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4

2012.04.23

“초선의원이 싸움닭 돼야 좋은 의견 나오고 입법됩니다”

KT 사장 출신 이용경 창조한국당 의원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12-04-23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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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선의원이 싸움닭 돼야 좋은 의견 나오고 입법됩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가장 오래된 정당이 창조한국당이었어요. 신기하죠?”

    여의도 국회 본관 3층 복도에는 대한민국 정당사(史)를 요약한 도표가 걸려 있다. 그의 말마따나 2007년 탄생한 창조한국당의 역사가 가장 길게 표시됐다. 올해 초 신장개업한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2011년), 심지어 자유선진당(2008년)보다도 훨씬 오래된 정당이다.

    4·11 총선 결과가 공개되면서 그 영광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정당지지율이 0.4%에 그치면서 당이 해산될 처지다. 18대 창조한국당 비례대표 1번이자 원내대표로 활약했던 이용경(68) 의원도 곧 국회를 떠난다.

    지역구이든, 비례대표이든 초선의원 누구라도 재선(再選)을 노린다. 하지만 그는 이번 총선에서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소속 정당도 해산될 처지고 임기도 막판이라 조금은 처연한 분위기일 것으로 짐작했지만 웬걸, 그의 표정은 윤중로에 활짝 핀 벚꽃처럼 씩씩하고 생기가 넘쳤다.

    “주위에선 조금이라도 가능성 있는 지역을 찾아보라 하고, 20년 이상 산 동네(서울 서초동)에서 출마하는 게 도리라 생각했는데, 결정적으로 집(아내)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주저앉았네요.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을 듯해요.”



    규제 아닌 관치경제로 후퇴한 MB정부

    그는 18대 국회에서 가장 합리적인 정치인으로 통했다. 실제로 지난 4년간 여의도에서 그는 거의 유일하게 대화가 가능한 인물이었고, 행정부를 가장 통렬하게 비판한 전문가였으며, 이공계를 대변하고자 한 과학자 출신 경영인이었다.

    “1991년 미국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와 KTF와 KT 사장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정치에 관심이 갔어요. 통신산업이란 말 그대로 규제산업이거든요. 그런데 규제에 아무런 근거나 철학이 없는 거예요. 처음엔 시장기능 회복을 정책으로 반영하자는 생각으로 정치에 입문했죠. 그런데 이번 정부는 규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관치(官治)경제로 후퇴하더군요. 지독하게 싸워야 했어요.”

    지독하게 싸웠지만 정치 중심에서는 조금 밀려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고 보면 고착화한 양당체제의 폐해와 온몸으로 부닥친 것이다. 특히 21세기 정치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미디어와 통신 영역에서 고군분투했다.

    “기본적으로 정보기술(IT) 영역은 기술을 알아야 정책에 대한 시시비비가 가능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처음 3년은 여야가 전혀 토론할 분위기가 안 됐어요. 정부는 통신 정책을 수수방관하고. 이제 대화가 좀 되려고 하는데 임기가….”

    경기고 수재 출신에 KT 대표이사 이력이라면 처음부터 거대양당 어느 한쪽에 합류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째서 왜소한 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을까. 혹시 문국현과 손잡았던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문 대표의 비전에 100% 동의했던 사람이에요. 중소기업 중심, 비정규직 철폐, 평생교육을 통한 효율성, 안전한 근로환경, 보육 중심 사회….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 사회의 모순을 잘 짚어낸 공약이었어요. 산업사회가 아닌 창조산업으로의 대변환을 모색하자는 ‘제3의 정치실험’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해요. 당이 크다고 잘한 게 뭐 있나요. 패거리정치는 싸울 때만 유리한 거예요.”

    인터뷰 당일 그가 마침 자전거를 타고 국회에 출근했다. 인터뷰는 의원회관을 벗어나 동작대교 위 구름카페에서 이어졌다. 그는 자전거로 한강변 자전거도로를 이용해 그곳에 도착했다. 마침 문자뉴스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항소심 유죄판결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장탄식을 내뱉었다. “아이쿠, 정말 샤프한 친군데….”

    곽 교육감은 2008년 문국현 캠프 정책대변인으로 활약했다. 그 당시 이 의원과 책상을 나란히 사용하며 호흡을 맞췄다. 동지였던 셈이다. 실제로도 ‘절친’이다. 그럼에도 이 의원은 지난해 8월 창조한국당 논평을 통해 “곽 교육감은 구차한 변명보단 책임을 통감하고 용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4년의 의정활동에서 가장 아쉬웠던 대목은 무엇일까.

    “직접 국회에 와보니까 세금을 쓰는 것에 대한 감시가 부실하더군요. 정말 이상한 일이죠. 국회의원의 본분인데 말입니다. 심지어 관료들이 나라의 주인처럼 행세해요. 자료 거부는 일상이 됐어요. 오죽하면 제가 ‘우리나라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고시합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냐’며 김황식 총리에게 한탄했을 정도예요.”

    “관료들이 주인 행세 말이 안 됩니다”

    그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제주 7대 세계 자연경관 선정’ 사건의 내막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국민의 허영심, 세금을 우습게 아는 정부, 지역 출신 정치인들의 로비, 기업에 대한 압력, 이를 숨기는 기업, 비판의식을 잃어버린 언론….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회고한다.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많은 문제점이 산적해 있어요. 시장원리를 무시하려는 정부와 손쉽게 돈 버는 유혹에 빠진 대기업, 그리고 자녀들에게 안정을 강요하는 기성세대까지…. 그럼에도 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게 봅니다. 후배 초선의원들은 국회에서 하고 싶은 말을 실컷 좀 하면 좋겠어요. 그렇게 부딪히고 싸워야 더 좋은 의견이 모아질 테니까요.”

    정치 후배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긴 그는 날렵한 국산 산악자전거를 타고 총총히 사라졌다. 그가 자신의 트위터(@greatlistener)에 소개한 그의 이력은 다음과 같이 단출하다. ‘18대 국회의원.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 전 KT 대표이사. 전 Bell 연구소 연구원.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고 남 따라 하기를 거부하며 이공계를 대변하고자 노력.’ ‘전직(前職)’ 타이틀로도 더 많은 것을 꿈꿀 수 있는 영원한 ‘현직’으로 남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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