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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섭의 작은 사치

냄비가 무거우면 삶은 가벼워진다

주방도구를 욕망하다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냄비가 무거우면 삶은 가벼워진다

냄비가 무거우면 삶은 가벼워진다
스타우브, 르쿠르제, 휘슬러, WMF, 테팔, 여기에 해피콜까지. 이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 남자라면 꽤나 매력적일 남자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요리를 좀 아는 남자일 테니까. 이들은 모두 냄비, 프라이팬 같은 주방도구를 만드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어머니 세대 때는 일본 주방도구 브랜드가 인기였다. 지금은 독일과 프랑스 브랜드가 단연 인기다. 요즘엔 주방도구에서도 브랜드를 따지고, 주방도구에도 명품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붙는다. 비싸다고 좋은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좋은 건 대개 비싸다. 국산 브랜드인 해피콜은 만족스러운 디자인과 기능에 합리적 가격까지 더해서 홈쇼핑 히트상품이 됐다. 하여간 이젠 냄비 하나에도 그런 가치가 녹아들어야 팔린다. 백화점 수입 주방도구들에는 정말 억 소리 나는 가격표가 붙어 있지만, 한 번 사면 꽤나 오래 쓴다는 점에서 여느 물건에 비해 비용 대비 효율이 높다.

“냄비가 무거우면 삶은 가벼워진다.” 고가의 무거운 주물냄비를 사달라며 그녀가 내게 던진 말이다. 한때는 르쿠르제를 탐하더니, 뒤이어 스타우브를 탐한다. 요즘 주물냄비 예찬론자가 많아지면서 묵직한 냄비가 주는 욕망도 생겨났다. 냄비 무게와 삶의 무게는 상관없다. 하지만 주방도구가 만족스러우면 요리하는 게 더 즐겁고, 식탁이 즐거우면 일상도 더 즐거우며, 이는 곧 삶의 무게도 가벼워진다는 의미이므로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주방도구 하나로 달라지는 삶

냄비가 무거우면 삶은 가벼워진다
좋은 냄비가 없어서 요리하기 싫었다는 그녀의 말에 속아 냄비를 사줬다. 물론 현실에서 그 냄비를 사용하는 건 내 몫이다. 이렇게 나날 매번 속는다. 아내는 요리를 잘 안 한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주방도구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좋은 신호다. 적어도 주방도구를 바꾸면 그녀가 만든 요리를 먹어볼 기회가 늘어날 테니까. 나는 함께 요리를 만들고, 함께 먹는 상황 자체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주방도구를 통한 일상의 작은 사치에도 관대한 편이다.



냄비, 프라이팬 같은 주방도구가 빛을 발할 시즌이 돌아왔다. 바로 명절이다. 명절은 장시간 아주 많은 요리를 하는 시기다. 당연히 어떤 주방도구를 쓰느냐에 따라 요리 시간을 단축할 수도, 모양이 예쁜 음식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니 낡은 주방도구를 버리고 새 주방도구를 사기에 좋은 시기도 명절 직전이다. 명절 주방에서 요리하는 사람은 장시간 요리 노동으로 힘든데, 주방도구까지 말썽이면 더더욱 스트레스다. 특히 낡은 프라이팬은 바닥에 음식이 잘 눌어붙어 요리를 망치기 일쑤다.

그리고 주방도구만 사주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주방을 남녀 공용 공간으로 만드는 결단도 해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명절 차례상이나 기일 제사상 음식을 남자가 준비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때는 양반가에서만 제사상을 차렸고, 여자가 아닌 남자들이 조상을 모시는 경건함을 담아 준비했다고 한다. 남성우월주의가 더 심했을 것 같은 조선시대에도 그랬던 문화가 여자들만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걸로 요상하게 바뀌었다.

하여간 유서 깊은 진짜 양반가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라면, 여자만 주방에 두지 말자. 요리 실력이 없으면 적어도 남자가 주방보조라도 해야 한다. 이제 남자에게 요리가 아주 중요해진 시대다. 사실 요즘 남자에겐 요리 잘하고 싶은 욕망이 그득하다. 요리를 잘하면 여자에게 인기 있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해줘 매력적인 게 아니라, 그런 일상의 태도가 그 사람의 품성을 드러낸다고 여기기 때문에 매력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요즘 TV에서는 배우 차승원의 재발견이 화제다. 케이블채널 tvN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보여준 요리 실력 덕분이다. 어떤 메뉴건 거침없다. 그건 요리를 제대로 배웠다는 얘기고, 평소에도 요리를 즐겨 한다는 얘기다. 배추김치와 깍두기를 담그고, 홍합밥에 콩자반을 만들며, 장어구이와 막걸리까지 만들더니, 심지어 고추잡채에 짬뽕까지 만든다. 뭐든 해달라면 다 만들어줄 기세다. 여느 베테랑 주부도 그렇게까지는 못 한다. 배우라는 직업이 따로 있는데도 요리사마냥 요리를 잘하는 모습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요리에 관심을 가진 남자들 덕에 주방도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요리에서 ‘주방도구발’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지만, 명필이 아니라면 붓에 따라 실력이 달라질 수도 있다. 요리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심지어 셰프들도 주방도구의 영향을 꽤 받는다고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냄비가 무거우면 삶은 가벼워진다
차승원은 볶음요리를 할 때 웍(우묵하게 크고 둥근 냄비)을 쓴다. 화력 좋은 장작불과 웍의 조화는 참 좋다. 소위 불맛을 내기에 제격이다. 집에서 요리하면 가장 아쉬운 게 화력이다. 가정집 가스레인지의 화력은 식당 가스레인지에 비해 떨어진다. 그래서 굽거나 튀기는 요리에서는 살짝 아쉽다. 매운탕이나 육개장 재료를 큰 솥 가득 넣고 장작불의 센 불로 확 끓여내면 재료 맛이 우러나와 일품의 국물 맛을 선사한다. 그렇게 태운 장작으로 만든 벌건 숯에 장어나 생선, 고기라도 살짝 굽는다면 그 또한 일품이다.

요즘 집은 솥을 걸어두고 쓸 공간이 없다. 아파트라면 더더욱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솥 대신 주물냄비가 인기를 끌고 있다. 주부 사이에서는 고가 주물냄비에 대한 탐닉이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대표적으로 사랑받는 주물냄비로 스타우브, 르쿠르제, 차세르 등이 있는데, 모두 프랑스에서 만들었다. 고가 프랑스산 주물냄비는 색깔이 화려하면서 예쁘다.

온 가족이 쓰는 주방 만들자

냄비가 무거우면 삶은 가벼워진다
물론 무거운 주물냄비만 좋다는 건 결코 아니다. 알루미늄으로 된 가벼운 냄비도 있다. 심지어 비행기 날개를 만드는 금속 소재로 냄비를 만드는 곳도 있다. 가벼우면서도 열에 강하고 견고하기 때문이다. 주물로 된 묵직한 냄비나 프라이팬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결정적으로 무겁다. 요리할 때도 그렇지만 설거지할 때도 부담일 수 있다. 알루미늄 냄비는 무쇠나 스테인리스로 된 냄비보다 물 끓는 속도가 훨씬 빨라 에너지와 시간이 절약된다. 모든 요리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때론 가볍고 빨리 반응하는 주방도구가 필요한 요리도 있다.

어느 집에나 한 개씩은 있을 법한 노란색 양은냄비도 가벼운 냄비의 대표주자다. 몇천 원이면 살 정도로 싼 데다, 얇고 가벼워 금방 끓고 금방 식는다. 라면에 제격이다. 실제로 라면을 끓여 먹을 땐 꼭 노란색 양은냄비를 찾는다. 사용 빈도로 보면 우리 집에서 가장 자주 쓰는 냄비가 바로 이 녀석일 거다. 가격 대비 효용은 최고다. 물론 코팅하며 생긴 노란색이 사라지면 바꿔주는 게 좋다. 비싼 걸 바꿀 때는 주저하게 되지만, 싼 걸 바꿀 때는 과감해도 좋다.

좋은 자동차를 타면 삶이 가벼워질까. 좋은 슈트를 입으면 삶이 가벼워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예스’라면, 좋은 냄비를 사는 데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집에서 주방의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다. 외식을 많이 하고, 아침도 거의 안 먹는 시대이다 보니 집에서 주방의 활용도 역시 낮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주방은 중요하다. 단지 밥을 해먹을 공간이라서가 아니라, 가족이 한데 모여 밥을 먹으며 어울릴 공간이라서다. 밥 먹는 입이라는 ‘식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젠 함께 요리하고 밥 먹으며 수다 떠는 식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일상에서 가장 결핍된 것 가운데 하나가 이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 이런 환경을 만드는 데 필요하다면 과감한 투자도 낭비가 아니다. 냄비가 무겁든 가볍든, 프라이팬이 무겁든 가볍든, 적어도 온 가족에게 주방을 허락하는 집을 만들자. 그게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드는 방법 아니겠는가.



주간동아 2015.02.16 976호 (p100~101)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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