햄 덴마크

    8월 28일 공식 사임한 시드니 사일러 전 미 국무부 6자회담 특사. 미 국무부는 지난해 9월 성 김 전 주한 미국대사를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에 임명하면서 별도 직위였던 대북정책 특별대표 직책을 겸직시키는 등 대북정책 담당 인력을 축소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한미 간 이견은 기지 이전이나 방위비 분담금 같은 기술적 이슈에서 주로 불거졌고, 그 내막이 낱낱이 공개되곤 했다. 서울에 보수 정부가 들어선 이래 그런 종류의 갈등은 크게 줄었지만, 실제로는 훨씬 본질적인 이슈가 바닥에 깔려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 측이 남측의 대북억제가 선을 넘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고,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이 비무장지대(DMZ)에서의 한국군의 대응태세에 대해 반복적으로 비판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교롭게도 덴마크 부차관보가 맡은 한미통합국방협의체는 바로 이 이슈를 논의하는 주무 테이블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 움직임을 사전에 탐지(detect)해 교란(disrupt)하고, 파괴(destroy)하거나 방어(defense)한다는 이른바 ‘4D 능력’을 작전계획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게 그 핵심. 그러나 이를 한미 양국이 함께 논의하는 이유에 대해 양측 속내는 사뭇 다르다. 전직 안보당국 고위관계자는 “우리 측이 북한의 위협에 두 나라가 공동으로 단호히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안점을 둔다면, 미국 측은 오히려 한국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막고 진행 과정을 ‘관리’하려는 차원에서 이 논의에 참여한 측면이 크다”고 평가한다.

    양측 견해가 가장 첨예하게 갈리는 것으로 전문가들이 지목하는 쟁점은 KAMD와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방어(MD) 문제다. 미국이 일본과 협력하에 구축하고 있는 MD 문제가 동북아 국제정치 이슈로 떠오르면서 한국은 KAMD라는 독자노선을 가기로 했지만, 동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정책 이후 일본과의 군사협력에 피치를 올리고 있는 워싱턴은 내심 ‘한국의 MD 참여’를 바라는 형국이다. 한미통합국방협의체의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는 장차 KAMD와 MD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는 부분. 미국 측이 둘을 사실상 하나인 듯 통합해 한미일 3국의 미사일방어 네트워크 구축을 원하는 반면, 한국 측은 그러한 모양새가 공식화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덴마크 부차관보의 위상이나 실력이 우리에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가 모습을 드러낸다.

    잠복해 있는, 그러나 본질적인

    “큰 틀에서 보자면 한미일 삼각동맹을 완성하려는 미국 측 속내와 독자적 대북억제 능력을 강화하려는 한국 측 행보는 양립할 수 없다. 백악관의 재균형 정책이 군사적 대응수단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이래 아시아 정책에서 국방부의 발언권이 국무부보다 더 강해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시드니 사일러 북핵 특사가 사임한 이후 그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 있을 정도로 한반도 문제에서 국무부 라인의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지 않은가. 이제 한반도 정책은 사실상 삼각 군사동맹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싱턴 눈으로 보자면 삼각동맹 공식화를 꺼리는 한국의 태도가 가장 큰 걸림돌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익명을 요청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의 말이다. 집단적 자위권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부상과 이를 활용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행보라는 틀 안에서, 한국의 옹색한 처지를 미묘하게 치고 들어와 주요 쟁점을 워싱턴의 뜻대로 끌고 나갈 장본인이 바로 덴마크 부차관보라는 의미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를 비롯해 한미통합국방협의체에서 논의될 이슈는 대부분 바로 이를 위한 군사적 하부구조와 소프트웨어를 완성해가는 작업에 가깝다.

    “그는 우리의 엔진룸이었다.” 덴마크 부차관보에 대한 인물평을 부탁하자 패트릭 크로닌 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이 남긴 이 말은, 누구보다 ‘상부의 뜻’을 명확히 관철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난 그의 스타일을 한마디로 보여준다. 덴마크 부차관보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캠프의 아시아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도 CNAS에서 인연을 맺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임기가 끝나도 자리를 유지할 공산이 크고, 백악관 핵심과의 긴밀한 조율을 통해 한국을 미·일동맹으로 ‘끌어다 붙이는’ 작업을 총괄하게 되리라는 뜻이다. 한국을 훤히 꿰뚫어보는 그의 섬세함과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가 우리에게 마냥 기쁜 일일 수 없는 진짜 이유다. 아직 그의 이름이 낯선가. 이제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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