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2

2015.08.24

“피어라, 참깨” 깨가 쏟아진다

벌들의 황홀경 참깨꽃

  • 김광화 농부작가 flowingsky@hanmail.net

    입력2015-08-24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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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어라, 참깨” 깨가 쏟아진다
    “열려라, 참깨!”

    ‘알리바바와 40명의 도둑’에 나오는 주문이다. 보물을 감추어둔 동굴의 문을 여는 마법의 열쇳말이다. 주문치고는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참깨를 알고 보면 신통방통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 말이다.

    참깨는 심고 나서 싹을 틔우기가 어렵다. 그 고비만 넘기면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면서 꽃을 피운다. 아래서부터 위로 자라며 차근차근 가지런히 피어난다. 맨 아래 쪽은 먼저 피었다 져, 씨앗이 다 영글었는데도 아직도 맨 위는 꽃을 피운다. 이 무렵이면 참깨는 성인 허리 이상 자란다.

    참깨꽃 즈려밟고

    잘 자란 참깨꽃 한 포기만 해도 멋진데, 수백 수천 포기가 같이 자란 모습은 장관이다. 참깨꽃이 한창일 때 밭에 들어서면 눈에 두드러진 두 가지 모습을 보게 된다. 하나는 꽃이 피었다 져서 바닥에 떨어진 모습이다. 바닥을 하얗게 수놓은 꽃들. 발을 옮겨 다니기가 미안할 정도다. 그만큼 참깨는 빠르게 성장하면서 꽃을 피우고, 꽃잎을 떨군다. 참깨꽃 한 송이는 금방 피었다 지지만 참깨 한 그루로 보자면 거의 두어 달가량 꽃이 피고 지고 한다.



    이따금 참깨꽃이 즐비하게 떨어진 밭을 지나다 보면 김소월 시 ‘진달래꽃’이 떠오른다. 진달래꽃 대신 참깨꽃으로 바꾸어 혼자 흥얼거려본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또 하나 장관은 벌들이 나는 모습과 소리다. 수백 마리 꿀벌이 참깨꽃마다 들락날락한다. 윙윙거리는 날갯짓 소리는 참깨를 홀리고 사람마저 홀리는 황홀경 그 자체다. 사실 참깨꽃은 제꽃가루받이를 기본으로 한다. 암술 하나에 수술 4개가 빙 돌아가며 견고하게 에워싼 채 피어난다. 딴꽃가루받이는 5% 남짓. 하지만 참깨꽃은 찾아오는 중매쟁이한테 지극정성을 다한다.

    중매쟁이 가운데서도 꿀벌한테 맞춤형이라 하겠다. 참깨꽃은 종 모양 통꽃으로 아래를 향해 달린다. 통꽃 속은 꿀벌 한 마리가 들어갈 정도 크기. 이 꽃에 꿀벌이 내려앉을 착륙장 역시 꿀벌 한 마리 정도가 앉으면 딱 좋을 크기로 입술처럼 튀어나와 있다.

    꿀벌이 착륙장 꽃잎에 앉고 나면 그 앞으로 안내 표시(honey guide)를 해두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하는 기하학적인 문양. 참깨꽃은 겉보기에 연분홍이나 우윳빛이다. 그런데 안내 표시는 벌이 좋아하는 노란색으로 화살표을 해두었으니 맞춤한 길 안내라 하겠다.

    “피어라, 참깨” 깨가 쏟아진다
    꿀벌의 참깨꽃 사랑

    화살표를 따라 곧장 가면 꿀샘이 나온다. 그런데 참깨 꽃술은 좀 독특하다. 암술과 수술이 꽃 가운데 있지 않고 꽃잎에 바싹 붙어 있다. 그것도 벌이 들어가는 방향에서 위쪽에. 벌이 꿀을 찾아 들어가면서 등짝에 꽃가루를 묻히게끔.

    잠깐 지켜 서서 보면 꿀벌마다 움직임이 제각각이다. 꽃가루가 왕성할 경우에는 착륙장에 앉자마자 꿀샘으로 가는 게 아니라 등을 돌려 꽃가루를 먼저 취한다. 아니면 꿀을 빨고 꽃을 빠져나오면서 꽃가루를 모으기도 한다. 또는 꿀만 빨고 뒷걸음치듯이 꽃을 그냥 빠져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움직임이든 꽃가루받이를 돕는다. 꽃 구조 자체가 꿀벌한테 딱 맞춤이니까.

    그래서인지 꿀벌이 참깨꽃을 사랑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하루로 보면 꽃은 아침 6시쯤 피기 시작해 9시쯤 활짝 핀다. 7시쯤이면 꽃잎이 막 벌어지는 참깨꽃 앞에서 꿀벌이 그 속으로 들어가려고 날갯짓을 하며 서성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꿀벌이 외친다. “피어라, 참깨!”

    참깨꽃 한 송이가 지고 나면 꼬투리 하나가 영그는데 이 꼬투리 속에는 100알 남짓 씨앗이 들어 있다. 그러니까 단 한 번의 사랑으로 참깨꽃은 많은 자식을 남기는 셈이다. 그야말로 황홀한 사랑이다. 우리 관용구에 ‘깨가 쏟아지다’는 말이 있다. 오붓하게 아기자기 잘 사는 걸 빗댄 말이다. 참깨가 익어 다발로 묶었다 털어보면 이 말을 실감하게 된다. 고소하면서도 하얀 깨가 꼬투리 속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오니 말이다.

    참깨는 잘 알다시피 대부분 식용기름을 얻기 위해 기르는 작물이다. 그 고소함이란! 깨가 쏟아지는 재미만큼이나 향과 맛이 좋다. 참기름을 먹다 보면 새삼 궁금함이 생긴다. 왜 깨는 자신을 이렇게 고소하게 만들어 사람을 유혹하는가. 이제 주문을 바꾸어본다. “피어라, 참깨!”

    “피어라, 참깨” 깨가 쏟아진다
    참깨 : 서아시아가 원산으로 참깻과 한해살이풀. 주로 기름을 얻기 위해 기르는 작물이다. 참깨는 씨앗이 싹 터, 초기에는 매우 느리게 자라다 뿌리가 탄력을 받고 나면 하루에 3~4cm씩 부쩍부쩍 자란다. 씨앗을 뿌린 뒤 40일쯤 지나면 꽃이 피기 시작한다. 줄기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피는 무한꽃차례. 계절로는 6월 말에서 8월에 피며, 색깔은 연분홍 또는 우윳빛으로 다양하게 핀다. 수술은 4개가 꽃통에 붙어 있다. 암술은 1개이고 암술머리가 2갈래로 갈라져 있다. 꽃받침은 5개이며 꽃잎은 원통 모양(筒狀)이고 5갈래로 갈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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