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1

2013.11.04

주부에 의한 주부를 위한 시간

‘고부 예능’ 전성시대

  • 윤희성 대중문화평론가 hisoong@naver.com

    입력2013-11-04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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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부에 의한 주부를 위한 시간

    채널A ‘웰컴 투 시월드’ 한 장면.

    한국 사회에서 고부관계는 특수성을 가진다. 가족관계가 대부분 어떤 시련과 갈등을 겪더라도 결국 화목으로 귀결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과 달리 고부간 갈등은 인위적이고 임시적인 봉합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오랫동안 고부 사이는 조심스럽고 좀처럼 솔직히 드러내기가 어려운 관계였으나, 최근 예능프로그램은 오히려 이 고부간의 문제 상황에 집중한다.

    부모와 배우자, 자녀를 대동하고 방송에 출연하던 연예인들은 이제 자신의 시어머니, 며느리와 함께 관찰카메라 앞에 서거나 토크쇼에 출연한다. 종합편성채널 채널A의 ‘웰컴 투 시월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립구도를 토크쇼 형식으로 풀어내고, JTBC는 시부모와 며느리가 충돌하는 일상적 상황을 담은 ‘고부스캔들’이 인기를 끌자 아예 여성 연예인이 가상의 시댁을 체험하는 ‘대단한 시집’을 편성했다. MBN의 ‘속풀이쇼 동치미’를 비롯한 여성 대상 토크쇼의 단골 소재 역시 고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나아가 SBS ‘자기야’는 부부문제를 논의하던 애초 기획을 전면 개편해 프로그램 제목을 ‘자기야-백년손님’으로 바꾸고 사위와 장모 간 갈등에 집중하는 새로운 구성을 선보이기도 했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노출하는 동시에 리얼리티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방식의 ‘고부 예능’은 저비용, 고효율 프로그램에 해당한다. 그뿐 아니라 해결되지 않는 갈등 상황을 꾸준히 제공하고 가족이라는 화제의 특성상 쉽게 시청자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방식의 예능프로그램 제작은 증가 추세다.

    공감에 집중하려고 방송은 종종 갈등을 부추기거나 관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기도 한다. ‘고부스캔들’과 ‘웰컴 투 시월드’ 출연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고집스럽게 주장하거나 ‘대단한 시집’이 당연하다는 듯 며느리를 노동인력으로 보는 시선은 불편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시사교양이 아닌 예능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고부 예능’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실제 시청자층을 간과한 지적에 가깝다.

    ‘고부 예능’은 며느리이거나 시어머니이거나, 혹은 둘 다인 장년층 주부를 대상으로 하며, 이들에게 ‘웰컴 투 시월드’나 ‘자기야-백년손님’은 드물게 자기 이야기에 집중해주는 소통 창구다. 이들 프로그램은 과장된 드라마들이 미처 짚어내지 못하는 사소한 이야기는 물론, 고루하다며 현실에서 외면당한 사연들을 시시콜콜 다루며 주부들의 수다 내용을 그대로 재연한다. 심지어 ‘웰컴 투 시월드’에 출연한 연예인과 그 가족은 자기주장을 펼치다가도 사안에 따라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시어머니 혹은 며느리로서 같은 처지의 다른 출연자에게 조언을 건네며 대립구도에서 빠져나가기도 한다.



    그 풍경은 주부들의 대화방식과 닮아 있어 자연스러워 보인다. 굳이 토론의 결론을 도출하거나 대립의 승자를 가리지 않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시청자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나누는지 하는 점일 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고부 예능’은 주부의 방식으로 주부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며, 어쩌면 그것은 주부에 대한 가장 주부다운 위로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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