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8

2011.12.26

29세 대장의 완벽한 군부 장악?

‘선군정치’유산 오히려 불안 가중 요인…2년 후계자 기간 너무 짧아

  •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lancer@kida.re.kr

    입력2011-12-26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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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세와 69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당시 나이다. 이 열세 살의 나이 차이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함의를 지닌다. 1인 독재체제의 선임자와 후임자 관계인 부자(父子)는 모두 혈연계승을 시도했지만, 지명을 받은 후계자의 권력기반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김 주석이 세상을 떠났을 당시 김 위원장의 나이는 52세로,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김정은과는 관록 면에서 일단 격차가 벌어진다. 20여 년과 2년여라는 후계자 준비 기간을 따지면 그 차이는 더 크게 느껴진다.

    차곡차곡 누적되는 불안정성

    그럼에도 단기적으로 볼 때 포스트 김정일 시대에 북한 1인자가 김정은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먼저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겨놓은 독특한 통치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전위대로서 공산당 독재가 허용될 뿐 개인숭배나 1인 독재는 이단시될 수밖에 없다. 유물론적 시각에서 인간의 정신세계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1인이 모든 이의 의사를 대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주석은 정권 창건 이후 20년간 권력투쟁을 거치면서 이를 뒤엎는 주체사상과 수령론을 만들어냈다. 철인(哲人)적 혜안을 가진 걸출한 지도자는 능히 인민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혈연계승의 전통은 ‘혁명가계론’이라는 또 하나의 독특한 변형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수령론과 혁명가계론을 결합하고 나면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은 분명해진다. 김일성의 가계여야 하는 것이다. 조선노동당의 실세이자 김정은의 후원자로 거론되는 장성택 당 행정부장마저도 이 조건을 놓고 보면 철저한 ‘깃털’일 뿐이다. 선대에 비해 능력이나 경험이 일천하다 해도 김정은을 대체할 만한 정통성을 가진 잠재적 경쟁자를 단기간에 만들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중·장기적 차원에서까지 김정은 시대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북한 후계체제가 제도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매우 어중간한 상태에서 김 위원장이 사망했다. 장기간의 1인 독재로 인해 정국 전반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통제할 인물이 북한 내에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향후 북한 정치의 최대 불안요인이다. 그가 즐겨 사용했던 분할통치(devide and rule) 기법이 다른 권력엘리트들로 하여금 종합적인 통치역량을 축적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왔기 때문이다. 김정은 또한 이 소임을 맡기에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나면 결국 그를 정점으로 하는 일종의 권력분점이나 과두정치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느린 붕괴’의 가능성

    이러한 권력분점 역시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는 없다. 김정은을 정점으로 하는 최고 권력엘리트들이 과두정치 체제를 형성하려면 기존 통치이데올로기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고, 이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권위를 인민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김정일이 아버지의 사상을 끊임없이 재해석했던 것에 비해 현재 북한에는 그런 권위 있는 신탁(神託) 해석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외형상으로는 수령 독재가 지속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한 체제의 불안정성이 지속적으로 누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의미에서 김정일 정권의 주요 통치이데올로기였던 선군정치는 거꾸로 중·장기적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행해진 선군정치는 군부가 최고지도자나 당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순종하는 형태가 아니라, 최고지도자가 당이나 국가보다 군부의 수뇌로서 스스로의 위상과 소임을 변경하고 군부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일종의 공생 구조를 낳았다. 2008년 이후 김 위원장이 군부의 과도한 정치적 영향력을 일부 조정하려고 시도하긴 했지만, 2010년의 제3차 당대표자대회는 북한이 당분간 선군정치를 유지할 것임을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한하는 작업이 충분히 이뤄지지도 않았지만 거꾸로 완전히 군부에 의존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김정일이 사라진 것이다.

    그동안 군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도화해온 선군정치를 김정은이 과연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당을 이용해 군을 견제할 수 있으리라고 전망하지만, 그러한 방식이 가능했다면 1994년의 선군정치는 애초부터 탄생할 필요가 없었다. 수령제에서의 당은 더는 전위대가 아닌, 개인의 통치행위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보조적 장치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한계가 북한 체제의 급격한 불안정이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급변’이라는 용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1980년대 후반 소련이나 동구권에서 벌어진 급격한 체제 붕괴, 혹은 국가 붕괴가 북한에서도 그대로 구현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이 민주주의나 시장경제를 경험한 바 전혀 없고, 그동안 1인 독재체제 유지에 엄청난 노력이 투입돼왔음을 감안한다면, 북한의 정치적 불안정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전개될 수 있다. 외부 시각으로는 지극히 불합리해 보인다 해도 오랜 정치사회화를 통해 정착한 정치적 공리가 해체되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분명 북한에 내재된 잠재적 불안요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문제점을 양산할 것이고, 때로는 권력투쟁의 외부 분출 같은 정치적 사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특정 시점에 급변으로 불릴 만한 촉발요인이 불거진다고 해도 이후의 전반적인 과정은 상대적으로 서서히 진행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우리 처지에서는 서서히 약해지거나 무너져 내리는 북한이 훨씬 더 관리하기 어렵고 많은 딜레마를 안겨줄 수도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나 중국의 부상 같은 외부 변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앞으로의 4~5년이 한반도의 운명이나 통일에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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