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7

2012.10.08

욕쟁이 할배 손녀딸이 나의 첫사랑

연극 ‘소라별 이야기’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2-10-08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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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쟁이 할배 손녀딸이 나의 첫사랑
    창작집단 거기가면의 ‘소라별 이야기’(공동 창작, 백남영 연출)는 동심을 일깨우는 연극이다. 이 작품은 소설 ‘소나기’와 ‘별’을 연상케 하는 수채화 같은 이야기를 마스크 연기로 위트 있게 전개한다. 할아버지가 돼버린 동수가 어린 시절 첫사랑을 추억하는 내용으로, 따뜻하고 순수한 감성을 전달한다.

    극은 동수가 공원에 앉아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6·25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시골 마을. 동수는 여느 때처럼 동네 아이들과 뛰노느라 정신없다. 그러다가 얼굴이 하얀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동수뿐 아니라 대장, 창석, 땜빵 모두 ‘목에 때가 없는’ 깔끔한 소녀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소녀 이름은 ‘소라’다. 무서운 욕쟁이 할아버지 손녀로, 얼마 전 서울에서 이사 왔다. 그런데 소라가 조금 이상하다. 아이들이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소라가 벙어리란 사실을 안 아이들은 소라를 따돌리려 한다. 그러자 동수가 나서서 소라를 보호한다. 소라에게 하모니카를 선물하고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연주하며 게임에 참여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 동수의 노력으로 소라와 아이들은 금세 친해지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편지가 날아온다. 소라 아버지가 형편이 조금 나아져 딸을 다시 데려가겠다는 내용의 편지다. 아이들과 헤어지기 싫었던 소라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할아버지와 아이들은 숨어 있는 소라를 찾느라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

    소라를 찾아낸 것은 다름 아닌 동수. 둘이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며 ‘소라별’이라는 별 이름을 지었던 장소에서 소라를 찾은 것이다. 그곳에서 둘은 아쉬운 이별을 한다. 소라는 하모니카를 동수에게 돌려준다. 그렇게 과거 회상이 끝나자 할아버지가 된 동수가 그리움에 젖은 채 하모니카를 연주한다.

    잔잔한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배우들의 마스크 연기다. 배우들은 입과 턱을 제외한 얼굴을 ‘반쪽짜리 마스크’로 가리고 나온다. 마스크는 관객의 상상력을 북돋으며 실제 얼굴보다 풍부한 느낌을 전달한다.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고정된 형태인데도 시시각각 근육이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조명 각도와 배우의 움직임, 입 모양 등에 따라 표정이 변화돼 보이기 때문이다.



    욕쟁이 할배 손녀딸이 나의 첫사랑
    소박하고 결이 고운 무대는 이야기와도 잘 어우러진다. 전체적으로 추억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듯한 토속적인 느낌을 준다. 배우들이 바위 모양의 상자를 옮기고 쌓으며 장면 전환을 하는 과정에서 관객의 상상력이 자극된다. 또한 배우들은 하모니카, 멜로디언, 리코더, 트라이앵글 등의 악기를 직접 연주하며 작품에 아날로그적인 색깔을 부여하기도 한다. 배우들의 진짜 얼굴은 커튼콜에서 확인할 있다. 동수 역에 장원, 소라 역에 박지수, 할아버지 역에 구기환, 대장 역에 이하나와 강한나, 창석 역에 이준호가 출연한다.

    ‘소라별 이야기’는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국내에는 흔치 않은 마스크 연극이다. 7월 독일 폴크방 피지컬 시어터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관객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서울 중앙대학교 공연예술원 스튜디오 시어터, 10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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