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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과 사우디 제2차 유가전쟁 돌입

원유 시장점유율 놓고 치킨게임…저유가 상당 기간 지속될 듯

미국과 사우디 제2차 유가전쟁 돌입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향후 6개월간 산유량을 동결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셰일오일(Shale Oil) 업체들 간 ‘제2차 석유전쟁’이 벌어지게 됐다. OPEC 12개 회원국은 6월 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례 석유장관회의를 열고 현재 하루 3000만 배럴인 생산량을 다음 회의 때까지 그대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차기 회의는 12월 4일 열릴 예정이다.

OPEC은 지난해 11월에도 산유량을 줄이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6개월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OPEC의 산유량 동결 결정을 이끌어냈다. 저유가에도 사우디가 감축 대신 동결이란 전략을 추진하는 이유는 원유시장에서 점유율을 유지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사우디는 6개월 전부터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시장점유율 싸움을 벌여왔다. 셰일오일은 혈암(頁巖)이라 부르는 단단한 암석층에 함유된 석유를 말한다. 채굴이 어려운 데다 비용도 만만치 않아 방치돼왔지만, 기술 개발로 최근 새로운 에너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셰일오일은 주로 북미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사우디는 7500억 달러(약 832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외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저유가가 10년간 계속되더라도 버틸 수 있다고 자신한다.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의 원유 생산 단가가 비싸기 때문에 국제유가가 계속 하락하면 적자생존에 따라 파산할 것이라는 계산. 알리 누아이미 석유광물자원부 장관은 “지난 수개월간의 유가 급락세가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투자를 멀어지게 했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고 주장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석유시장 분석 보고서에서 미국 업체들이 사우디와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 핵협상 타결되고 나면



하지만 사우디도 그동안 원유 시장점유율을 지키는 데 상당히 고전했다. 사우디의 지난해 원유 생산량은 전 세계의 10.2%로 전년보다 0.1%p 감소했고, 지난해 원유 수출 규모도 전년에 비해 5.7%p 줄었다. 최대 수입국인 중국은 러시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가 제시한 더 좋은 가격 조건에 따라 사우디로부터 원유 수입을 줄이고 있다.

이 때문에 사우디는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지난 9개월간 아시아 국가에 대한 판매가격을 6차례나 인하해야 했다. 사우디의 외환보유액은 반년간 500억 달러(약 55조 원)나 줄었고 올해 재정적자 규모도 1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월 즉위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이 공공 부문 임금 인상,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 등 지출을 크게 늘려 재정적자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사우디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3%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이란이 핵협상이 타결될 경우 산유량을 늘릴 계획이라고 공언하는 것도 사우디의 시장점유율 지키기 전략에 변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란이 그동안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제재로 원유를 수출하지 못한 까닭에 사우디 등 OPEC의 다른 회원국들은 상당한 이득을 봤다. 그러나 주요 6개국과 이란이 6월 30일까지 진행하는 최종 핵협상이 타결될 경우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는 해제된다. 원유 매장량 세계 4위인 이란은 2011년까지 하루 평균 215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해왔지만, 서방의 경제제재로 2012년 153만 배럴, 2013년 100만 배럴로 수출량이 급감한 상태다. 이란은 제재 조치가 해제되면 원유 수출량을 연말까지 하루 200만 배럴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이렇듯 불리한 상황에서 사우디는 앞으로 6개월간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과의 시장점유율 다툼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미국 업체들은 그동안 사우디의 공세에 그 나름 선방해왔다. 실제로 미국의 셰일원유 채굴 건수는 급감했지만 생산량은 줄어들지 않았다. 미국 원유생산량은 5월 중순 기준으로 하루 960만 배럴. 1970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이 가격 경쟁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채굴 기술이 좋아져 배럴당 생산원가를 40달러대로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우디도 이 점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애초 사우디는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의 평균 생산단가를 배럴당 65달러 선으로 봤고, 국제유가가 그 이하로 내려가면 미국 업체들은 원유를 생산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간주해왔다.

저무는 ‘석유의 시대’, 사활 건 생존경쟁

게다가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은 국제유가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순발력도 뛰어나다. 미국 업체들은 폐쇄된 유전을 15~30일 만에 재가동할 수 있지만, 사우디는 유전을 재가동하려면 60~90일이 걸린다. 미국 최대 셰일오일 업체 EOG 리소스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65달러로만 오르면 언제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저금리 때문에 미국 은행과 사모펀드, 기관투자자들이 짭짤한 투자 대상을 찾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셰일오일 업체들이 아직 매력적인 투자처라는 뜻이다.

결국 사우디가 산유량을 감산하지 않으면 저유가가 계속될 것을 빤히 알면서도 동결을 결정한 것은 미국 업체들과 ‘치킨게임’을 벌이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듯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상황이다 보니 국제유가는 상당 기간 하향세를 보일 것이 분명하다. IEA는 원유가 수급 균형을 보이려면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6월 배럴당 115달러까지 치솟았다 올해 초 40달러대까지 급락했다. 최근 반등세를 보인 국제유가는 60달러 선까지 회복했지만 이후 추가 반등은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추세로 볼 때 국제유가는 당분간 배럴당 53~63달러 수준에서 안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10월 무렵 국제유가가 배럴당 45달러 선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장기적으로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국제유가가 앞으로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지는 않을 것이란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원유시장 주도권 다툼이 한층 치열하게 전개되는 근본적인 배경이다.



주간동아 2015.06.15 992호 (p62~63)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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