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7

2014.05.12

참담한 교실에 변화와 희망이란

토니 케이 감독의 ‘디태치먼트’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4-05-12 0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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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담한 교실에 변화와 희망이란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말이 버릇이 됐다. 아빠라서, 엄마라서, 선생님이라서 부끄럽다. 어른이라서 미안하다.

    어른이 어른을 믿으라고 할 수 없는 곳, 아이들이 희망 없이 방치된 곳. 그래서 아이들의 미래와 부모들의 현재, 스승의 지금이, 모두의 삶과 시간이 무너진 곳. 영화 ‘디태치먼트’(감독 토니 케이) 속 학교는 미국 교육 현장의 살풍경을 적나라하게 재현한 곳이지만 우리에겐 마치 지금 우리 사회에 대한 비유처럼 느껴진다. 이곳에서 어른들은 무기력하고 아이들 삶은 날마다 무너진다.  

    미국의 한 고교. 교실 속 10대들은 아무도 교사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 욕설도 서슴지 않고, 나무라는 교사에게 “친구들 시켜 폭행하겠다”고 위협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자식을 혼냈다고 교무실에 난입해 교사 멱살을 쥐고 흔드는 학부모도 낯설지 않다.

    이곳에 기간제 교사 헨리(에이드리언 브로디 분)가 한 달 임기로 부임한다. 고전문학 담당인 그는 사명감이 강하고 뛰어난 교수법을 갖고 있지만, 과거 상처 때문에 정규 교사를 마다하고 기간제 교사로만 일한다. 첫 시간부터 아이들은 헨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위협한다.

    하지만 그는 서로에게 참담하기만 했던 교실을, 절망뿐이던 학교를 차츰 변화해나간다. 한편, 학교에서 돌아가는 길에 길거리 매춘부를 자처한 한 소녀를 거두기도 한다. 이미 포기해버린 삶을 몇 푼에 남자들의 욕망과 바꾸며 사는 에리카(새미 게일 분)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는 것. 에리카는 헨리를 유혹하려 하지만 헨리는 ‘어른’으로서 소녀의 상처를 보듬고, 그의 삶을 지켜준다.



    영화 속 학교는 교사가 날마다 패퇴하는 전쟁터라, 기간제 교사일 뿐인 헨리의 싸움은 승산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변화는 작아도 뚜렷하다. 헨리는 “선생님과 같이 강해지고 싶다”는 아이에게 “나는 강한 것이 아니라 다만 너희를 이해할 뿐”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그저 죽도록 일하다 삶을 끝내지 않게, 우리 마음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배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마음의 병을 앓는 제자들에게 “누구나 혼돈 속에서 살아간다. 삶이 정말 혼란스럽다는 걸 나도 안다. 정답은 모르지만 이걸 잘 견뎌낸다면 모두 괜찮아질 거다”라고 말한다. 헨리 또한 고통과 상처, 혼돈 속에 사는 나약한 인간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고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했으며 정신병을 앓는 할아버지를 부양하고 있다.

    냉혹함과 비정함, 따뜻함과 연민이 뒤섞인 이 빼어난 드라마는 미국 교육의 현재를 보여주는 작품이면서, 우리에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이야기해주는 치유의 영화가 된다. 그것은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며, ‘고맙다’고 안아주는 것이다. 헨리의 임기가 끝나기 전 한 학생은 끝내 자살하고, 헨리는 “우리는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또 다른 관계의 시작 위에 선다. 실패로부터 힘겹게 건져 올리려는 희망. 작지만 뚜렷한 변화. 그래서 이 영화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참담한 교실에 변화와 희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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