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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눕혀라!

셀러 없이 와인 보관하기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눕혀라!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눕혀라!
선물로 받았거나 대형마트에서 할인할 때 사둔 와인이 집집마다 몇 병쯤은 있다. 그런데 그 와인을 어떻게 보관하고 있는지 물으면 부엌 선반이나 장식장, 심지어 베란다에 세워뒀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세 군데 모두 와인 보관에는 최악의 장소다.

와인은 살아 있는 술이다. 발효가 끝나 병에 넣어도 와인 안에선 타닌과 색소를 비롯한 여러 화합물이 서로 작용하면서 숙성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제 막 병입이 된 어린 와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맛이 좋아져 장년기에 이르고 맛의 정점을 찍은 뒤에는 노년기에 접어들어 향과 맛이 점차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와인은 숙성을 방해하지 않는 장소에서 보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고 와인을 반드시 와인셀러에 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급 와인을 최적의 상태에서 수년간 숙성하려면 셀러가 필요하겠지만 저렴하게 구매한 와인을 몇 달 이내 마실 계획이라면 셀러 없이도 얼마든지 잘 보관할 수 있다. 와인이 가장 좋아하는 온도는 13~17도다. 단독주택이라면 지하실 같은 곳이 이 조건에 부합할 수 있지만 아파트에서는 마땅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북쪽을 향한 다용도실이 그나마 가장 서늘한 곳일 수 있다. 다용도실 온도가 적정 온도보다 조금 높거나 낮다고 해서 와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온도 기복이 심하면 와인이 빨리 시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을 많이 쓰는 부엌은 와인 보관에 좋은 곳이 아니다.

또 직사광선은 와인을 변질시키므로 어두운 곳에 보관해야 한다. 와인병 색깔이 대부분 진한 녹색이나 갈색인 것도 최대한 빛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조명이 비치는 장식장이나 햇빛이 잘 드는 베란다에 와인을 뒀다면 즉시 보관 장소를 바꾸는 것이 좋다.

서늘하면서 어두운 장소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냉장고다. 하지만 냉장고는 문을 자주 여닫기 때문에 와인이 흔들려 숙성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게다가 냉장고 안은 너무 건조하다. 건조한 곳에 와인을 오래 두면 코르크가 말라 병 입구와 코르크 사이 미세한 틈으로 공기가 들어가고 와인이 급격히 산화된다. 와인을 눕혀서 보관하는 이유도 코르크의 한쪽 면이 젖어 있어야만 코르크가 부풀어 올라 밀폐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 뚜껑이 스크루 캡이라면 세워서 보관해도 상관없다.



일반 냉장고보다 비교적 습도 유지가 잘 되는 김치냉장고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와인 보관 기능을 갖춘 김치냉장고도 있지만, 그 기능이 없다면 김치냉장고 온도를 김치 숙성 또는 채소/과일 보관 온도에 맞춘 뒤 와인을 신문지로 여러 번 싸서 눕혀두면 된다. 단, 김치나 반찬 냄새가 와인에 밸 수도 있으니 와인만 따로 보관하도록 한다.

와인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지만 장기 숙성을 버텨내고 환상적인 맛과 향을 보여주는 고급 와인은 전 세계 생산량의 5% 정도다. 우리가 부담 없이 마시는 와인은 대부분 5년 이내 짧은 수명을 갖고 있다. 따라서 굳이 셀러 보관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저렴하고 맛있는 와인을 잘 간수했다 즐겁게 마시는 것이 현명하게 와인을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주간동아 2015.07.27 998호 (p77~77)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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