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1

2012.01.16

발아래 태백산맥 동해 품으로 훌쩍 날다

태안에서 양양까지 비행 2시간 만에 도착… 활주로 없는 곳 맨땅 착륙엔 ‘식은땀’

  • 이재경 머니투데이 유통팀 기자 froglone@naver.com

    입력2012-01-16 12:0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발아래 태백산맥 동해 품으로 훌쩍 날다
    최근 한 인터넷쇼핑몰에서 9900만 원짜리 경비행기와 9만5000원짜리 비행 체험 상품을 판매해 관심을 끌었다. 경비행기를 타고 날면 어떤 기분일까. 경비행기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어떤 곳에서 이착륙하게 될까.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타봤다. 태백산맥을 넘는 긴 경로를 택했다.

    발아래 논과 밭이 사라진다. 사라진 자리엔 나무가 무성하다. 그 나무가 모인 곳은 산이 돼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그 산이 모여 능선을 이룬다. 어깨동무하고 솟아오르던 능선은 깊은 계곡을 만든다. 줄줄이 이어진 산이 발아래까지 다가온다. 어느덧 발아래에 평지는 없다. 동서남북이 모두 산으로 길게 뻗어 있다. 태백산맥이다.

    현재 고도는 해발 5000피트.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산 정상이 눈높이보다 높다. 엔진 출력을 높여 기수를 올린다. 해발 8000피트. 해수면으로부터 2.6km 높이다. 기압이 낮아졌는지 간식으로 준비한 과자봉지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캐노피(canopy) 안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밝고, 공기는 차가우면서도 신선하다. 사방이 탁 트인 2인승 경비행기에 앉으니 위로 흐르는 구름조각과 발아래 겹겹이 펼쳐진 산맥이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산 정상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 채 팔을 돌리는 하얀 풍력발전기가 햇빛을 튕겨낸다.

    어느 순간 태백산맥이 뚝 끊긴다. 짙푸른 바다가 거대한 몸집을 드러낸다.

    “양양국제공항 관제탑과 교신하라.”



    공군 중앙방공통제소(MCRC)에서 온 항공무전이다. 태백산맥을 넘어 목적지 근처까지 왔다는 신호다. 양양국제공항 주파수에 맞추고 관제탑을 연결한다.

    “관제탑, 4마일 남쪽에서 접근 중. 착륙 허가를 요청한다.”

    “기압 3-0-4-0, 바람 3-1-0, 활주로 1-5로 접근하라.”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 어떻게 취득하나

    대학 한 한기만큼의 시간과 비용이면 충분히 가능


    발아래 태백산맥 동해 품으로 훌쩍 날다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은 교통안전공단에서 주관한다. 자동차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조종연습허가서를 발부받을 수 있다. 신청만 하면 되며, 바로 조종연습에 들어갈 수 있다. 자동차 운전면허증은 항공용 신체검사를 대신하기 위한 것이므로, 운전면허가 없으면 지정된 병원에서 항공용 신체검사를 받으면 된다.

    조종훈련을 받으면서 필기시험에 응시해야 한다. 항공법, 항공역학, 항법, 항공기상 등 4과목이며 과목별로 70점 이상 받으면 합격이다. 매주 시험이 있으며 합격할 때까지 계속 응시할 수 있다. 전 과목을 한 번에 합격하지 않아도 된다. 불합격한 과목만 다시 응시하면 된다. 실기시험은 솔로비행 5시간을 포함해 20시간 이상 비행하면 응시할 수 있다. 조종연습을 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데 자리한 시험평가 교관에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따는 데 필요한 시간은 주말을 이용해 틈틈이 연습하는 경우, 4개월에서 6개월 정도 걸린다. 들어가는 비용은 총 400만∼500만 원. 교육받을 수 있는 곳은 경기 안산, 화성, 여주 등 여러 곳이지만 활주로와 관제탑 등 제반시설을 제대로 갖춘 곳은 한서대 태안비행장이 유일하다.


    한반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기수를 내리고 하강한다. 양양국제공항 접근 고도는 1600피트. 8000피트 높이에서 한 번에 내려오려니 귀가 먹먹하다. 양양국제공항의 활주로는 바다와 평행하게 뻗어 있다. 접근 절차에 따라 동해로 나가 활주로 1-5로 진입한다. 길이 2.5km의 활주로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비행기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태백산맥 너머 동해 위에 외로이 떠 있는 활주로가 우리를 받아준다.

    기자가 탄 2인승 경비행기 ‘유로스타’는 충남 태안에 지라한 한서대 태안비행장에서 이륙했다. 이곳에서부터 양양국제공항까지는 대략 300km. 한반도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직선경로다. 유로스타의 순항속도는 90노트, 시속 167km다. 계획대로 양양국제공항까지는 두 시간이 걸렸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이륙한 후 양양국제공항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한반도 중간쯤에 있는 태안에서 출발하면 어디든 두어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양양국제공항은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날아갈 수 있는 최북단에 속한다. 휴전선에서부터 남쪽 지역으로 일정 거리만큼 ‘P518’이라는 비행금지구역이 있다. 이 구역을 제외하면 위도상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양양과 속초다. 기자는 양양국제공항에 착륙했으니 가장 북쪽까지 비행한 셈이다. 우리나라에는 또 다른 비행금지구역이 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반경 4마일 안쪽인 ‘P73’ 구역이다. 이 두 개의 비행금지구역을 제외하면 웬만한 지역은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다. 다만 군(軍)에서 지대공이나 공대지 사격 훈련을 하는 지역은 피해야 한다. 항공관제만 제대로 받는다면 어디든 아무 문제없이 비행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양양국제공항에서 태안비행장을 향해 다시 이륙했다. 돌아가는 길에 충주에 잠깐 들르기로 했다. 충주에서 경비행기를 운용하며 교관으로 활동 중인 지인을 만날 참이다. 백효현 교관은 자기 집 앞 공터를 활주로로 사용하고 있다. 맨땅이지만 길이가 200m 정도여서 경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하다.

    항공유 아닌 휘발유 사용

    충주에 다다르자 집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 집 사이에 백 교관의 집과 활주로가 있다. 500피트 높이로 낮게 접근해 들어간다. 논밭을 넘어 공터가 보일 때까지 하강한다. 백 교관의 활주로가 눈앞에 들어오고, 논둑길과 밭이랑이 단숨에 발밑으로 들어와 뒤로 사라진다. 단거리 착륙이기 때문에 플랩(양력부양장치)을 최대로 쓴다. 바퀴가 땅에 닿는다. 맨땅을 달리는 거친 진동이 느껴진다. 백 교관이 마중 나와 있다. 이곳에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연료를 조금 보충했다. 그사이 차 한 잔을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개인이 경비행기를 보유하는 경우 대부분 이처럼 공터나 하천 둔치를 활주로로 사용한다. 개인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활주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활주로가 아닌 맨땅이나 하천 둔치, 간척지 등에서 매번 모험을 하는 셈이다. 항공 분야 전문가들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작은 규모라도 활주로를 만들 생각은 안 하고, ‘위험하다’고만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경우 워싱턴DC 인근에만 민항기가 취항하는 공항 2곳 외에 칼리지파크 비행장, 프리웨이 비행장, 포토맥 비행장, 이그제큐티브 비행장 등 최소 4곳의 경비행기 전용 비행장이 있다. 활주로와 급유시설 등 최소한의 시설만 갖췄지만, 경비행기를 이용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

    실제 활주로 공사에 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한 항공 분야 전문가는 “경비행기용 활주로 1km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20억 원 안팎”이라며 “놀고 있는 하천 둔치를 활용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적극적으로 건설하면 단시간 안에 지역 명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태안비행장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3시 무렵. 양양까지 왕복 600km를 날고,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으며, 충주에서 담소도 나눴다. 서울에서 태안까지 자동차로 왕복한 거리까지 합치면 하루 1000km 남짓 여행한 셈이다. 1000km의 가치는 태백산맥 상공에서 호연지기를 느끼는 순간 이미 충분했다. 유로스타가 600km를 나는 데 사용한 연료는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일반 휘발유다. 기름값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항공유를 쓰지 않는다는 점은 큰 매력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하늘은 열려 있었고, 앞으로도 많은 이를 받아줄 준비가 돼 있다. 비행과 하늘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즐기는 자의 온전한 소유였다.

    나도 비행기를 가질 수 있을까

    5000만∼2억 원대 공동 소유 가능… 빌려 타는 게 일반적


    우리나라에서는 항공기나 항공부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관세장벽으로 보호해야 할 국내 항공기 생산업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공기 가운데 국산 모델은 전혀 없으며 모두 외국산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 인터넷쇼핑몰에서 판매하는 경비행기는 주목할 만하다. 부품은 모두 수입한 것이지만, 자체 제작을 통해 국내 최초로 국가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2인승 경비행기는 9900만 원, 1인승은 4950만 원에 내놓았다.

    2인승 경비행기 가운데 비싼 것은 2억 원대에 이른다. 동체 라인을 유려하게 설계하고 각종 최신 항법 전자 장비를 갖추면 이 정도 가격이 된다. 일반적인 2인승 경비행기는 판매 가격이 9000만 원대에서부터 1억6000만 원대에 이르러 이 역시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그래서 보통은 서너 사람이 함께 구입해 공동명의로 등록한다. 매일 비행하지 않는 이상 많은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 중고로 눈을 돌리면 가격은 더 내려간다. 이보다 더 일반적인 경우는 항공기를 빌려 타는 방법이다. 경비행기를 운용하는 여러 법인이나 개인이 빌려준다.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만 있으면 시간당 정해진 비용을 내고 하늘을 날 수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