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3

2014.01.27

‘박지성’은 브라질에 안 간다

홍명보 감독 러브콜 사실상 거부, 대표팀 복귀는 없었던 일로 마무리될 듯

  • 윤태석 스포츠동아 스포츠2부 기자 sportic@donga.com

    입력2014-01-27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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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성’은 브라질에 안 간다

    축구대표팀 복귀를 사실상 거절한 박지성 선수.

    갑오년 새해벽두부터 한국 축구에 박지성(33· 에인트호벤)과 관련한 빅뉴스가 터졌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발언이 시작이었다. 홍 감독은 1월 8일 중앙언론사 간담회에서 “대표팀 감독이 된 이후 아직 박지성을 만나본 적이 없다.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대표팀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박지성 생각을 전해 들었다. 대표팀 감독 처지에서 박지성을 만나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라고 깜짝 선언한 것. 홍 감독은 3월 5일로 예정된 그리스와의 원정 평가전 이후 네덜란드로 넘어가 박지성을 만날 것을 시사했다.

    “돌아와라” vs “내버려둬라” 논란

    박지성은 2011년 초 카타르 아시안컵 이후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 이후 수차례 대표팀 복귀 여론이 불붙었지만 박지성은 직간접적으로 “대표팀 복귀는 없다”고 못 박았다. 지난해 6월 홍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직후에도 박지성은 인터뷰를 통해 “홍 감독님이 요구해도 마찬가지”라고 잘라 말했다.

    이전까지는 홍 감독도 박지성 생각을 충분히 존중하겠다는 처지였다. 하지만 브라질월드컵이 열리는 올해 갑자기 박지성을 직접 만나볼 필요가 있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내비쳤다.



    이 소식에 축구 팬 반응은 엄청났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찬성과 반대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박지성이 월드컵 무대에서 다시 한 번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박지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왜 본인 뜻을 존중해주지 않느냐’‘이제 와서 박지성에게 목을 맬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홍 감독은 한 발 더 나아갔다.

    대표팀은 1월 13일부터 2월 3일까지 브라질과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소화했다. 홍 감독은 1월 16일 브라질 현지에서 “박지성과 면담 시기가 2월경이 될 수도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모든 게 가능하다”고 밝혔다. 당초 예상했던 3월보다 빨리 만나 담판을 짓겠다는 생각도 가졌던 것이다.

    만약 박지성이 2월 만남에서 대표팀 복귀를 받아들인다면 3월 5일 그리스와의 평가전 출전도 가능해진다. 3월 평가전은 월드컵을 준비하는 대표팀으로서는 상당히 중요한 경기다. 5월 예정된 최종 엔트리(23명) 확정에 앞서 대표팀이 치르는 마지막 공식 A매치기 때문이다. 해외파가 총출동하는 그리스와의 평가전에 출전하는 선수는 브라질월드컵 본선행을 사실상 보장받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박지성이 복귀한다면 차라리 그리스와의 평가전 이전이 좋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만큼 홍 감독의 전술 운용 폭도 넓어지고 최종 엔트리 구상도 명확해진다. 박지성 역시 하루라도 빨리 동료들과 손발을 맞추는 게 조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홍 감독은 왜 박지성에게 SOS를 보냈을까. 베테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축구 전문가들은 월드컵 같은 큰 대회에는 반드시 베테랑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홍 감독도 “지금 대표팀 주축 선수들이 젊은 나이에 비해 경험은 뒤지지 않지만 꼭 경기력 측면이 아니라도 베테랑이 해줄 수 있는 구실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2002 한일월드컵에 출전해 4강 신화를 이끌었던 설기현(35·인천)은 12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월드컵은 여느 대회와 정말 다르다. 지금 대표팀엔 유럽에서 뛰는 기량 좋은 후배가 많지만 월드컵 때는 정말 떨릴 거다. 이럴 때 경기력은 최고가 아니어도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필요하다. 그러면 주눅 들었던 후배들 기가 살아난다. 2002년에는 (홍)명보 형, (황)선홍 형이 있었다. 사실 명보 형, 선홍 형 모두 당시 유럽 리그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선수들과 맞붙어 정말 여유 있게 하더라. 명보 형은 수비, 선홍 형은 공격에서 해줬다. 이런 게 바로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베테랑 힘이다.”

    설기현은 “박지성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지금 대표팀에 (박)지성이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지성이만큼 영향력을 가진 선수가 없다. 그런 영향력을 가진 선수가 중심이 돼주는 게 좋다. 지성이는 경기력 측면에서도 전혀 부족할 게 없다. 큰 대회에 나가면 감독이나 코치가 할 수 없는 선수만의 영역이 있다. 거기서 리더가 될 선수가 있어야 하고 지성이가 바로 그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지성은 최근 3차례 월드컵에 연속 출전했다.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출전한 월드컵마다 골을 터뜨렸다. 또한 세계 최고 명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년 동안 활약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 때는 주장으로 동료들을 이끌고 원정 16강을 달성하며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물론 벤치에서도 큰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다. 홍 감독은 박지성에게 ‘그라운드의 야전사령관’ 구실을 기대한다.

    자선축구 확정 이젠 놓아줘야

    ‘박지성’은 브라질에 안 간다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그러나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론은 또 한 번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박지성이 JS파운데이션이 주관하는 자선축구경기(아시안드림컵)를 5월 31일 또는 6월 1일에 열기로 확정한 것이 결정타였다.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JS파운데이션 이사는 “5월 31일이나 6월 1일 중 하루를 택해 자선경기를 한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가 될 것이다. 날짜가 바뀔 일은 없다”고 못 박았다.

    이는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가 사실상 불발됐음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아시안드림컵 일정이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소집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상 대표팀은 월드컵 개막 한 달 전 소집할 수 있다. 브라질월드컵은 현지시간 6월 13일 시작된다. 홍명보호는 5월 중순 소집될 예정이다. 만일 박지성이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면 대표팀 소집 중간 잠시 휴가를 얻어야 자선경기에 참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확률은 제로(0)에 가깝다. 박지성은 프로정신이 투철하다. 대표팀 훈련 도중 개인적인 일로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홍 감독도 마찬가지다. 홍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이 좋은 예다. 당시 기성용(선덜랜드)은 아시안게임 참가를 강력하게 원했지만 소속 팀 셀틱이 반대했다. 기성용은 셀틱을 어렵게 설득해 본선 조별 리그를 통과하면 토너먼트부터 보내주겠다는 절반 승낙을 받아냈다. 하지만 홍 감독은 선수 한 명의 편의를 봐줄 수 없다며 아예 기성용을 뽑지 않았다. 이런 홍 감독이 박지성만 예외로 인정할 리 없다. 결과적으로 올 초 한국 축구를 뜨겁게 달궜던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날 개연성이 높아졌다.

    이번 논란으로 홍 감독과 박지성, 대표팀 모두 조금씩 상처를 입었다. 결과적으로 홍 감독 발언은 경솔했다. 평소 진중하고 치밀한 홍 감독답지 않은 선택이었다. 대표팀은 베테랑 부재라는 숙제를 안은 채 브라질로 향하는 꼴이 됐다. 또한 홍 감독이 의도했든 안 했든 여론을 등에 업고 후배 박지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모양새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 부분은 홍 감독이 박지성을 직접 만나 상황을 설명한 뒤 매듭지을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제 더는 ‘ 박지성 복귀론’이 불거질 일은 없다. 한국 축구는 이제 박지성에게 목을 매서는 안 된다. 박지성은 수면 아래로 보내야 한다. 홍 감독은 1월 8일 박지성을 만나겠다고 말한 직후 “시기상 추릴 건 추리고 털 건 털고 가야 할 때”라고 했다. 그 말대로 이제는 박지성을 확실히 떨쳐내고 월드컵에만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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