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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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 취급에 자살” 군은 배상하라

군대 내 인권침해

  •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3-08-12 1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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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 취급에 자살” 군은 배상하라
    군은 계급사회다. 계급장을 통해 장교와 부사관, 병으로 나누고, 같은 계급이라도 고참에 대한 존중과 대우를 요구한다. 상명하복을 강조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인권침해 문제가 따른다. 선진국은 군인 인권을 무시하는 위법한 명령을 용납하지 않으며, 군인을 ‘제복 입은 시민’이라 부른다.

    하지만 분단의 현실과 군부독재에 대한 기억으로, 우리에게 군대는 불합리한 상황과 비인격적 처우도 감내하며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의 효력이 정지된 채 오로지 인내력을 기르는 곳으로 오인돼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징병제와 병역의무가 강조되는 나라에서 오늘도 수십만 청년들이 수행하는 임무를 생각하면,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인권침해로 이어지는 일은 용납해선 안 될 문제다.

    최근 ‘부대 내에 구타와 가혹행위가 있으니 확인해달라’는 피해 대원 부모 등의 신고를 받고도 이를 묵인, 은폐한 전경대 중대장이 ‘강등’ 징계를 받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또 군 관용차를 사적으로 쓰면서 자신을 머슴처럼 부린 상관 때문에 자살한 운전병 유족에게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2001년 육군에 입대한 이모 씨는 부대 참모장의 운전병으로 배치받았다. 참모장은 사적으로 외부 약속장소에 가거나 주말에 집에 들를 때도 관용차를 이용했다. 이씨에게는 관사 청소나 빨래, 잔심부름은 물론이고 참모장의 강아지를 돌보라는 명령까지 떨어졌다. 이씨는 밤늦은 시간까지 개인적인 심부름에 시달렸지만, 참모장이 관용차를 사적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감히 상부에 알릴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씨는 상부로부터 보고 없이 잦은 외출을 한다는 질책까지 받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휴가 때 인수인계를 잘못했다며 간부들의 폭언과 심한 질타가 이어지자 2002년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당시 헌병대는 “이씨가 관사에서 게임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선임병의 진술을 토대로 이씨가 휴가 중 인터넷 게임을 하다 게임 아이템을 훔쳤고, 이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해 자살했다는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수사보고서에 적힌 부대원과 지인의 진술 내용은 모두 위조된 것이었다.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켜 망인의 명예를 난도질했던 것이다. 억울한 죽음을 납득할 수 없던 유족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한 끝에 7년 만에 이씨가 군대 내 부조리로 숨졌다는 결론을 얻어내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군은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멸시효인 5년이 지나 배상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재판부는 “후진적 형태의 군 사고를 막지 못하고 헌병대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유족들로 하여금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했으면서도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며 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이씨가 과중한 업무와 상관의 폭언으로 자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부대 간부들이 보호 의무를 소홀히 했고, 사망 경위에 대해 일부 진술에만 의존해 섣부른 수사결과를 내놓은 헌병대의 과실이 인정된다”며 국가는 유족에게 77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이 재판과 달리 군 의문사 사건 유가족들은 대부분 소멸시효의 문턱에 걸려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지 못한다. 과거 ‘불온서적’ 사건은 물론, 애인과의 성관계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육사생도를 퇴교시켰다 패소한 사례와 겹쳐 군인의 사적 영역까지 국가권력이 통제하려는 것은 헌법정신에 비춰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에선 세월이 흘렀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현재 벌어지는 인권침해에 대해선 눈을 감는 군대라면 ‘국민의 군대’로 불릴 자격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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