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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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만만 게임’에 나선 아베 신조

20년 침체기 ‘일본 띄우기’ 해외 순방 외교에 열 올려

  • 이노구치 다카시 일본 니가타대 학장·도쿄대 명예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입력2014-12-01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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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2월 26일 아베 신조는 6년간의 공백을 깨고 일본 총리직에 복귀했다. 그의 정상 복귀는 오랜 경기 불황이라는 최악의 순간에 이뤄졌다.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국제 금융위기 여파로 2008년 일본 기업들 실적이 바닥을 찍은 이래 회복은 더뎠고, 실업률 역시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국유화를 시도하자 중국이 그에 강력히 대응하고 나선 것 역시 그 즈음 일이었다.

    아베 총리의 복귀 타이밍은 절묘했다. 앞서 2가지 요인이 모두 ‘일본 재(再)부상’에 사활을 건 아베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 그는 ‘아베노믹스’를 선언하며 양적완화 통화정책이라는 칼을 뽑아 들었다.

    같은 해 1월 31일 중국 해군이 일본 해안경비정을 향해 사격 위협을 가했다. 노다 전 총리가 센카쿠열도의 섬 3개를 사들임으로써 시작된 국유화 조치가 아베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여주는 개막전장으로 돌변했다. 그렇게 이른바 ‘아베 지정학’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아베 지정학의 기원을 확인하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역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06년 총리로 선출되기 전 아베 총리는 ‘아름다운 나라로:일본에 대한 나의 비전’이라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일본을 향한 자신의 애국심과 함께 일본 국민의 자신감 상실, 잃어버린 자주권에 대해 비통한 심정을 밝힌다. 총리로서 자신이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바로 일본의 자신감과 활기를 되찾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빈틈없이 준비해 공세적 행동



    그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높은 부분은 바로 역사 문제다. 명확한 문장으로 기술돼 있지는 않지만, 아베 총리는 1945년 종전 직후 미군정 통치기간에 일본이 국가자주권을 내주고 불필요한 타협을 했다고 믿는 듯하다. 헌법으로 일본의 집단자위권 추구를 금지한 것이나, 주일미군에게 부여한 특별 권한 및 반영구적 지위, 국기와 국가,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져가는 상황 등이 그 결과물이라는 시각이다.

    이러한 인식은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 상공부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한 기시는 1930년대 전쟁 동원령으로 승진을 거듭해 일본 괴뢰정부였던 만주국의 주요 직위를 맡게 된다. 이후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 군사동원부 장관을 맡은 그는 44년부터 전쟁에 관해 도조와 다른 시각을 갖게 됐고, 결국 그의 총리직 사임을 이끌었다.

    1945년 이후 A급 전범으로 3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기시는 석방 이후 새롭게 창당한 자민당에서 꾸준히 성장해 58년 총리로 선출된다. 총리 재임 시절 그가 거둔 주요 성과는 미·일 안보조약 개정과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 정부와 산업계 관계 강화였다. 이러한 성과는 공교롭게도 당시 일본이라는 국가가 그리던 지정학적 판도와 직접적으로 관계 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이 의미 있는 외교관계를 맺고 있던 사실상 유일한 국가였고, 산업계는 해외로 뻗어나가기 위해 정부 도움을 절실히 원했다.

    ‘야심만만 게임’에 나선 아베 신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위) 와 아베 총리의 최측근 외교 책사로 평가받는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국장.

    외조부와 마찬가지로 아베 총리 역시 일본이 무역, 투자, 기술, 외교 등 각 분야별로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는 공간을 넓히고자 한다. 그가 가진 우려는 대략 이렇다. 미국은 점차 고립돼가고 중국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데 일본은 여전히 평화헌법에 묶여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깨려면 빈틈없이 준비해 한층 공세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각이 명확하게 드러난 공식 언급으로 2006년 1차 아베 내각의 아소 다로 외무 대신이 남긴 ‘자유와 번영의 호(弧):일본의 외교지평 확대’ 연설을 꼽을 수 있다. 기존 일본 문서와 달리 이 연설문에는 자유, 법치, 민주주의, 인권, 자유무역 등 ‘스케일이 큰’ 단어들이 빈번하게 사용됐다. 이후 아베 지정학을 이끈 두 명의 쟁쟁한 관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야치 쇼타로와 가네하라 노부카쓰다. 2006년 이후 두 사람은 요직을 두루 거치며 함께 일해왔고, 아베 총리는 이들에게 무한 신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인식에 깔린 첫 번째 문제는 안보다. 1979년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 분쟁 이래 동아시아에서는 이렇다 할 전쟁이 없는 장기간의 평화가 지속됐고, 일본은 그러한 평화 위에서 안정과 번영을 누려왔다. 고도 경제 성장이 중단된 후에도 일본 정부의 기본 정책은 국내와 해외의 안정을 수호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그 두 축은 미국과의 동맹과 첨단기술 우위였다. 동맹이 없다면 주변국으로부터 국가를 지킬 억제수단이 사라지고, 첨단기술이 없다면 미군과 협업할 수 없게 된다. 1991년 버블경제 붕괴 이래 20년 이상 방위비 지출이 정체돼 있는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이들 두 요인의 중요성은 한층 배가된다. 두 축이 모두 원활하게 유지돼야 일본의 국방정책도 작동하는 셈이다. 아베 정부가 미·일 동맹 강화와 함께 군수산업 발전에도 힘을 쏟는 배경이다.

    장애물이 산적한 게임

    아베는 역대 일본 총리 중 해외 순방 최다 기록 보유자다. 2014년 8월 현재까지 19개월간 49차례 국외 출장길에 나섰다. 특히 주력한 부분은 일본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영향력을 결집하는 것이었다. 유엔,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 일견 침체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국제기구 안에 자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그룹을 활성화하는 것이 아베 외교정책의 기본 전략이다. 아베 정부는 이를 통해 일본 외교정책이 미국과의 동맹에 묶여 다른 나라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이전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다. 일본의 소프트파워나 기술 우위, 경제력이 활용되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아베 지정학은 일본이 자신들에게 찾아온 난국에 대처하려고 내놓은 대응책이자 적응 방식이다. 20여 년간 침체기를 보낸 일본에 다시 상승세를 불어넣기 위한 전략이라고도 풀이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두 번째 임기 동안 자신의 지정학적 접근법을 흥행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고, 엄청난 규모의 정부 부채 등 낙관하기 어려운 장애물이 산적해 있다. 분명한 것은 게임이 시작됐다는 것, 그리고 일본이 아베라는 인물을 통해 그 야심만만한 과정에 돌입했다는 사실이다(영어 원문은www.globalasia.org/Issue/ArticleDetail/582/the-rise-of-abegeopolitics-japans-new-engagement-with-the-world.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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