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0

2017.05.31

와인 for you

900년 전통의 새로운 출발

프랑스 칼롱 세귀르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7-05-30 16: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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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보르도(Bordeaux)산 레드 와인 칼롱 세귀르(Calon-Ségur) 레이블에는 커다란 하트가 그려져 있다. 이 하트 때문에 칼롱 세귀르는 연인을 위한 와인으로도 인기가 높다. 프랑스 보르도대가 소장한 기록에 따르면 12세기 이 와인에 세금을 부과한 적이 있다고 한다. 레이블이 독특할 뿐 아니라 역사도 900년이나 되는 셈이다.

    보르도의 작은 마을 생테스테프(Saint-Estéphe)에 위치한 칼롱 세귀르는 이곳에 맨 처음 포도나무를 심은 와이너리이기도 하다. 생테스테프의 옛 이름은 생테스테프 드 칼롱이다. 칼롱은 물품을 실어 나르는 작은 배를 일컫는데, 과거 생테스테프 마을 수로에 이 배가 많이 오갔다고 한다. 칼롱 세귀르라는 이름이 완성된 것은 17세기 칼롱 와이너리의 딸과 자크 드 세귀르가 결혼하면서다.

    자크의 손자인 세귀르 후작은 프랑스 왕 루이 15세가 ‘포도나무의 왕자’라고 부를 정도로 보르도 와인계의 유력 인사였다. 그는 칼롱 세귀르 외에도 보르도 1등급 와이너리인 라투르(Latour), 라피트(Lafite), 무통(Mouton)을 모두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 마음은 늘 칼롱에 있다”고 말할 만큼 칼롱 세귀르를 좋아했고, 이것이 레이블에 하트로 표현됐다.



    칼롱 세귀르는 이후 주인이 몇 차례 바뀌다 2012년 프랑스 보험회사 쉬라베니르(Suravenir)에 매입됐다. 쉬라베니르는 3000만 유로(약 377억 원)를 투자해 칼롱 세귀르의 품질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포도밭 토양의 특성에 따라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비율을 높이고, 와이너리는 탱크 종류와 수를 늘려 밭 구획별로 포도를 발효시킬 수 있게 했다. 구획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른 포도를 따로 발효시키면 블렌딩할 때 복합미를 더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칼롱 세귀르 2016년산은 새 탱크에서 양조된 첫 와인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칼롱 세귀르 2012년산의 맛을 보면 신선하고 농밀한 검은 베리향과 후추, 바닐라 등 향신료향이 매력적이다. 아직 어리지만 탄탄함과 우아함을 갖추고 있다. 한편 19년간 숙성시킨 1998년산은 잘 익은 과일향이 여전히 생생해 올드 빈티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장미, 미네랄, 가죽, 담배 등 다양한 향은 복합미를 더하고, 입안을 맴도는 달콤한 대추향은 긴 여운을 장식한다. 30년 넘는 숙성 잠재력을 가진 칼롱 세귀르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2015년 칼롱 세귀르는 아시아 몇 개국에서만 한정 판매하는 르 프티 칼롱(Le Petit Calon)을 새롭게 출시했다. 긴 숙성 없이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이 와인은 부드러운 과일향, 은은한 삼나무향, 매끈한 질감의 조화가 마치 어린 시절 첫사랑처럼 느껴져 사랑스럽다. 하얀 레이블에는 칼롱 세귀르의 상징인 하트가 작고 귀엽게 그려져 있다. 칼롱 세귀르보다 가격도 저렴해 많은 애호가로부터 사랑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방한한 로랑 뒤포(Laurent Dufau) 칼롱 세귀르 대표는 “와인은 투자 성과가 매우 느리게 나타나는 사업이다. 이를 잘 이해하는 새로운 투자자를 만났으니 칼롱 세귀르의 앞날은 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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