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8

2012.12.24

동아마라톤 마스터스 도입 건강 달리기 기폭제 됐다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2-12-24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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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주간동아’ 867호)엔 1980년부터 시작된 나의 달리기 이력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바둑을 처음 배울 때 그 재미에 푹 빠져든 사람이면 다 알 텐데, 잠을 자려고 누우면 거짓말처럼 천장이 바둑판으로 보인다. 당시 나야말로 깨어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자면서도 매번 달리는 꿈을 꿀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달리기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미미했다. 내가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한 해 전인 1979년 6월 지미 카터(1924∼)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다. 당시 반바지 차림으로 미군들과 조깅하는 모습이 신문에 대서특필되면서 달리기에 대한 관심이 일기도 했으나 그때뿐이었다. 국민 대부분이 달리기를 좋아하는 서양 대통령의 독특한 취미로 치부하며, 조깅이라는 용어를 새롭게 익히는 것 말고는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로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도 1980년대 초반부터 북쪽 최전방에서부터 남쪽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온갖 곳을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녔지만, 나와 같이 뛰는 사람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주위에서도 나를 달리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독특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간혹 달리기가 건강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동참했던 이들도 있었지만 끈기 있게 이어가지는 못했다.

    클린턴과 YS 조깅 신선한 충격

    그러던 것이 198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축적한 경제성장의 힘을 88서울올림픽을 통해 대외에 널리 과시한 데 이어,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우리나라도 단숨에 국제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유래 없는 경제 파워를 바탕으로 국제적 안목까지 갖추면서 국민의 관심 역시 단순한 생존이나 생계 문제에서 벗어나 질적으로 더욱 가치 있는 삶, 더욱 건강한 삶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건강 달리기에 대한 인식도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1989년 여름에서 90년 여름까지 해외연수를 다녀온 뒤 예전처럼 달리기 위해 거리로 나선 나는 1년 사이 많은 점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특히 예전과 달리 사람들이 열정을 갖고 달리는 게 느껴졌다. 건강 달리기 인구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그런 차에 1993년 빌 클린턴(1946∼)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당시 청와대 녹지원에서 김영삼(1927∼) 대통령과 15분간 조깅한 모습이 공개돼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건강 달리기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던 때라 국민도 카터 미국 전 대통령 때와는 달리 그 모습을 신기하게만 보지는 않았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1994년 전통을 자랑하는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국내 처음으로 일반인 참가를 허용하는 마스터스 부문을 도입했다. 그때만 해도 풀코스는 일반인에게 무리라고 생각해 하프코스만 채택했다. 총 174명이 참가해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한 주최 측은 이에 고무돼 이듬해 마스터스 부문에 풀코스를 채택했다. 이후 국내 다른 유명 마라톤 대회들도 순차적으로 마스터스 부문을 도입했고, 지방자치단체들을 중심으로 마스터스 대회만을 목적으로 한 대회가 경쟁적으로 생겨나 달리기 붐을 가속화했다.

    그러면서 일반 마라톤보다 극한의 조건에서 경기를 진행하는 달리기에 대한 관심도 싹텄다. 울트라 마라톤, 사막 달리기, 극지 달리기 등이 그것으로, 선진국들의 전례를 볼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극한 달리기 종목을 처음 개척한 이는 은행지점장 출신인 박중헌 씨였다. 그는 2001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사하라사막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6박7일간 242km를 완주했다. 이 내용이 KBS 1TV ‘일요스페셜’을 통해 방송됐는데, 당시 나는 여건상 직접 참가할 수는 없었지만, 동지적 공감대를 갖고 매우 관심 있게 본 기억이 난다.

    방송 내용 가운데 사하라사막 텐트 안에서 그가 전화로 한국에 있는 아내와 통화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다소 퉁명한 어조로 응답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훈련을 위해 뛰어서 출퇴근을 하는가 하면 어두운 퇴근길에 대비해 헤드라이트가 달린 헬멧을 쓰고 달리고, 휴가를 내고 자비를 들여 멀리 사하라사막에까지 가 있는 남편이 곱게 보였을 리 없다. 그는 이후 훈련경험과 사하라사막마라톤 대회 참가기를 담아 ‘서른둘의 시작, 마흔다섯의 사하라’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자못 궁금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이 놀라웠지만 최근 국내 언론들은 대학생 3명이 사하라사막마라톤 대회를 포함해 칠레 아타카마사막마라톤, 중국 카슈가르의 고비사막마라톤에 이어 남극마라톤 대회에서도 완주에 성공해 세계 극한 마라톤 그랜드 슬램을 이뤘다고 보도했다(2012년 12월 5일자).

    사하라 등 극한 코스에 도전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치며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건강 달리기 개념이 정착했다. 이런 현상의 근원에는 1980∼90년대 당시 이른바 건강 선진국이라고 불리던 미국의 직간접적인 영향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건강 달리기 붐이 막 태동한 1980년대 미국에서는 이미 달리기가 건강 유지의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건강 달리기 붐의 본가 격인 미국에서의 달리기 열풍은 얼마나 오랜 역사를 자랑할까.

    미국 역시 1960년대만 해도 건강 달리기에 관한 한 우리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운동하는 것을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일로 취급했다. 히피 문화로 상징되던 당시 사회 분위기는 평화, 자유, 사랑 같은 개념을 숭상하면서 경쟁 개념을 싫어했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아등바등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것에 대한 본연적인 반감이 사회를 지배했던 것이다.

    그러다 1960년대 말 달리기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는 일이 발생한다. 여기에는 결정적인 공로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삼척동자도 아는 그 유명한 ‘유산소 운동’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쿠퍼라는 젊은 의사가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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