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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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자 입… 스리쿠션의 힘

전문성과 사회지능

  • 김한솔 HSG 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hskim@hsg.or.kr

    입력2012-07-23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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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삼자 입… 스리쿠션의 힘
    “보시다시피 1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별로 시장조사를 한 결과, B안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B안으로 결정하시죠?”

    신규 거래처 확보가 중요한 방 과장. 잠재 고객사의 마음을 얻으려고 많은 돈을 투자해 시장조사를 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자신 있게 제안을 했다. 하지만 고객사 담당자의 표정이 영 시원찮다.

    “왜 그러시죠? 이번엔 또 무슨 문제가…?”

    오늘이 벌써 네 번째 프레젠테이션이다. 아무리 확실한 근거를 들이밀어도 움직이지 않는 상대 때문에 더는 쥐어짜낼 힘도 없다.

    “아니, 문제라기보다 저희 내부적으론 A안이 더 좋다는 의견이 많아서요.”



    상대의 말에 방 과장은 힘이 쭉 빠진다. 답답한 방 과장에게 필요한 해법은 뭘까.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때 많은 사람이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내 주장이 얼마나 확실한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 내가 이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고 경험이 풍부한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자료를 모으고 논리적 스토리를 만든다. 자신이 이 분야에서 전문가임을 드러내려고 학위나 직위 같은 것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권위 있는 전문가 의견을 덧붙여 상대의 의심을 잠재우려 한다.

    이런 접근이 바로 ‘전문성’을 활용한 설득이다. 이 방법은 분명 효과가 있다. 다큐멘터리 속 한 장면을 보자. 장소는 안과 진료실. 의사가 환자에게 눈 치료와는 상관없는 이상한 행동을 시킨다. 뜀뛰기를 해보라거나 손가락으로 배꼽 주변을 만져보라는 식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놀랍게도 모든 사람이 의사가 시킨 대로 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의사선생님이 하라니까요.” 바로 이것이 전문성이 가진 힘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이 늘 통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도 납득하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이유가 뭘까. 내가 제시하는 근거, 나의 전문성 자체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겐 정확한 데이터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뭔가 왜곡되고 조작된 게 아닐까 의심한다. 그래서 상대를 설득하려면 전문성이라는 바퀴와 함께 또 다른 한 축이 필요하다. 바로 ‘신뢰성’이라는 축이다.

    짧은 시간 안에 누군가의 신뢰를 얻는다는 건 상당히 힘들다. 그래서 설득력 있는 리더는 ‘관계’의 힘을 이용한다. 이런 능력을 사회지능이라고 부른다. 사회지능이 높은 리더는 제삼자를 활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들은 그래서 사전에 비공식적 인맥을 탄탄하게 구축해놓는다. 그리고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상대를 ‘대신’ 움직이게 만든다.

    그렇다면 방 과장이 처한 것과 같은 프레젠테이션 상황에서는 어떻게 나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을까. 내 입으로 우리 제품, 나의 제안이 아무리 좋다고 강조해도 상대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나의 또 다른 고객’을 활용하는 것이다. 나의 설명은 최소화하고, 내가 아닌 기존 고객이 ‘대신’ 말하도록 하는 것. 그러면 상대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순순히 받아들인다.

    나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마라. 당신이 바꾸고 싶어 하는 상대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을지 모른다. 비록 그가 아무런 전문성이 없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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