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1

2015.08.17

‘돈 선거’와 수상한 인사…바람 잘 날 없는 향군

향군정상화모임, 불법선거 혐의로 조남풍 신임 회장 고발…“선거 때 돈 뿌린 명단 있다”

  •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15-08-17 1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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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선거’와 수상한 인사…바람 잘 날 없는 향군
    북한군의 지뢰 도발로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다. 10월 북한이 평북 철산군 동창리에서 로켓을 발사할 가능성이 높아 한반도의 긴장 상태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조용하다. 예년 같으면 ‘보수의 대표’인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가 앞장서 북한을 성토했을 텐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다. 이희호 여사의 북한 방문에 대해서도 향군 주도의 비판 대회가 열렸을 법한데 소식이 없다. 왜 그럴까.

    첫째 이유는 내홍이고, 둘째는 회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둘은 다른 것 같지만 하나로 연결돼 있다. 4월 10일 치른 선거에서 향군은 조남풍 예비역 육군대장을 35대 회장으로 뽑았다. 그리고 바로 부정선거 시비에 휘말렸다. 향군은 많은 사업을 줄줄이 실패해 5500억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 이 때문에 35대 회장선거에서는 3사 출신인 신상태 예비역 대위가 폭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전역 후 사업가로 성공한 신씨가 회장으로 선출돼 향군의 고질병인 적자를 해소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향군 채무자가 조 회장 선거의 은인?

    이것이 예비역 장성들을 자극했다. 향군 회장은 장성 출신들이 독점해왔는데, 그 구도가 깨질까 염려해 뭉치기 시작한 것. 선봉에 섰던 이들은 신씨를 박원순 서울시장과 가까운 좌파 성향의 인물이라는 광고를 내고, 부자인 신씨가 ‘돈 선거’를 할 수 있다는 쪽으로 몰아세웠다. 그 결과 신씨는 차점으로 탈락하고 과거 두 번이나 향군 회장선거에 실패했던 조남풍 씨가 당선됐다. 이후 온갖 비리의혹이 쏟아졌다.

    과거 향군은 돈이 필요한 사업자가 있으면 그가 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보증을 서주고 수수료를 받는 사업을 했다. 채무자가 변제를 잘하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하면 소송을 해야 한다. 향군은 A씨를 위해 보증을 섰다 그가 채무변제를 하지 않는 바람에 대신 변제를 해야 했다. 그 대신 A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고 다시 A씨에게 790억 원을 변제하라는 소송을 냈다.



    그런 A씨가 35대 회장선거에 나선 조남풍 씨를 음지에서 지원했다. 그리고 조씨가 당선되자 A씨는 자신의 측근인 B씨를 조 회장에게 강력 추천해 향군 사업을 책임지는 경영본부장을 맡게 했다. B씨는 과거 A씨가 경영한 회사에서 부회장 등으로 일해 A씨와 인연이 돈독할 수밖에 없다. 그 무렵 A씨는 215억 원을 변제해 향군이 A씨로부터 받아야 할 돈은 575억 원으로 줄어 있었다.

    그런데 B씨는 향군과 A씨의 송사를 다투는 재판부에 향군이 A씨로부터 돌려받은 돈이 450억 원이라는 내용의 서류를 제출하려 했다. 한순간에 A씨는 235억 원을 탕감받는 셈. B씨는 A씨를 선처해달라는 탄원서까지 법원에 제출할 준비를 했다. 이를 안 향군 간부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깜짝 놀란 조 회장은 바로 B씨를 본부장직에서 해임했다. 조 회장 취임 2~3주 만에 향군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한 달여가 지나자 조 회장은 다시 B씨를 경영본부장으로 불러들였다. 그때는 B씨 문제를 제기했던 향군 간부들이 물러난 다음이었다. 향군은 회장이 바뀌면 약간의 시차를 두고 간부들도 교체한다. 전임 간부단은 후임 회장을 보필할 간부단에 업무를 인계하기 위해 좀 더 근무하는 것이다. 이들은 향군과 A씨 간의 송사를 잘 알고 있었기에 B씨의 행동에 바로 이의를 제기했던 것이다. 그러한 간부들이 물러나자 조 회장이 B씨를 다시 본부장으로 불러들인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즉각 향군 내에서는 조 회장이 선거 당시 도움을 받은 A씨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향군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콩가루 집안’꼴이 됐다. 향군은 빚이 많아, 서울 잠실에 잘 지어놓은 향군회관에 입주하지 못하고 있다. 임대료가 비싼 향군회관은 남에게 빌려주고, 자신들은 임대료가 싼 성동구 왕십리에 자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조 회장 취임 직후 갑자기 강남구 서초동으로 사무실을 옮기겠다고 했다.

    서초동은 잠실만큼이나 사무실 임대료가 비싼 곳이다. 서초동으로 옮길 바에는 차라리 잠실에 지어놓은 향군회관으로 가는 게 낫다. 그러자 향군 내부에서 ‘보은 이주’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선거 때 조 회장을 도와준 이가 있는데, 그가 서초동에 건물을 갖고 있다. 그 건물 안에 빈 곳이 많아 향군을 그곳으로 옮기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조 회장은 신세를 진 이가 너무 많았다.

    직제에도 없는 자리 만들어 보은인사

    ‘돈 선거’와 수상한 인사…바람 잘 날 없는 향군
    조 회장은 깜짝 놀랄 만한 인사도 했다. 향군 직제에 없는 자리를 만들어 외부인사 10여 명을 간부로 임명한 것. 향군 사무처 직원들의 반발에도 조 회장은 인사 담당자를 다그치면서까지 인사를 강행했다. 조 회장의 전횡에 불안해진 향군 사무처 직원들은 향군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조합(노조)을 만들었다. 이 노조에 제보가 들어왔다. 35대 향군 회장선거 직전 조 회장 캠프에서 돈을 뿌린 리스트였다. 조 회장이 돈 선거를 했다는 폭로였다.

    향군 노조는 더는 좌시할 수 없다고 보고 향군정상화모임을 만들어 조 회장 등을 불법선거와 배임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 소식을 들은 국가보훈처에서 감사를 나와 조 회장이 다시 본부장으로 임명한 B씨와 조 회장이 임의로 채용하게 한 간부 10여 명 등을 물러나게 했다. 국가보훈처는 “B씨가 A씨의 235억 원을 탕감해주려 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난처해진 조 회장은 노조와 만나 대화하는 자리에서 “지난 선거 때 여러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렸다”고 실토했다.

    노조는 회장선거 당시 조 회장 측이 뿌린 돈을 받았던 이들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검찰에만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선거 때 뿌려지는 돈은 대개 현금이다. 따라서 받은 이가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검찰은 돈이 뿌려진 증거를 찾기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해 법조인들은 향군 회장선거는 선거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에 돈을 뿌린 것이 발견돼도 그 당사자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다 해도 향군 직제에도 없는 자리를 신설해 사람을 채용한 것은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 향군 비서실은 조 회장을 찾는 기자의 취재전화를 연결해주지 않았다. 조 회장은 3수(修)를 하고 향군 회장이 됐기에 검찰 기소로 법원이 유죄를 확정할 때까지 자리를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런 상태이다 보니 향군은 보수를 대표해 시국사건에 대응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향군은 제대군인을 위한 복지사업도 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원활하지 않다.

    조남풍의 향군은 언제 바로설 수 있을까. 조 회장은 언제까지 버티기를 할 것인가. 그를 회장으로 선출한 향군은 언제 순풍을 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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