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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 죽일 놈의 ‘대외활동’

기업, 정부기관 앞다퉈 대학생 시간·노동력 뺏는 수단으로 변질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김민지 인턴기자 kimminzi4@naver.com

이 죽일 놈의 ‘대외활동’

이 죽일 놈의 ‘대외활동’
“죽어라 온라인 홍보만 했어요. 진정한 서포터스 경험을 꼭 하고 싶었는데….”

㈜코엑스 온라인사업팀의 ‘사이버코엑스(cybercoex) 대학생 서포터스’로 활동한 S대 학생 현모(23·여) 씨. 3월부터 석 달간 활동해온 그는 요즘 허탈과 좌절을 느낀다.

많은 기업과 정부기관은 ‘서포터스’ ‘홍보대사’ ‘기자단’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생 대외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대학생들로 하여금 학교에서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관련 분야 경험을 쌓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이는 사이버코엑스 대학생 서포터스 모집 공고에서도 잘 드러난다. ‘온라인 마케팅 리더로서의 자질을 키우라’고 강조한 이 공고의 활동 내용은 ‘사이버코엑스 콘텐츠 생성 및 전시 관련 정보, 소식, 이벤트 등의 온라인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홍보, 온라인 마케팅 스쿨, 특별 기자단 활동, 각종 프로모션 참가’로 화려하다. 특히 ‘온라인 마케팅 스쿨’에 대해선 ‘SNS 활용법부터 온라인 마케팅 툴까지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되는 다양한 온라인 기법 및 트렌드 정보를 배우고 나누는, 사이버코엑스 서포터스만을 위한 특별 세미나’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온라인 마케팅 스쿨이나 특별 기자단 활동은 선발된 대학생 중에서도 극소수만 경험했다. 한마디로 모집 공고 내용에 ‘거품’이 가득했던 것.

관련 업무 경험 아닌 ‘착취’



현씨는 “학교 강의에서 벗어나 직접 뭔가를 기획하거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진짜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150명 넘는 대학생을 모아 몇 그룹으로 나눈 뒤 결국 SNS 홍보와 블로그 홍보글 게시 일을 시켰다”고 밝혔다. 이는 현씨만의 반응이 아니다. 또 다른 S대 학생 정모(26) 씨도 같은 서포터스 활동을 두고 “말이 모집이지 지원하는 사람을 거의 다 뽑아줬다. 실제론 SNS 홍보인력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엑스 온라인사업팀 관계자는 “코엑스에서 열리는 전시회 관람 기회를 주는 등 오프라인 활동도 병행한다”고 답했다.

공모전이나 서포터스 참여 등 대외활동은 대학생 사이에서 학점, 영어성적과 함께 이른바 3대 스펙(spec)으로 통한다. 하지만 최근 대외활동이 학생들의 시간과 노동력을 가로채는 수단쯤으로 변질되면서 가뜩이나 취업대란에 직면한 이들을 울리고 있다.

대학생은 대부분 이력서에 스펙 한 줄이라도 더 써넣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린다. 이력서의 빈칸을 보면 왠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 같고, 더욱이 기업의 대학생 대외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이 원하는 인재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해 서류전형에서부터 탈락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것이다.

이런 심리에 편승해 일부 기업은 대학생의 시간과 노동력에 대한 대가로 수료증을 내세우며 더 많은 인원을 끌어들인다. 일부 대외활동에 대해선 아예 강의시간과 요일까지 조정해가며 참여할 것을 강권하고, 주말과 공휴일에 행할 임무를 제시하기도 한다.

물론 대학생으로 하여금 학교 밖 활동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 사회활동을 미리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본래 취지를 잘 살리는 기업도 없지 않다. 이런 기업은 자사 사업과 관련한 프로젝트에 일정 부분 대학생을 참여시켜 인기를 끈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들이 대학생을 아르바이트생처럼 자사 홍보활동에 동원하는 게 현실이다.

금융권에 관심이 많아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하이투자증권 ‘하이서포터스’로 활동한 I대 학생 최모(26) 씨의 말이다.

“금융산업에 대한 이해를 넓힐 좋은 기회라는 회사 측 얘기를 듣고 기대가 컸다. 특히 현대중공업그룹 계열 증권사여서 신뢰했다. 하지만 실상 나를 비롯한 서포터스들은 홍보 ‘알바생’(아르바이트생)에 불과했다. 누가 아파트 단지를 돌며 전단지를 돌릴 거라 상상이나 했겠나. 대학생을 몇 개 팀으로 나눈 뒤 각 지점에 배치해 지점 홍보 전단지를 붙이게 했다. 부산권 지점에 배치된 학생은 시장이나 야구장에서 전단지와 음료수를 돌려야 했다.

워낙 본사 관리가 소홀해 금융권 선배를 멘토로 만날 기회도 없었다. 그냥 학생들끼리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블로그에 금융상품 홍보글을 올렸다. 심지어 ‘증권업 체험’ 명목으로 1만 원씩 입금해 CMA 통장도 개설하게 했다. 그땐 스펙이 필요해 얼른 깨닫지 못했는데 돌이켜보니 시간이 아깝다. 그럴 바엔 차라리 알바생을 고용하지 왜 대학생을 모집하나. 활동비로 한 달에 10만 원씩 받았는데, 아르바이트 최저 시급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다.”

대외홍보로 뽑아 전단지 돌리게 해

이 죽일 놈의 ‘대외활동’

하이투자증권에서 CMA 통장을 개설하는 대학생 서포터스.

실제 모집 공고를 보면 ‘하이투자증권 브랜드 및 서비스 가치 대외홍보’라는 표현으로 업무를 뭉뚱그려 소개해 대학생들이 수행할 구체적 활동이 뭔지 모호하다. ‘브랜드 및 서비스 가치 대외홍보’가 전단지 배포일 것이라고 상상할 대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하이투자증권 관계자는 “본사에선 서포터스를 집중 관리하기 어려워 대학생들을 지점별로 배치했다. 전단지 배포 등 오프라인 활동은 지점에서 부여한 임무지 본사에서 강제한 게 아니다. CMA 통장 개설도 활동비를 지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답했다.

모집 공고에 대학생의 눈길을 끌 만한 활동 내용과 혜택을 적고, 정작 이들의 홍보활동을 통해 실속을 챙기는 건 정부기관도 마찬가지다.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지난해 7월 ‘QWL밸리 대학생 기자단’을 모집해 6개월간 운영했다. 하지만 선발 과정에서 공지했던 ‘우수활동자에 대한 지식경제부 장관상 수여’는 이행되지 않았다. 당시 우수활동자로 선정된 I대 학생 김모(28) 씨는 “모집 공고나 보도자료뿐 아니라 발대식 때도 우수활동자에게 지식경제부 장관상을 줄 예정이라고 공언했다. 그쪽 입맛에 맞는 홍보성 기사를 블로그에 올리는 게 주된 일이었지만, 장관상을 받으려고 열심히 활동했다. 결국 우수활동자로 상을 받긴 했는데, 장관상이 아니라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상이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도 5월 초에 6개월간 활동할 ‘내일 YES! 자원봉사단’ 30명을 모집했다. 모집 공고엔 ‘청년과 중·장년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구직자를 발굴하고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돼 있다. 선발된 E대 학생 김모(24·여) 씨는 “발대식에서야 주업무가 온라인 홍보인 걸 알려줬다. 이웃이 취업할 수 있도록 직접 돕는 일이라 생각했고 공고에도 상담봉사를 할 수 있다고 돼 있었지만, 그런 기회는 없었다. 발대식에서 들은 말은 ‘여러분이 6개월간 할 일은 온라인 홍보다’였다. 심지어 ‘네이버에서 계속 검색해 연관검색어가 뜨게 하고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를 만들어 정책을 홍보하라’는 말도 했다. 기대한 자원봉사는 온데간데없었다”고 말했다.

3월 26일부터 이틀간 열린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대학생의 귀띔.

“주최 측은 ‘핵안보정상회의 SNS 홍보대사’라는 명칭으로 대학생 200여 명을 모집해 1월 말부터 2개월간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싸이클럽, 다음카페 등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 ‘홍보글 퍼나르기’를 시켰다. 당초 언급했던 ‘우수팀 선발’이나 ‘해단식’도 진행하지 않았다. 약속했던 봉사활동시간도 인정해주지 않고 되레 거기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참가 학생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한참 지나서야 봉사활동시간을 인정해주고 수료증도 줬다. 그걸 받으려고 주민등록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까지 내줘야 했다.”

모 보험사는 영업도 시켜

대학생 300명을 모집해 회의 개최 전날 오프라인 홍보활동을 벌인 ‘핵안보정상회의 일일 홍보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에 참여한 대학생 조모(21) 씨는 “뭐 하러 그 많은 학생을 지방에서까지 뽑은 건지, 피곤한데 앉을 자리조차 없어 다들 복도에서 졸았다. 차비 들여 서울 와서 열심히 활동했지만 남은 건 달랑 온라인으로 전달받은 수료증뿐이다. 또한 홍보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에게까지 수료증이 나온 건 어떤 연유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는 주최 측이 많은 대학생을 동원한 ‘보여주기’식 행사를 치르는 데 급급했다는 방증이다. ‘내일 YES! 자원봉사단’과 ‘핵안보정상회의 홍보대사’ 모집을 담당한 나라사랑전국대학생연합(이하 나사대) 관계자는 “나사대는 사단법인이 아니어서 직접 봉사활동시간을 인정해줄 수 없어 비록 시일이 걸리긴 했지만 다른 행정기관을 통해 인정해줄 수 있도록 조치했다”며 “주민등록번호는 늦게라도 봉사활동시간을 인정받게 해주려고 행정기관에 넘기려 받은 것으로, 지금은 폐기했다”고 해명했다.

대학생 대외활동엔 대행업체가 개입해 모집을 담당하기도 한다. 지난해 모 경제신문사의 ‘대학생 블로그 기자단’ 운영을 대행한 한 PR회사 직원 박모(28) 씨는 대외활동의 변질에 대해 “아무래도 만만한 대상이 대학생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처지에선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으려고 SNS 지인이 많은 대학생을 뽑아 온라인 홍보를 시키려 든다. 사실 기업이 원하는 건 대학생 지원보다 자사 콘텐츠 홍보와 마케팅 아닌가. 심지어 얼마 전엔 모 보험사가 대학생들을 서포터스로 뽑아 보험영업을 시킨 일까지 있었다”고 밝혔다.

박씨가 운영을 대행한 대학생 블로그 기자단 활동도 실제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이미 작성된 홍보 게시물을 인터넷과 SNS로 ‘퍼나르는’ 단순 업무였다.

수료증 한 장으로 스펙에 목마른 대학생을 끌어들여 모집 공고 내용과는 딴판인 홍보활동을 강권하는 일부 기업과 정부기관의 행태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방황하는 대학생에게도 각자 나름의 관심 분야와 꿈은 있다. 더 많이 경험하고 배우려고 10가지가 넘는 대외활동을 했다는 한 대학생의 자조 섞인 한마디가 귓가에 맴돈다.

“대학생 등골 빼먹는 대외활동…. 홍보기계처럼 일시키면서 수료증을 미끼로 학생을 ‘아바타’처럼 다루는 세태가 마냥 서글플 따름이다.”



주간동아 839호 (p34~36)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김민지 인턴기자 kimminzi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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