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5

2015.02.09

‘공유경제’로 포장한 무허가 변종 숙박업

주민 민원 급증하나 서울시는 속수무책…법 지키는 게스트하우스만 피해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5-02-06 1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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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고급 주택에 사는 커리어우먼과 영국 시골마을 전원주택에 사는 칼럼니스트가 휴가 기간 집을 바꿔 생활하다 각각 이상형을 만난다는 이야기다. 생면부지인 이들이 집을 바꿔 휴가를 보낼 수 있었던 건 인터넷 숙박 공유 사이트 덕분이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2004년 ‘카우치서핑’, 2007년 ‘에어비앤비’ 등 전 세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숙박 공유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국내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이 급속히 늘면서 이 같은 숙박 공유 사이트가 성행하고 있다. 2013년 한국에 상륙한 대표적인 숙박 공유 사이트 에어비앤비는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가입자 400만 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해당 사이트에서 2월 기준으로 이용 가능한 숙소를 검색한 결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 788개, 중구 명동 일대에 205개, 강남구 내 507개 숙소가 검색됐을 정도. 그러나 이 같은 숙박 공유 형태는 관광진흥법상 호텔이나 모텔, 여관 같은 일반 숙박업과 취사가 가능한 콘도형 생활숙박업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변종이다.

    빈방이 가장 많이 검색된 서울메트로 2호선 홍대입구역을 찾았다. 취재 당일 현장에서 짐 가방을 끌고 다니는 중국인 관광객 무리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들은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고 특정 오피스텔을 가리키며 줄지어 발걸음을 옮기기도 하고, 오피스텔에서 나와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기도 했다.

    ‘공유경제’로 포장한 무허가 변종 숙박업

    서울메트로 2호선 홍대입구역 대로변에 있는 오피스텔들. 입주민들은 불법 숙박업을 하는 이들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입주민들 “괴롭지만 참는다”

    대로변에 즐비한 오피스텔 가운데 한 곳에 들어가 관리사무소 경비원에게 숙박하는 관광객이 있는지 묻자 “지난해부터 중국인 관광객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짐 가방을 끌고 대여섯 명씩 떼로 몰려와 빈방에서 며칠씩 묵는 일이 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주소와 자신들이 머물 방의 호수까지 정확히 적어서 찾아오는 걸 보면 이미 계산이 끝난 모양”이라며 “숙박비를 지불했기 때문인지 관광객은 대부분 매우 당당하다”고 덧붙였다.



    바로 옆 오피스텔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은 “일본인은 별로 없고 대부분 중국인인데 목소리가 너무 커서 로비에서부터 시끄럽다”며 “이미 집주인과 합의해 머무르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제재할 방도가 없다”고 했다. 또 입실 후 술을 마시거나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는 경우도 많아 입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면 인터폰으로 조용히 해달라고 얘기하는 정도라고. 그는 “입주민들이 소음과 관련한 민원을 많이 했는데 개선될 기미가 없으니 심하게 떠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참고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피스텔 뒤편의 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찾아 최근 원룸과 오피스텔 매매 동향을 물었더니 “최근 들어 대여섯 채씩 한꺼번에 구매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부동산중개사무소 사장은 “홍대 일대 주 수요층은 대학생과 미혼 직장인, 외국인 교환학생 등이었는데 몇 년 사이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했다. 알다시피 홍대는 임대주택에 비해 호텔이나 여관 등 숙박시설이 모자란다. 그래서 비어 있는 주택이나 원룸 등을 빌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단기 임대사업을 생각하는 이들의 문의가 늘었다”며 달라진 시장 상황을 설명했다.

    홍대 지역에서 2년째 거주하는 대학생 이모(23) 양은 “지방에서 서울로 온 학생들 사이에서 방학이면 숙박 공유 사이트나 학교 자유게시판을 통해 자신의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빌려준다는 공지를 올리고 숙박비를 버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원룸이나 오피스텔 계약 기간은 1~2년씩인데 방학 때 고향에 가거나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나면 월세를 내고도 며칠씩 방을 비울 수밖에 없다. 그 기간 월세를 벌려고 관광객들에게 단기로 방을 빌려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달 적잖은 돈을 공과금과 월세로 내야 하는데 하루 이틀 만에 숙박비로 10만~20만 원을 벌 수 있으니 대부분 힘든 아르바이트보다 낫다고 말한다”며 주변 반응을 전했다.

    명동 또한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호텔과 여관 등 숙박시설이 태부족인 지역. 명동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서울 중구 회현동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입주민들은 지난해 무허가 숙박업을 하던 이들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해당 주상복합아파트의 관리사무소에 관련 내용을 묻자 관계자는 “1년 전부터 입주민들이 ‘단지 내 관광객을 대상으로 숙박업을 하는 곳이 있는 것 같다’며 민원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관리사무소가 나서서 조사한 결과 지난 연말까지 13곳이 적발됐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소유주들에게 관련 사실을 알렸더니 깜짝 놀라면서 임대계약 철회 의사를 밝혔다. 지금은 거의 다 계약이 해지된 걸로 알고 있다. 계약을 한 임대인 가운데는 중국인도 있고, 부동산중개업소가 대리로 나서 관광객들에게 임대를 해주고 숙박비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유경제’로 포장한 무허가 변종 숙박업

    서울메트로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주택을 개조해 합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법 지키며 영업하는 사람만 손해”

    2012년 신설된 ‘외국인관광 도시민박법’에 따르면 도시 지역 230㎡ 이하 단독주택, 연립주택, 아파트, 다가구주택, 다세대주택 거주자가 한국 가정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숙식을 제공하는 경우 해당 시·군·구 또는 특별자치도지사로부터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으로 지정받을 수 있다. 조건은 △해당 주택에 직접 거주하고 외국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출 것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할 것 △각 층에 소화기, 각 실에 화재감지기를 설치할 것 외에 까다로운 규제는 없다. 이 법에 따라 관할 자치구에 신고한 뒤 허가만 받으면 어떤 집이든 ‘게스트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숙박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피스텔과 원룸은 애초 ‘해당 주택에 직접 거주할 것’이라는 조건을 통과할 수 없는 주거 형태다. 방을 빌려준 주인과 일면식도 없는 관광객이 원룸에서 함께 자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 이에 따르면 숙박 공유 사이트에 올라온 국내 모든 오피스텔과 원룸은 외국인관광 도시민박법상 불법이다. 합법적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다.

    홍대 인근 마포구 서교동에서 3년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김모(45) 씨는 “게스트하우스를 장려하고자 만든 외국인관광 도시민박법의 본래 취지가 변질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신고하고 허가받은 뒤 운영하면 될 텐데 ‘걸리면 벌금 낸다’는 식으로 배짱 영업을 하는 곳도 많다. 원룸을 단기간 빌려주는 대학생도 늘었고, 오피스텔 몇 개 층을 통째로 빌린 뒤 게스트하우스라며 영업하는 업자들도 최근 생겨났다”고 토로했다.

    게스트하우스는 대부분 관광객이 한방에 놓인 여러 개의 침대 가운데 하나를 배정받고 공동 화장실과 공동 주방을 써야 한다는 점에서 불편함이 따를 수밖에 없는 숙박 형태. 오피스텔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김 사장은 “관광객은 줄어드는데 경쟁업자만 많아진 형국”이라며 “인건비를 제때 맞춰 주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메트로 4호선 명동역 인근에서 13년 동안 여관을 운영한 최모(65) 씨는 “관광객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바로 숙박업소의 안전과 위생이다. 허가받지 않고 영업하는 숙박시설들은 이런 부분들을 일일이 검사받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관은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일반 숙박업소로 분류되는데 최씨는 “법령에 따라 위생 관련 심사와 소방안전에 관한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소화기 하나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국가에서 정한 규정을 지키는 데도 수고와 비용이 들어간다. 법을 지키지 않고 운영하는 이들은 사소한 비용을 아껴 돈을 벌겠지만 손님들 안전은 누가 책임지겠느냐”며 급증하는 무허가 숙박업소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현장 덮쳐 단속하기는 사실상 불가능

    서울시는 무허가 숙박업소 실태를 파악하고 있을까. 이현미 서울시 관광산업지원과 주무관은 “도시민박업으로 신고하지 않고 운영하는 개인은 모두 불법이며, 관할 자치구에서 도시민박업 허가와 관리를 담당해 무허가 숙박업소에 관한 신고가 접수되면 자치구 내 위생과에서 단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관광 도시민박법을 확대 개정해 허가 대상을 넓혀 무허가 영업을 합법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그럴 경우 주거 지역으로 숙박업이 들어가게 될 개연성이 높고, 주민들에게 불편이 생길 수 있어 관련법을 개정해 관대하게 적용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에어비앤비에 대해서는 “법인 자체가 해외에 있는 형태라 국내법 적용이 어렵다. 불법숙박업 관련 사이트로 보고 규제할 만한 방안을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논의 중”이라고 답했다.

    에어비앤비에서 무허가 숙박시설이 가장 많이 검색된 홍대 지역 관할 자치구인 마포구청에도 관련 내용을 문의했다. 임혜진 문화관광과 관광사업팀 주무관은 “최근 마포구 내 도시민박업 신청이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합법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신청이 들어오면 검사를 통해 허가 여부를 빠르게 결정하고 있다”고. 이렇게 해서 2월 현재 홍대 일대에 있는 합법적 도시민박업소, 즉 게스트하우스는 165곳으로 확대 지정됐다. 그러나 아직도 허가받지 않고 영업하는 곳이 많아 구민의 불편 신고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구민 불편 신고에 따라 무허가 숙박시설을 감독하는 허명원 마포구청 위생과 주무관은 “신고가 들어오면 담당 공무원들이 현장에 나가 실제로 숙박업이 이뤄지고 있는지 검사한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문이 닫혀 있어 적발이 어렵고, 또 신고도 많이 들어오는 통에 매번 현장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 주무관은 “무허가 숙박업자들을 처벌하려면 현장을 잡아야 하는데 위생과 공무원에게 체포권이 없어 경찰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관광객들로 인해 입주민이 불편을 겪을 경우 112에 신고해 경찰이 현장을 덮칠 수 있게 해야 한다. 무허가 숙박업을 하는 소유주 혹은 임대인을 경찰이 적발해 곧바로 검찰에 넘기면 처벌 가능하다”며 관할 구청과 경찰의 합동 단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유경제’로 포장한 무허가 변종 숙박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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