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1

2014.03.31

혀가 즐거운 맛 생각만 해도 군침이 절로

춘천닭갈비와 막국수

  • 박정배 푸드 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4-03-31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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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80년대 강원 춘천은 청춘의 해방구였다. 놀 것, 볼 것 별로 없던 시절 춘천 가는 기차는 작은 축제 공간이었다. 춘천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드라마 ‘겨울연가’ 인기에 힘입어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관광지가 된다.

    춘천의 명동이라 부르는 중앙로는 서울 명동 못지않게 잘 정비돼 있다. 중앙로 한켠에 춘천을 상징하는 음식 닭갈비를 파는 골목이 있다. 춘천에서 닭갈비와 막국수의 존재감은 어느 음식도 따라오지 못한다. 춘천 물가지수 반영에 직접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에 가격도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춘천닭갈비 하면 커다란 철판에 듬뿍 담긴 채소와 매콤한 양념, 푸짐한 닭고기가 떠오른다. 하지만 닭갈비란 이름이 뭔가 어색하다. 갈비는 대개 구워 먹기 마련이다. 춘천닭갈비도 이름처럼 처음에는 구워 먹는 음식이었다. 춘천닭갈비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 전후 어느 선술집에서다. 안주용 돼지고기 공급이 중단되자 주인이 닭고기를 넓게 떠 고추장, 간장, 마늘, 생강 등으로 양념해 하루 재운 후 석쇠 위에 올려 굽는 ‘닭불고기’를 개발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지름 50cm 정도 되는 철판 위에 양념한 닭고기와 양배추를 썰어 넣고 볶아 먹는 지금의 춘천닭갈비가 등장한다. 80년대 춘천이 본격적인 관광지가 되자 중앙로에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닭갈비 골목이 형성된다. 철판 닭갈비가 대세지만 최근 구워 먹는 닭갈비 집도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80년대 닭갈비가 먼저 춘천 향토음식으로 선정되고 막국수가 그 뒤를 잇는다.

    춘천은 강원 영서의 중심지다. 1970년대 초반까지 춘천 주변 깊은 산에는 불을 놓아 밭을 일궈 살아가는 화전민이 있었다. 그들에게 메밀은 생명이었다.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빠르게 잘 자란다. 메밀은 껍질을 벗기고 반죽하는 순간부터 맛이 변하는 예민한 식재료다. 밀가루 음식처럼 하루 전 반죽해 놓으면 면이 풀어져 먹을 수 없다. 화전민은 먹기 직전 빻은 메밀가루로 반죽해야 제맛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막국수의 ‘막’은 ‘마구’ 만든 음식이 아닌 ‘방금’ 만든 음식을 뜻한다.



    강원도 막국수 문화는 크게 영동과 영서로 나뉜다. 고성, 양양, 강릉 등 영동에서는 겉껍질이 들어간 검은색이 도는 메밀면을 선호한다. 하지만 춘천과 인제, 원통 등 영서 지역 메밀 명가는 겉껍질을 완전히 제거해 상아색이 감도는 속메밀만 사용한다.

    1970년대 소양강댐 공사가 시작되자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춘천으로 몰려든다. 수련모임 온 대학생과 주변의 군인까지 가세하면서 싸고 양 많고 소화 잘되는 춘천막국수는 ‘강원도의 힘’에서 대한민국 최고 먹거리로 화려하게 등장한다.

    지금도 막국수 가게는 꾸준히 늘고 있다. 춘천에만 막국수 전문점 200여 곳과 막국수를 취급하는 식당이 500여 곳 있다. 막국수 명가도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고 개성도 강하다. 춘천 시내 ‘부안막국수’ ‘별당막국수’ ‘실비막국수’ ‘남부막국수’ ‘명가막국수’가 유명하다. 소양강댐 가는 길에도 명가가 수두룩하다. 전국 3대 막국수 혹은 5대 막국수에 이름을 올리는 ‘샘밭막국수’와 ‘유포리막국수’가 주변에 있다. 두 막국숫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이 있다. 막국수에 관한 정보는 물론 직접 막국수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혀가 즐거운 맛 생각만 해도 군침이 절로

    춘천닭갈비(왼쪽)와 ‘샘밭막국수’집의 막국수. 메밀면은 먹기 직전 반죽해야 제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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