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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교 수련회가 뭐기에…

시간당 8만 원 춤 교습받고 장기자랑대회 출전, 왕따·집단폭행 등 부작용도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초교 수련회가 뭐기에…

초교 수련회가 뭐기에…

수련회 장기자랑을 위해 외부 댄스 강사를 섭외해 그룹 과외를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동아일보]

최근 서울 소재 한 사립초는 특정 학년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배포했다. 내용은 7월 초 예정된 수련회 장기자랑대회에 관한 것이었다. 이 학교는 1학년 때부터 해마다 2박3일 일정으로 수련회를 간다.   

가정통신문에는 ‘장기자랑 발표는 같은 반 친구들과만 할 수 있으며 다른 반 친구들과는 하지 않도록 한다’ ‘장기자랑 내용이 선정적이거나 초등학생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은 피해야 한다’ ‘편 가르기, 험담하기와 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연습은 학교에서만 하고, 학교 밖에서 별도로 모여 연습하지 않는다’ ‘별도의 강습(외부강사)을 받지 않도록 하며, 강습을 받은 장기자랑은 발표할 수 없다’ 등 매우 구체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장기자랑도 수행평가처럼?

초교 수련회가 뭐기에…

인천국제공항 출국수속장이 여름방학을 맞아 해외로 연수를 떠나는 초등학생들로 북적거리고 있다.[동아일보]

도대체 ‘수련회 장기자랑대회’가 뭐기에 학교가 가정통신문까지 배포하며 규제 아닌 규제에 나선 것일까. 초교 학부모들 사이에서 ‘6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는 일명 ‘수련회 시즌’으로 불린다. 사립초뿐 아니라 국공립초에서도 고학년(4학년 이상)부터는 1박2일 혹은 2박3일 일정으로 수련회를 간다.

문제는 바로 수련회 중 열리는 장기자랑 대회. 앞서 언급한 사립초가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낸 이유도 아이들이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잡음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해당 학교의 학부모 A씨는 “처음 가정통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마나 경쟁이 심했으면 학교에서 이런 지침까지 내렸나 싶었다. 모든 학생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학부모와 아이 에게는 장기자랑대회가 문제긴 문제”라고 말했다. 



요즘 초등생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기자랑은 단연 ‘아이돌 댄스’. 적게는 4~5명, 많게는 7~8명이 한 조를 이뤄 ‘아이오아이(I.O.I)’ ‘여자친구’ ‘트와이스’ 등 인기 걸그룹의 댄스를 준비한다. 그리고 상당수 아이가 외부에서 방송댄스 강사를 섭외해 그룹 과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반포에 거주하는 학부모 B씨는 “요즘은 댄스 강사가 워낙 많아 강사를 섭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 아이는 친구 4명과 함께 이화여대 앞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일주일에 한 번, 한 달 정도 댄스 강습을 받았다. 그사이 엄마들은 카페에 모여 아이들 의상을 준비했다. 당시 아이들이 ‘티아라’의 ‘Lovey-Dovey’를 안무곡으로 골라 복고풍 의상을 준비하느라 동대문시장을 샅샅이 뒤졌다”고 말했다. 특히 고학년은 ‘수련회 룩’에 신경을 많이 써 엄마들은 아이들 의상과 소품을 챙기느라 바쁘다.

댄스 강습비는 강사 경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프로팀에서 활동하는 강사의 경우 시간당 8만~9만 원까지 받는다.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강습 의뢰서를 작성하면 해당 업체에 등록된 여러 명의 강사가 의뢰인에게 각자 견적서를 보내는 인터넷 사이트가 인기다.

이 사이트에서 활동 중인 한 댄스 강사는 “초등생 그룹 강습은 요즘이 대목이다. 장기자랑대회에서 여자아이는 거의 다 걸그룹 댄스를 추는데, 몇 주만 연습해도 실력이 금방 는다. 아이들 기본 실력에 따라 댄스 난이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잘 추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자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마포에 사는 학부모 C씨는 “고학년 정도 되면 춤과 노래에서 단연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다. 그 한두 명을 중심으로 친구들끼리 팀을 만들어 강습을 받는다. 아이들끼리 안무를 직접 짜 연습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시간을 아끼려고 강사를 섭외한다. 하필 수련회 준비 기간과 기말고사 기간이 겹쳐 공부에 방해된다며 장기자랑 팀에 끼지 않는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세계에도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무대에 서기 전 미리 레퍼토리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것. 대회 당일 ‘서프라이즈’를 위해서는 철저히 비밀리에 안무 연습을 해야 한다. 간혹 과열된 경쟁심 때문에 아이들 간 불화가 일기도 한다. 

B씨는 “처음엔 재미 삼아 시작한 아이들이 나중에는 욕심이 생겨 누가 무대 중앙에 서는지, 의상은 뭘 입을지 등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 싸움이 학부모 간 불화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700만 원대 호화 해외 수련회

초교 수련회가 뭐기에…

최근 한 사립초에서 있었던 ‘수련회 폭행 사건’으로 교내 ‘왕따’문제가 다시금 대두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뉴시스]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간혹 ‘왕따’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소수가 팀을 꾸리다 보니 멤버로 끼지 못한 아이는 상대적으로 소외감이 들 수밖에 없다. 서울 시내 한 사립초 교사는 “수련회 취지가 학교 밖에서 협동과 공동체 의식을 배우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잠재돼 있는 끼를 펼쳐보자는 것인데, 학부모의 너무 과한 열정이 종종 부작용을 낳는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장기자랑을 또 다른 ‘수행평가’로 생각하는 학부모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뭐든 1등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안겨준다는 것.

실제로 장기자랑을 위해 며칠간 악기 레슨을 따로 받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서울 세곡동에 사는 직장맘 D씨는 “댄스 그룹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은 주로 악기 연주나 마술쇼 등을 선보이는데, 주변에서 보면 이런 것도 다 개인 과외를 붙이더라. 이왕 하는 거 내 아이가 더 주목받기 바라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립초의 경우 5·6학년 가운데 지원자에 한해 해외로 수련회를 떠난다. 영국, 하와이, 싱가포르 등 안전하면서도 교육과 체험, 관광이 두루 가능한 곳을 주로 찾으며, 여름방학을 이용해 3주가량 머문다. 체류기간이 길다 보니 비용은 인당 최소 600만~700만 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 영어 공부 외 다양한 놀이 체험과 여행을 즐길 수 있어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 하지만 참여율이 그다지 높진 않다. 5·6학년 합쳐 40여 명, 한 반에서 5명 정도 참여하는데, 참여율이 가장 높은 반 담임이 인솔교사로 동행하거나 전체 교사가 순번을 정해 해마다 돌아가면서 맡는다. 

해외 수련회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비용이 부담스러워 가지 못하는 경우와 공부할 시간을 뺏기기 싫어 가지 않는 경우다. 사립초 학부모 E씨는 “아이를 사립초에 보내고 있긴 하지만 경제적으로 그렇게 여유롭진 못하다. 분기마다 들어가는 수업료에 학원비까지 더하면 허리가 휠 정도다. 가족여행도 아니고 아이 한 명에게 해외 수련회 비용으로 100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투자하는 건 무리”라고 털어놓았다.

반면 또 다른 학부모 F씨는 비용보다 학업 욕심에 해외 수련회를 포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F씨는 “5학년 여름방학은 공부에 매우 중요한 시기다. 학원 스케줄을 잘 짜야 시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진도를 뺄 수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 돌아가며 밤샘 보초  

수련회 도중 아이들은 크고 작은 사고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립초 수련회 폭행 사건’을 보더라도 수련회장이 언제 학교 폭력의 진원지로 바뀔지 모를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6월 중순 서울 한 사립초 수련회에서 학생 4명이 한 학생을 집단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을 이불로 덮은 뒤 야구방망이와 나무 막대기 등으로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로 피해 학생은 충격을 받아 근육세포가 파괴돼 녹아버리는 횡문근융해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더구나 학교가 가해자로 지목된 대기업 총수의 손자와 연예인의 아들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취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일로 현재 전국 초교는 수련회와 관련해 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심지어 서울 한 사립초는 수련회 방마다 교사가 1명씩 배치돼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교사들이 순번을 정해 밤새 숙소 복도를 지키는데, 그 역시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에 각 반 담임 외 교내 인력을 추가로 동원했다. 
 
한 국공립초 교사는 “10년 전만 해도 수련회나 수학여행 때는 여행사 혹은 레크리에이션 강사 등 브로커가 저녁에 숙소로 찾아와 교사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엔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중간 커미션 같은 건 생각도 못 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전 일정을 교사들이 준비하며, 수련회 가서도 밤새 잠 한숨 못 자면서 보초를 선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가 난다 싶으면 바로 달려가기 때문에 사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부모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올해 처음 아이를 수련회에 보낼 예정이라는 학부모 G씨는 “아직 아이가 어려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아이들끼리 놀다 보면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생기곤 한다. 교사들의 세심한 관심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7.07.19 1097호 (p40~42)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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