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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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소리 듣고 또 마라톤 마약만큼 심각한 운동중독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3-03-18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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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쳤다” 소리 듣고 또 마라톤 마약만큼 심각한 운동중독
    종합편성채널 채널A에 ‘이영돈PD 논리로 풀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우리 주변에 있는 여러 신비한 현상과 사건,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 궁금증을 가질 만한 것들을 논리로 푼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2012년 8월 13일 ‘운동중독’에 대한 내용을 방송했다. 운동중독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 우리나라 현황을 들어가면서 분석한 내용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운동중독에 빠졌다고 이야기되는 여러 사람을 소개했는데, 이 가운데 필자가 보기에도 이론 여지가 없는 운동중독 환자 한 명이 눈에 띄었다. 현재 옷수선집을 운영한다는 58세 남자로 종목은 마라톤이었다.

    그는 15년 전 친형의 이른 죽음에 충격을 받고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라톤을 시작했다. 얼마나 운동에 빠졌는지 견갑골(어깨뼈) 근처가 골절이 됐을 때도 깁스를 하고 뛸 정도였다. 그 결과 아마추어로서는 국내 최초로 마라톤 풀코스 200회 완주, 국내 최초로 보름간에 걸친 1500km 완주 등 대단한 성과를 거두며 국내 마라톤 동호인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그러는 사이 그의 모든 관심과 생활은 오로지 마라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자연 생계에 소홀해지자 아내의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데다, 3년 전부터 점점 절뚝거리던 다리는 진단 결과 심한 연골마비 증상을 보여 언젠가 인공관절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도 그는 후회는 없다며 여전히 마라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 예야말로 운동중독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경우라 하겠다. 운동중독에 빠지면 이처럼 운동을 일상의 어떤 일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삶의 모든 우선 가치를 운동에 두는 것이다. 그래서 마라톤에 중독된 사람은 폭우 속에서도 우의를 입고 달리게 마련이고, 근육운동에 빠진 사람은 웬만한 약속은 갖은 핑계를 대고 피하면서 체육관으로 달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생기는 것이다.



    심각한 부상에도 계속 운동

    부상이 심각한데도 온갖 방법을 동원해 운동을 계속하면서, 의사 경고나 주위의 어떤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만의 행복한 세상에 빠지는 경지에 이르면 그야말로 운동중독의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운동할 때 느끼는 고통보다 운동을 하지 못할 때 생기는 심적 괴로움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운동중독은 이렇게 그 실체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정신과학적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확실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운동중독이라고 하지만 병적인 ‘운동중독(Exercise Addiction)’과 ‘과도한 운동(Excessive Exercise)’사이 경계가 애매한 경우가 많은 데다, 운동중독자가 추구하는 목표가 근본적으로 건전하기 때문에 질병으로 간주하기에는 과한 측면이 있다는 점도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사실 운동은 많은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치료하는 효과적인 보조수단의 하나로 종종 활용된다. 즉, 많은 사람이 운동을 통해 비만이나 심혈관계 질병 치료에 도움을 받으며,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가진 경우에도 상당한 효과를 본다. 심지어 마약중독 같은 약물 의존성 중독에 빠진 사람에게는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대체 수단의 하나로 운동이 폭넓게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운동 자체의 이런 긍정적 효과와는 관계없이 운동중독이란 현상은 우리 실생활에서 상당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무엇보다 운동중독은 건강에 해롭다. 운동중독자의 공통된 심리는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즉 더 많은 거리를 뛸수록, 더 무거운 역기를 들수록, 그리고 더 많은 빈도로 체육관에 갈수록 건강에 좋고 자신의 행복감도 커진다는 것이다.

    사실 일반인의 경우 하루 30분 정도 적당히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건강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운동중독자는 하루 2시간 운동할 경우 30분 운동한 것보다 4배 더 건강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착각한다. 이토록 운동중독에 빠진 사람은 몸에 좋은 활동을 한다는 성취감에 사로잡혀 있지만, 실제로는 부상뿐 아니라 과도한 운동으로 인한 신체 기능저하로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운동중독의 두 번째 문제는 스스로 운동을 중단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리한 운동 탓에 심한 피로감을 느끼거나 근육통 등 각종 부상을 경험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잠시 운동을 중단하고 적절한 휴식을 취함으로써 신체 회복과 함께 재충전 기회를 갖는다. 그러나 운동중독자의 경우, 이렇게 휴식이 필요한 순간에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운동을 강행한다. 그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으리라 본다. 다만 본인만 사태의 심각성을 모를 뿐이다. 결국 운동중독은 마약중독과 같이 △의존성 △내성(똑같은 효과를 얻으려고 운동강도를 점점 높이는 것) △금단증상 3가지로 특징 지을 수 있는 병적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운동중독은 이론적으로는 모든 운동 종목에서 발생하지만, 특히 장거리달리기나 보디빌딩 같은 격렬한 운동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런 운동중독 기전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바로 엔도르핀이다. 즉, 격렬한 운동 시 우리 몸에서 모르핀보다 더 강한 엔도르핀이라는 강력한 마약 성분 물질이 배출되고, 이 때문에 심리적 쾌락 현상을 느끼게 된다는 이론이다. 한번 운동중독에 빠진 사람이 좀처럼 중독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엔도르핀 분비와 관련한 일종의 금단현상 때문이라는 것. 또 우리 몸의 쾌락감정과 관련한 물질인 도파민과의 연계를 들어 운동중독 기전을 설명하기도 한다.

    삶이 운동에 휘둘려선 안 돼

    이들 물질이 운동중독과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많은 연구에도 ‘1 더하기 1은 2고, 2 빼기 1은 1이다’라는 것처럼 그 기전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운동중독의 과학적 기전 규명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만큼 그 진단 기준에도 이론이 많고, 그런 만큼 다양한 기준이 소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TV 프로그램에서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질문 가운데 2가지 이상에서 ‘예’라고 대답하면 운동중독으로 볼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1. 오늘 해야 할 운동을 못 했다면 내일 2배로 할 것이다.

    2. 운동하기 전까지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다.

    3. 운동 중 약간의 고통은 참아야 하는 과정이다.

    4. 매일 계속 운동해야 한다.


    이 진단 기준 역시 잘못된 것은 아니나, 필자 개인 경험이나 기타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기준에 해당하면 운동중독에 빠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1. 운동을 거르면 죄책감(또는 불안감, 초조감, 우울감)을 느낀다.

    2. 운동을 위해 중요한 사회적 약속을 피한다.

    3. 부상에도 운동을 한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운동중독은 심각한 병적 상태다. 따라서 당사자는 물론, 가족 일상에도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운동을 해나가야지 운동을 중심으로 삶을 만들어 나가서는 안 된다. 운동이라는 꼬리가 삶이라는 머리를 흔드는 형국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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